“어제 수백만 길더(네덜란드 화폐단위)의 가치를 지녔던 작품이 오늘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림은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다.”
네덜란드의 한 판 메이헤런(1889~1947)은 자신의 위작에 놀아난 전문가들을 한껏 조롱했다.
메이헤런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를 사칭한 ‘위작의 전설’이다. 메이헤런은 네덜란드 국보로 꼽혔던 페르메이르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을 독일의 헤르만 괴링에게 700만달러(2008년 가치)판매했다는 이유로 대역죄인이 됐다.
그러나 이 작품은 메이헤런의 위작이었다. 메이헤런은 ‘난 조국을 배반한 게 아니라 괴링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메이헤런은 직접 붓을 잡고 페르메이르의 기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그 뿐이 아니다. 네덜란드 최고감정가들이 국보급 보물로 보존하자던 ‘엠마오의 저녁식사’ 등 페르메이르 작품 8점이 역시 메이헤런의 그림이었다.
감정가 가운데는 페르메이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아브라함 브레디우스가 포함돼 있었다. 브레디우스는 “이 작품(‘엠마오의 저녁식사’)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확실하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네덜란드 언론에서는 ‘이런 국보급 그림을 그냥 둘 수 없다’고 아우성 쳤다. 결국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은 이 그림을 52만 길더(4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메이헤런은 총 8점의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판매했다.
다른 위작전문가인 기어르트 얀 얀센은 자신이 그린 카렐 아펠(네덜란드·1921~2006)의 위작을 260만 달러를 팔았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 얀센은 또다른 위작을 그려 경매회사에 보냈다.
그러자 경매회사가 아펠에게 작품 감정을 의뢰했는데 아펠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내가 그린 그림이 맞다’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만 이 작품 역시 기록적인 액수로 팔렸다.
그 뿐인가. ‘해바라기’(빈센트 반 고흐)는 7점, ‘절규’(에드바르트 뭉크)는 4점의 버전이 있다. 새 작품이 발견될 때마다 감정가들은 진땀깨나 흘렸다. ‘모나리자’는 어떤가.
2012년 스위스 모나리자 재단은 1913년에 발견된 ‘아일워스 모나리자’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작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다 빈치가 루브르박물관의 ‘모니리자’ 보다 10년 정도 젊은 시절에 그린 진작이라는 것이다. 자외선·발광적외선·감마분광시험 등 첨단 과학 장비를 동원한 결과이니 틀림없다고 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과학적 분석은 유사한 연대를 가릴 지는 모르지만 작가의 진작여부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위작판별은 이렇듯 고금을 통틀어 간단치 않다.
최근 위작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작가도 마찬가지일 터다. 아무리 과학적 분석결과를 들이대도 생존 작가가 ‘내 자식을 몰라보겠느냐’고 고집을 피우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한쪽이 주장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니 결국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미술계의 신뢰 추락이 우려될 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 기사는 최병식의 ‘미술품 감정학-진위·가격 감정과 위작의 세계’, 동문선, 2014년을 참조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