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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모나리자'에 숨 멎고, 8m 대작 산수화에 발길 멎는다…사상 최대 국보 보물전 개막

혜원 신윤복이 그린 ‘조선판 모나리자’는 누구의 얼굴일까. 46억 화소로 공개되는 이인문의 8m56㎝ 대작(‘강산무진도’)은 산수화일까 아니면 18~19세기 조선인의 삶을 표현한 파노라마 풍속화일까. 지난 3년간 새롭게 국보·보물이 된 지정문화재 83건이 대거 일반에 공개된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은 2017~2019년 사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157건 중 이동이 어려운 건축문화재와 무거운 문화재를 뺀 83건(196점)을 22일부터 9월27일까지 공개한다고 20일 밝혔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알듯모를듯 지은 미소가 신비롭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의 명칭은 ‘새 보물 납시었네-신국보 보물전 2017~2019’이다. 배기동 국립박물관장은 “전시를 위해 유물을 대여해준 기관만 34곳이나 된다”면서 “국보·보물 공개 전시로는 사상 최대규모”라고 밝혔다. 원래 개막일은 21일이지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 박물관·미술관 재개관 일자인 22일에 일반 관람객에 공개되는 것이다. 이번 출품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이므로 한 점 한 점 모두 가치있는 유물이다. 그 중에서도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 문화재로는 ‘신윤복필 미인도’(보물 제1973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와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일단 꼽힌다.


■모델의 요동치는 흉중까지 그린 혜원

“가슴 속에 서려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 붓끝으로 그 마음까지 얼른 옮겨 놓았네(盤박胸中萬花春 筆端能與物傳神)”. 이 시는 ‘조선판 모나리자’라는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에 일필휘지로 써놓은 칠언절구 제화시이다. 

‘미인도’를 뜯어보자. 구름 같은 가체머리, 길이가 짧고 소매통이 좁은 저고리, 풍성한 치마와 속곳바지, 고개를 살짝 내리고 시선을 아래로 둔 모습…. 다소곳한 자세와 잘 정돈된 머리와 옷매무새 등이 특징이다. 넓은 이마와 앳되고 둥근 얼굴, 가늘고 긴 선한 눈과 눈썹, 작고 둥근 코, 꼭 다문 야무진 입술, 목 뒤로 흘러내린 실머리, 그리고 살짝 모습을 드러낸 속곳 자락과 하얀 버선…. 배추통과 같은 치마와 작은 키를 감안할 때 꼭 의자에 앉아있는 것 같다. 

붉은 삼작노리개와 옷고름을 매만지고 있는 여인의 손길도 평론가들의 호기심을 끈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자연스런 모습일 수 있고, 저고리 고름의 나비매듭과 마지막 매듭을 푸는 모습일 수 있다. 노리개를 옷고름에 매어 늘어뜨리기 위한 동작일 수도 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2m짜리 비단 5폭으로 그려 이은 길이 856㎝의 대작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서 삼사정의 ‘촉잔도권’과 함께 46억화소로 스캔한 그림을 펼쳐보였다.|김창길 기자   

이 작품의 백미는 웃는 건지 마는 건지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여인의 표정이다. 작가의 시선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그러니 ‘조선판 모나리자의 미소’라는 평이 나올만 하다.

작품 속 칠언절구 중 ‘전신(傳神)’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전신은 정신을 전한다’는 용어다. 일찍이 중국 동진의 화가이자 문필가인 고개지(346~407)는 “작품에 대상의 ‘정신(神)’을 ‘전(傳)’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니까 혜원은 ‘모델의 외면 만이 아니라 모델의 요동치는 흉중을 그 정신까지 붓끝으로 전했다’고 선언하면서 일필휘지의 시를 남긴 것이다. 

‘강산무진도’는 정통산수화로 알려졌지만 그림 속을 살펴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했다. 단순한 산수화가 아니라 풍속화라는 평가가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성을 주인공으로, 양반을 찌질이로

그렇다면 혜원이 그린 여인은 누구일까. 따지고보면 내외법이 철저했던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사대부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초상화를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 화가가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여인은 신분이 낮은 기녀 정도였을 것이다. 혜원이 활약했던 18~19세기 서울 저잣거리는 흥청거렸다. 문신 남공철(1760~1840)은 “서울은 돈 가지고 살고, 팔도는 곡식 가지고 산다”(<금릉집>)고 할 정도로 각 지방의 화폐가 서울로 집중됐다. 길거리 곳곳에는 색주가의 깃발이 펄럭였다. 

김득신의 대표작인 ‘야묘도추’(파적도).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사실 혜원 신윤복과 관련된 기록은 소략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동가숙서가식 떠돌았고 방외인(국외자)으로 살았으며, 여항인(중인·서얼·서리·평민층)과 가까웠고”(이구환의 <청구화사>) “김홍도와 함께 유흥가의 이속지사(俚俗之事·풍속화)를 즐겨 그렸다”(서유구의 <임원십육지>)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혜원은 풍류화가로서 동가숙서가식으로 색주가를 오갔던 ‘기녀들의 오빠’ 정도가 아니었을까. 괜한 억측이 아니다. 혜원은 단원 김홍도(1745~?)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세계를 걸었다. 특히 그동안 화면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여성들, 즉 기녀들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아닌게 아니라 ‘혜원전신첩’을 보면 전 작품에서 여인이 등장하는데, 30작품 중 18작품의 주인공이 기녀이다. 혜원 풍속도의 특징은 견고한 유교사회에 갇혀있던 여성을 담장밖으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금기를 깨는 대담한 도전이었다. 여성, 그것도 기녀가 주인공이 되자 사대부 양반들은 ‘찌질이’로 그렸다.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보물제 1987호). 정선이 6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1740년대에 제작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녹색, 황색, 적색, 흰색 등 채색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가을의 내금강 전모를 효과적으로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금강전도>와 차별된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단적인 예로 단옷날 기녀들이 속살을 드러낸채 목욕하고 그네타는 모습을 포착한 ‘단오풍정’은 조선 최초의 누드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또 달밤에 남녀가 포옹하며 밀회를 나누는 ‘월하밀회’는 최초의 키스신이라 할 수 있다. 

‘연소답청’을 보면 양반들이 기녀들을 말에 태운 것도 모자라, 손을 내민 여인에게 얼른 다가와 담뱃대를 건네주고 있다. 다른 남자는 “당신의 마부가 되겠다”는 듯 자기 갓을 마부에게 넘긴채 마부의 벙거지를 쓰고 걷고 있다. 

‘유곽쟁웅’에서는 꼴사나운 양반 한량들의 술집 난투극을 보여준다. 갓이 다 망가질 정도인데도 웃통을 벗어젖힌채 으름장을 놓는 나이 많은 사람은 말리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더 객기를 부리는 듯하다. 기방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아니고서는 그릴 수 없는 생생한 결투 장면이다.

이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혜원의 ‘미인도’는 모델인 여인과 혼연일체를 이루며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모델인 여인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봄날에 피어나는 여심을 화가의 앞에서 숨겼다면 저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델은 혜원의 ‘뮤즈’였을까, 혹은 진정으로 연모했던 바로 ‘여인’이었을까.  

‘김정희 필 난맹첩’(보물제 1983호).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이다.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인  유명훈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글씨 뿐 아니라 사군자에도 능했던 김정희는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난맹첩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따지고보면 ‘미인도’라는 작품명도 이제는 논란을 일으킬 만도 하다. ‘미인도’는 후대에 붙여진 제목이다. 언제부터인가 배경없이 그려진 여성의 전신그림을 그저 ‘미인도’라 했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공정하지 못한 제목이다. 조선 시대의 남자 초상화를 ‘미남도’라 하지 않는다. 굳이 그림의 주인공을 찾아 ‘○○의 초상화’라 이름 붙인다. 반면 여성 그림은 적당한 이름을 붙이기 않고 그냥 ‘미인도’라 한다. 그러니 여성 그림은 개별 작품의 독자적인 지위나 성격을 잃어버리고 ‘미인’이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일반적 범주’에 갇히고 만다. 신윤복의 ‘미인도’에도 이제와서는 적당한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교체전시 일정에 따라 8월12일부터 전시된다.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시동(侍童)을 대동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무심히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화면 위에 동료 화가였던 이인문의 시문이 쓰여 있다. 1746년 소띠 동갑내기 화가의 우정을 알게 해준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46억화소, 30m로 펼쳐보이는 ‘대작 풍속화’

이번 특별전에서 주목을 끄는 또하나의 작품은 조선후기의 대표화가인 이인문(1745~?)의 ‘강산무진도’이다. 

기자가 이미 지난 6월16일자 신문(인터넷 판 포함)에 다룬 작품이다.

이인문은 단원 김홍도와 1745년 소띠 동갑내기이며 평생지기였다. ‘강산무진도’는 작품 길이가 8m가 넘는 산수화(가로 856㎝, 세로 43.8㎝)로 알려져왔다. 2m짜리 비단 5폭을 잇대어 바탕을 만들었다.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표현과 정교한 세부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조선을 대표하는 대작이라는 평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은 중흥기를 구가한 18~19세기 조선 백성들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그린 일종의 ‘파노라마 풍속화’라는 평을 받는다. 바로 정조 연간(1776~1800)을 전후한 시대이다. 대동법 시행으로 바닷길과 한강의 포구를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세곡의 물류량이 급증했던 시기였다.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게 된 서울에는 다양한 물화가 넘쳐났고, 저잣거리에는 유흥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1792년(정조 16년) 박제가(1750~1805)는 ‘성시전도시’에서 “놀고 먹는 백성 없이 집집마다 다 부자요, 저울 눈금 속이지 않아 풍속 모두 아름답다”고 읊었다.

이인문이 바로 당대 흥청거리는 서울의 한강변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강산무진도’와, ‘강산무진도’의 모티브가 된 심사정(1707~1769)의 ‘촉잔도권’(1768년·보물 제1986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을 별도로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된다. ‘강산무진도’는 2m짜리 비단을 5폭 펼쳐 그린 그림이어서 한 눈에 볼 수 없다. 이인문의 스승으로 알려진 심사정의 ‘촉잔도권’ 역시 8m가 넘는 대작(58×818cm)이다. 

강경남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46억 화로로 스캔한 ‘강산무진도’를 30m 길이의 장대한 크기로 펼쳐 보일 것”이라면서 “소리 예술가 김준이 구현한 15채널로 구성된 생생한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그림 속 강산에 직접 와있는 듯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국보 제32-1호·옥산서원 소장)와 <삼국유사>(국보 제306호·연세대),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국립중앙박물관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등 

■김득신이 ‘순간포착’한 ‘야묘도추’

물론 다른 출품 유물의 가치도 필설로 다할 수 없다. 실경산수화의 대가 정선(1676~1759)의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보물 제1951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에서는 시적 정취가 가득한 강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1987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만날 수 있다. 김득신(1754~1822)의 풍속도 8점인데, 그중 ‘야묘도추’(파적도)가 흥미롭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어미닭은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뜬채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고 병아리들은 사방으로 도망친다. 이 모습을 본 주인영감은 돗자리를 짜다말고 곰방대를 후려치며 뛰어들지만 역부족이다. 툇마루에서 그만 고꾸라진다. 주인마님도 떨어지는 영감을 잡으려 맨발로 달려들지만 이미 늦었다. 망건과 돗자리틀이 떨어지고 만다. 그야말로 ‘순간포착 세상의 이런 일이’ 같은 장면이다. 한 편의 ‘짤방’이자 한 편의 캡처 영상 같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국보 제326호). ‘순화 4년’, 즉 고려 성종 12년(993)에 제작된 청자항아리다. 초기청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이화여대 소장 

■간송이 수집한 22건도 출품 

출품작 중에는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국보 제322-1호·옥산서원 소장)와 <삼국유사>(국보제 306-3호·연세대 소장), 그리고 여러 기관이 소장한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 등 다양한 역사기록물이 포함됐다. 

또 조선 시대 인쇄 문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송조표전총류 권6~11>(보물 제1989호·개인 소장), 그림을 기록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왕실 행사 기록화 ‘기사계첩’(국보 제325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대부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최석정 초상 및 함’(보물 제1936호·국립청주박물관 소장) 등이 함께 소개된다. 

천재 화가 김홍도의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등도 출품된다. 특히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22건의 보물이 전시되는게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유지를 지키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문화재가 이처럼 한번에 다량으로 대여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함께 고려 초기의 청자 제작을 보여주는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국보 제326호·이화여대 소장), 고려 상감청자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청자 투각연당초문 붓꽂이’(보물 제1932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도 선보인다.

또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는 백제 시대 불교 신앙과 정교한 공예 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종이 부인인 소헌왕후(1395~1446)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 권상>(국보 제320호, 개인 소장) 등도 출품된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검색화면용 탁자를 설치해 <조선왕조실록>을 흥미로운 주제별로 나누어 관람객이 직접 선택해서 검색해 볼 수 있게 했다. 검색한 자료는 물에 씻기듯 사라진다. 조선 시대에 실록 편찬이 끝나면 훗날의 시시비비를 막기 위하여 초고(草稿)를 물에 씻어 없앴던 세초 과정을 상상해보는 효과를 주기위한 연출이다. 또 이번 전시 공간에 함께 소개되지 못했지만 국보나 보물로 새롭게 지정된 사찰, 누정 등 건축문화재와 대형 괘불의 생생한 영상을 상영한다. 

‘청자 투각연당초문 붓꽂이’(보물 제1932호). 문방구 가운데 붓을 꽂아 보관하는 청자 붓꽂이(筆架)이다. 고려청자 붓꽂이는 많은 예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묵호와 연적 등 문방구들과 더불어 고급품이 많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교체전시로 2번 이상 관람해야 할 듯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단위로 관람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한다. 또 코로나 19 경계 단계에 따라 박물관을 휴관할 경우 전시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 매주 전시 장면과 주요 전시품 등을 담은 다양한 주제의 온라인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www.museum.go.kr)과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한다. 문화재청이 선정한 주요 전시품 30건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를 21일부터 다음 갤러리(http://gallery.v.daum.net)에서 열 예정이다. 그림의 경우 3차례 정도 교체전시를 하는만큼 출품작 전부를 보려면 2번 이상 관람해야 할 것 같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와 활용 정책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두 국가기관인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옛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국보와 보물이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