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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의 수수께끼와 세형동검

“마한·진한·변진 등 삼한의 땅을 합하면 사방 한 변에 4000리인데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가장 강대해서….”

“진국이 천자(한무제)를 알현하고자 했지만 조선의 우거왕이 가로막았다.”

<후한서> ‘동이전’과 <사기> ‘조선열전’ 등에는 기원전 3~2세기에 존재했다는 ‘진국(辰國)’의 이름이 보인다. 진국이 한반도 남부에 광활한 영역을 차지했으며, 중국과도 통교를 원할 만큼 강력한 국가의 형태를 갖췄다는 얘기다. <삼국지>를 보면 “조선상(朝鮮相) 역계경이 우거왕에게 간언했으나 채택되지 않자 주민 2000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피했고, 이후 결코 조선과 왕래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위서·동이전’) 진국의 국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반신반의한다. 동시대 기록인 <사기>는 판본에 따라 ‘진국’과 ‘중국(衆國)’ 등 두 가지로 표현돼 있는데, ‘중국’은 ‘여러 나라’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국이란 한반도 남부에 흩어져있던 여러 소국 전체를 일컫는 범칭이라는 설도 있다. 기원전 194년 위만에게 쫓긴 조선의 준왕이 건설한 나라가 바로 진국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사기>의 일부 판본을 제외한 이후의 역사서들은 진국을 삼한의 전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진국’의 영역에서 확인되는 기원전 3~2세기대 문화의 양상이다. 세형동검(細形銅劍·폭 좁은 동검)으로 대표되는 정교한 청동기 문화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충주에서도 세형동검과 청동잔무늬거울을 비롯한 청동기 유물이 19점이나 확인됐다.(사진)

전문가들은 ‘진국을 구성한 소국의 수장(首長)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대의 수장은 정치와 제사를 겸한 제정일치 사회의 지도자였다. ‘하늘과 사람의 소통’을 독점한 그들은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기를 달고 나라의 길흉을 점쳤을 것이다. 덧붙여 세형동검은 한반도 청천강 이남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문화양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렇지만 단절된 문화란 있을 수 없다. 중국 동북방에서 만개한 뒤 한반도로 넘어온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 ‘세형동검’으로 재창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