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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분서와 IS의 문명파괴

    기원전 213년, 진시황제가 6국을 통일한 뒤 주연을 베풀었다.
 이 때 제나라 출신 박사인 순우월이 나서 간언했다.
 “이제 폐하께서 천하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제분들은 평민으로 사십니다. 만약 세력을 키운 신하들이 나타나면 폐하를 보필하기 어렵습니다. 은나라, 주나라 처럼 폐하의 자제들을 제후로 분봉해서 폐하를 보위하셔야 합니다.”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기독교 유적지 ‘요나의 무덤’ 잔해를 주민들이 옮기고 있다.

   ■진시황의 분서사건

  무슨 말이냐.

  은나라나 주나라 처럼 황제의 아들이나 친척, 혹은 공신들을 제후로 보내 다스리는 이른바 봉건제를 채택해야지, 중앙집권제로는 천하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시황제는 순우월의 주청을 공론에 붙였다. 그러나 시황제를 도와 통일 진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세운 승상(총리)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봉건제(분봉제)라는 것은 은·주 시대, 즉 흘러간 제도라는 것이다.

  천하가 어지러웠을 때, 즉 춘추전국시대 때는 각 제후들이 천하의 인재들을 서로 초청하느라 혈안이 됐지만, 지금은 천하가 통일되어 안정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집안에서 농업과 공업에 힘쓰고, 선비들은 법령과 형법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유생들만 지금의 것을 배우지 않고 옛 것만 배워 당세를 비난하면서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후들이 난립할 때는 유생들이 저마다 견해를 피력하고 자기가 개인적으로 배운 것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황제께서 천하를 통일하시어 흑백을 가리고 모든 것이 황제 한 분에 의해 결정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생이라는 자들은) 개인적으로 학습하여 조정의 법령과 교화를 비난하고~백성들을 거느려서 비방하는 말만 조성할 뿐입니다.”
  황제 한 사람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중앙집권 제도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다는 주장이었다.
 “유생들의 주장을 금하지 않으면 황제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붕당이 형성됩니다.”
 그러면서 이사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주청을 올린다.
 “진나라의 전적이 아닌 것은 모두 태워버리시고…. <시경>과 <서경>, 그리고 제자백가들의 저작들을 모두 태우게 하소서. 다만 의약과 점복, 농사서적만 남기시도록 하소서.”  
 진시황제는 이사의 주청을 가납하여 “그렇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시황제의 ‘분서(焚書)’ 사건이다.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이라크 북부 모술의 박물관으로 보이는 곳에서 망치로 조각품을 때려 부수고 있다. 

  ■파괴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진시황제가 분서령을 내렸을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기원전 305~기원전 30) 왕조의 후원아래 발전한 도서관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된 도서관은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까지 학문의 중심지였다. 이 도서관은 기하학의 유클리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 지구의 둘레를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등이 연구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도서관은 수난을 겪게 된다. 기원후 392년 로마황제 테오데시우스가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금지하게 되면서 다른 종교의 사원을 파괴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두루마리 서적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250년이 지나서는 복수가 자행됐다. 이곳을 침공한 이슬람 교도들이 두루마리 책들을 목욕탕 연료로 사용했다. 이번에는 ‘코란 내용이 없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불에 탄 황제와 황후

   1966년 8월 24일,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던 중국에서 고고학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10대 중반에 불과한 홍위병들이 명나라 13대 황제인 만력제(재위 1573~1620)와 황후 두 사람의 시신이 안장된 정릉 박물관 창고로 몰려갔다. 이미 박물관 곳곳에 ‘집권파를 타도하라!’ ‘황릉보호파를 타도하자!’ ‘지주 계급 분자 만력을 타도하라!’ 는 등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앳된 홍위병 소녀가 창고를 지키며 버티던 직원의 뺨을 후려갈렸다.
 “당신은 지주계급의 총 우두머리(만력제)를 비호하고 있어. 빨리 사인해.”
 직원의 힘이 빠져 결국 창고문을 열고 말았다.
 홍위병들은 황제와 황후 두 사람의 시신(인골)을 박물관 대홍문 앞 광장에 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른바 인민재판이었다. 홍위병들은 시신 이외에 황제 황후의 초상화 등을 증거자료로 삼아 내놓았다.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황제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황후 두 사람이 양 옆에 높였다. 홍위병 소녀가 소리쳤다.
 ‘집권파를 타도하라!’ ‘모든 악인을 소탕하자!’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추진하자!’
 구호가 끝나자 홍위병 소녀가 소리쳤다.
 “혁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때부터 수십명의 장정들이 품 속에서 돌멩이를 시신을 향해 던졌다. 세 구의 시신이 산산조각 났다.
 모인 군중들은 놀라움, 곤혹스러움, 환희, 찬탄 등이 엇갈린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홍위병 소녀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저들을 화형시켜라!”
 광장은 불바다를 이뤘다. 장작이 시신을 따라 폭발음을 냈다. 얼마후 소나기가 갑자기 내려 불기둥이 사그러들었지만 시신은 이미 다 타버려 그 재마저 흙탕물에 섞여 사라진 뒤였다.
 10대 중후반에 불과한 홍위병들이 황제에게 붙인 죄목은 ‘지주 계급 분자’였다.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빚은 참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슬람국가(IS)가 알쿠바 후세이니야 모스크을 폭파시키고 있다.

 ■IS의 반문명 행태

   모든 예가 종교와 정치의 이름으로 인간이 자행하는 광신적인 반문명의 행태들이다.
 2001년 자행된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불의 생생한 파괴 장면은 이미 14년이 지났는 데도 아직도 생생한 악몽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이슬람국가(IS)가 공개한 끔찍한 유물파괴 장면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떨릴 지경이다.
 이미 인질 참수 등 반인간적인 잔혹 행위를 서슴치않은 ‘이슬람 국가(IS)’가 이번에는 끔찍한 ‘문명 파괴’의 대열에 나선 것이다. 전동 드릴과 망치 세례에 산산조각난 ‘라마수(독수리 날개 달린 황소상)’와 ‘로즈한의 신’은 과연 어떤 유물인가.
 ‘라마수’는 모술 외곽의 니네베에 있는 ‘니르갈의 문’에 있는 석상이다. 티그리스 강 동쪽에 있는 니네베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9세기 쯤에 세워진 ‘니르갈의 문’은 니네베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유명하다.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찬란한 유물들이 ‘다신주의 우상’이라는 딱지가 붙은채 파괴된 것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IS대원은 “(고대 아시리아 제국과 아카드 왕국은) 다신주의를 숭배한 왕조들”이라 비난하고 “신이 우상 제거를 명했으니 우리에게는 이것이 수십억 달러짜리라 할지언정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이 뿐 아니다. IS는 지난해 7월부터 모술에서 성서 속 예언자 요나가 묻힌 곳으로 전해져오는 나비 유뉴스 묘지를 폭파했다. 지난 22일에는 모술공공도서관에서 폭탄을 터트려 희귀서적과 고문서 약 1만 점을 한꺼번에 태워 없앴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이같은 IS의 야만적 행위를 두고 ‘문화 청소’니 ‘인류 기억의 심장부가 가격당했다’느니 하면서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반문명·반인간의 만행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니 이 무기력을 어찌할 것인가.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