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했다. 즉위 조서에서 ‘임금과 신하는 물과 물고기처럼 즐거워하고(魚水之歡)이며 태평시대의 경사(晏淸之慶)를 도우리니 나라의 뭇 백성은 마땅히 내 뜻을 알도록 하라’고 했다.”(<고려사> <고려사절요>)
은제 주전자와 그릇받침.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미국 보스턴 박물관이 구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918년 6월(음력) 태조 왕건이 고려의 건국을 만천하에 알렸다. 동북아는 당나라가 멸망하고(907년) 이른바 5대10국 시대(907~960)라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 고려는 외세의 지원없이 자력으로 후삼국을 합쳤고, 곧 멸망한(926년) 발해의 유민까지 받아들인 진정한 통일을 이뤘다. 태조 왕건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뜻의 ‘천수’ 연호를 썼던 것처럼 고려는 천자국, 황제국을 자처했다.
고려말인 14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도.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소장품이다. 독존 형식의 아미타여래도는 현재 10점도 채 남아있지 않다.
광종은 ‘금상 황제의 덕이 미치길 바라며’라는 ‘퇴화군대사종’(956년·광종 7년)의 명문에서 보듯 고려는 ‘짐’ ‘황상’ ‘황제’ ‘폐하’ ‘천자’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고려는 쌍기와 같은 외국인을 고위관료로 기용할만큼 개방적이었고 활발한 물적 인적교류가 이뤄졌다.
중국 본토에 선 송(960~1234)과 거란족의 요(916~1125), 여진족의 금(1115~1234)은 물론 세계제국을 건설한 원(1271~1368)과 부대끼며, 때로는 정치적 간섭을 받아가면서도 능수능란한 외교를 통해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이어갔다. 지금의 코리아 국호를 알린 왕조가 바로 고려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고려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을 4일부터 내년 3월3일까지 개최한다. 배기동 박물관장은 “건국 1000년을 맞이한 1918년은 불행히도 일제강점기였다”면서 이번 1100주년 특별전의 의의를 다졌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고려~조선이라는 ‘하나된 코리아 1000년의 시대’를 활짝 연 것이 고려인데 남북 분단 탓인지 재대로 부각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통일의 유전자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국내 34개 기관과 영국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등 4개국 11개 기관이 출품한 450여 점의 고려유물이 출품된다. 이중 국보가 19건, 보물이 33건이다.
출품 유물 중에는 현전하는 160여점의 고려 불화 중에서도 10점도 채 안되는 희귀한 ‘독존 형식의 아미타여래도’(이탈리아 동양에술박물관 소장)가 소개된다.
청자주전자와 받침. 12세기 작품으로 보인다. 영국 피츠 윌리엄 박물관 소장품이다.
또 해안사에 찾아가도 친견할 수 없는 고려대장경 화엄경 목판도 공개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은제 주전자로서 고려금속공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은제 주전자와 승반(그릇받침)도 출품된다, 이 유물은 미국 보스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이다. 또 영국박물관이 소장중인 중국 둔황(燉煌) 천불동 불화가 한국최초로 전시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의 조각상인 건칠 희랑대사 좌성은 국내에서는 유일한 승려 초상조각이다. 이 좌상 역시 해안사 밖으로는 처음 나들이했다.
이밖에 청자 꽃모양 발(사발·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과 청자 주전자와 받침(영국 피츠윌리엄 박물관),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금동십일면천수관음(국립중앙박물관) 등 좀체 보기힘든 희귀 고려유물들이 총출동한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현존하는 최고 금속활자인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직지심체요절’의 출품이 좌절됐다. ‘직지’를 대여하는 조건으로 프랑스측이 요구한 ‘한시적 압류 면제법’ 입법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압류면제법은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국내에 들여와 전시할 때 압류나 몰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압류면제법이 문화재 환수에 역행한다는 반대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이다. 해인사에 찾아가도 친견할 수 없는 고려대장경판이다.
무엇보다 왕건상을 비롯한 북한 유물이 오지않은 것도 안타깝다. 2년 전부터 특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북한유물 전시가 예정에 없었다. 그러다 올들어 불어닥친 남북화해무드에 발맞춰 북한 유물의 전시가 급히 추진됐다.
그러나 아직 북한측의 회답은 없다. 박물관측은 당초 왕건상이 출품된다면 후삼국 말기 왕건의 스승으로 알려진 희랑대사의 좌상(보물 제999호)과 나란히 전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왕건상 출품을 결정하지 않음에 따라 전시내용을 일부 바꿨다.
배기동 관장은 “희랑대사 좌상 옆에 왕건상 자리를 빈공간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후삼국 통일을 위해 힘을 합한 제자의 스승의 만남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기다림의 공간이라는 여백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별전이 내년 3월3일 끝나는만큼 늦더라도 북한이 왕건상의 출품을 결정하여 그 여백을 채우면 대고려전 특별전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둔황 수월관음도. 10세기 오대 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둔호아 불화를 통해 같은 시기의 미술과 문화교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영국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번 특별전은 고려의 도읍인 개경에서 출발한다. 1123년(인종 원년) 200여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고려를 방문한 서긍(1091~1153)이 본 고려의 모습은 어땠을까.
서긍은 청자문화가 꽃을 피운 당대 개경의 모습을 “고려인의 집은 꿩이 나는 듯한 화려함에 용마루가 잇달아 붉고 푸른 빛으로 장식했다”(<고려도경>)고 혀를 내둘렀다. 청기와로 주택을 꾸몄다는 것이다. 서긍은 “고려의 풍습은 음식을 아끼되 주택의 치장을 좋아한다”고까지 말했다.
남송 태평노인의 <수중금>에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定窯·송나라 때 정주에서 만든 도자기)의 백자, 절강의 칠기, 고려 비색(청자). 오의 종이, 낙양의 꽃”(洛陽花建州茶 高麗秘色此天下第一)이라 할 정도로 고려청자는 유명했다. 서긍은 고려의 나전칠기를 두고도 ‘세밀가귀’(細密可貴) 즉 “세밀하고 귀하다고 할만 하다”고 칭찬했다.
서긍은 고려왕궁인 만월대를 두고는 “전각이 크고 웅장하다, 섬돌은 붉게 칠하고 난간은 동화(동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하여 화려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긍은 특히 “궁전 이름과 치미장식도 분수에 넘치게 했는데, 성상(송나라 황제)이 작은 일로 오랑캐를 책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려 왕궁이 황제의 궁궐처럼 화려하게 꾸몄지만 송나라 황제가 그냥 넘겼다는 것이다.
서긍이 고려 문화에 깜짝 놀랐듯이 개경에서는 왕실의 귄위를 상징하는 다채롭고 화려한 미술공예예술이 꽃을 피운다. 왕실주도 아래 회화·금속공예·나전칠기·자기 등 최고급 소재로 창조됐다.
고려문화의 정수하면 국교로 삼은 불교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고려의 승려들은 중세 유럽의 수도사처럼 고려 승려들이 일일이 베껴 사경을 제작했다. 필사의 전통이 인쇄로 전환되자 세계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인쇄문화는 사찰과 경전이라는 신앙 공간과 종교의 성전(聖典)을 매개로 꽃피었다.
청자 꽃모양 사발.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이다.
고려대장경에는 불교의 성전이라는 신앙적 의미 뿐 아니라 지식을 체계화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고려인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장경의 전시에서 진리를 향해 나아간 당대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함께 신앙의 중심인 불상과 불화, 그리고 그 내부에 납입된 복장물 등을 통해 불교의례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예컨대 충남 청양 장곡사의 약사여래좌상은 1000명이 넘는 승곡(僧俗)이 함께 발원한 보물이다. 10m가 넘는 발원문에는 병마가 비껴나기를 기원했던 700년전 사람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려 풍습 중에 특기할만한 것이 차문화다. 문인인 임춘은 ‘찻집에서 낮잠을 자면서(茶店晝睡)’라는 시를 남길 정도였다.
“몸을 던져 평상에 누워 문득 몸 잊었더니(頹然臥榻便忘形) 한낮 베개 위에 바람부니 잠이 절로 깨누나.(午枕風來睡自醒)”(<동문선>)
전시에서는 사찰의 입구에 있었을 법한 고려의 찻집을 작은 공간에 마련했다. 요즘의 카페처럼 고려인의 일상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차 마시던 공간에서 바라보았을 경치와 귓가를 스쳤을 소리, 실제 차를 덖는 향기를 전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차를 만들었던 차맷돌(청주 흥덕사 출토) 등 차와 관련된 유물들을 전시한다.
금동십일면천수관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뭐니뭐니해도 고려인의 최고 발명품은 금속활자다.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놀라운 창안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문헌상 금속활자로 간행된 최초의 책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다. 깨달음(證道)의 뜻을 밝힌 이 책의 발문을 보면 고려 무인정권의 실세인 최이(?~1249)가 “이 책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니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판각한다.”면서 “기해년(1239년)”이라고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책의 목판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정할 때 참고했던) <고금상정예문> 28부를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은 1377년(공민왕 13)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이다. 어떤 경우든 1447년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보다 210~70년 앞섰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특별전에 ‘직지심체요절’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박물관이 소장중인 딱 한 점의 고려 금속활자인 ‘복’(덮을 복)자와 조선시대 <능검경언해>를 찍었던 한글활자 6점이 전시된다.
고려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이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만약 늦더라도 북한이 기소장 중이던 ‘전’자와 2015년 남북한 공동발굴단이 개성 만월대에서 찾아낸 ‘아름다울 단’(북한에서는 사랑스러운 ‘전’으로 읽음)자가 출품되어 함께 전시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배기동 관장은 “이번 중앙박물관 특별전은 올들어 지방의 각 국립박물관이 기획·전시해온 다양한 고려전의 대미에 해당된다”면서 “우리 안의 또하나 유전자인 고려의 창의성과 독창성, 그리고 통합의 성과와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줄 것”을 당부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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