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피카소는 표절작가였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종종 모방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7세기)와 외젠 들라크루아·에두아르 마네(이상 19세기)의 작품들을 ‘모방한’ 연작시리즈를 냈으니 말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게걸스럽게 짐어삼켜 소화하는 작가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물론 그는 “천재성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엊그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한화 1968억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이 그런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주자인 들라크루아(1789~1863)의 동명작품을 패러디했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1832년 알제리를 방문한 들라크누아는 이슬람 여성들만의 공간인 ‘하렘’을 구경하고 ‘알제의 여인들’을 완성했다. 하렘은 원래 이슬람 여성들의 육아와 가사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한껏 치장한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그렸다. 이 작품을 계기로 동방의 풍속은 낭만주의 회화의 주요 주제로 자리매김됐다.
 1954년, 73살의 노인이 된 피카소가 ‘알제의 여인들’ 원작을 재해석한 연작시리즈 15점을 완성했다. 이 그림을 재해석한 계기가 있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오른쪽에 등장하는 물담배를 피우는 여인이 피카소의 마지막 반려자인 자클린느 로크(1926~1986)를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던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

하지만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들라크루아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경매최고액을 경신한 작품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풍만한 가슴에 노골적인 엉덩이에 모로 누워 두 다리를 꼰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드러낸채 성녀(聖女)처럼 무표정한 여인도 있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성(聖)과 속(俗)’으로 완전히 재해석했다는 평을 듣는다.
 “화가는 다른 화가 작품 중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직접 그려 수집을 완성하는 수집가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것이 되었지만….”
 요컨대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피카소의 말이다. 피카소의 비서였던 하이메 사바르테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피카소는 길바닥 굴러다니는 돌에도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기사작성에 김원일의 <피카소>, 이룸, 2004와 이자벨 드 메종 루주의 <회화의 파괴자인가 창조자인가, 피카소>, 최애리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2005를 참고했습니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수궁 돌담길  (0) 2015.05.15
양봉음위에 얽힌 사연  (0) 2015.05.14
'부(負)의 유산', 어떤 것들이 있나  (0) 2015.05.08
쓰러진 자격루의 교훈  (2) 2015.04.19
내 안의 학살본능, 제노사이드  (0) 201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