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6일 아침,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짐승과 주권(The Beast and the Sovereign)’ 특별전을 위해 설치 중이던 작품 하나를 본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이네스 두약(57)의 ‘Not Dressed for Conquering(정복을 위한 옷벗음·사진)’이었다.
작품은 전 스페인 국왕인 후앙 카를로스 1세와 볼리비아의 여성노동운동가 도미틸라 충가라, 그리고 개 한마리가 뒤엉켜 성교하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카를로스 1세는 꽃을 토하고 있고, 나치 친위대(SS)의 헬밋들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마리는 “이 작품을 전시에서 빼라”고 했지만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묵살했다. “관장이 이미 지난 2월 작품의 대여목록을 보고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그러자 관장은 전시회 자체를 취소시켜 버렸다. 표현의 자유를 해쳤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카를로스 전 국왕의 부인인 소피아 왕비가 미술관 재단의 명예회장인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일파만파로 사태가 번지자 마리는 전시회 취소결정을 번복했다. 관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스페인 언론은 이 사건을 ‘전대미문’이라 했다.
이런 전력의 장본인이 온갖 구설에도 1년 넘게 공석이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됐다. 그는 ‘바르셀로나 미술관 사태’에 대해 “미술관을 정치적 상황에서 보호하고자 전시를 취소시켰다”고 말했다.
그의 해명대로 바르셀로나 미술관은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원하는 카탈루냐주에 속해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전시회를 열면 온갖 우파신문들이 ‘카탈루냐 정부가 중앙정부를 모욕하는 전시에 자금을 대느냐’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마리는 “만약 전 국왕을 모독한 작품이 전시되면 이것은 스페인 중앙정부를 향한 카탈루냐 주정부의 공식도발로 여겨질 게 틀림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미술관 전시회는 ‘정치 주권의 서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정의에 동 시대의 예술적인 실천이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고 해체하는가’를 탐구하려고 기획됐다.
전시회 이름 ‘짐승과 주권’도 해체주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의 마지막 세미나(2002~2003년)에서 빌려왔다. 전시회 보도자료는 “‘짐승’은 야만성, 남쪽, 여성성, 노예, 식민지, 유색인종을, ‘주권’은 인간, 초인, 국가, 남성성, 북쪽 등을 가리키는 말로 표현된다”고 했다.
난해하지만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담은 전시회였다. 이런 전시회에 어울리지 않게 작품의 외양만 보고 ‘알아서’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다. 이게 바로 예술검열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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