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낼름 표현한 말모양 토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주 금령총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압도적인 크기(56㎝)의 말모양 토기가 발굴됐다. 그런데 이 말모양 토기의 모습은 혀를 쑥 내밀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금령총(5세기말~6세기초)을 발굴해온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4월부터 진행된 2차발굴에서 무덤 둘레에 쌓는 돌(호석)의 바깥쪽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큰 56㎝ 크기의 말모양 토기 1점 등 30여개체의 제사용 토기들을 수습했다고 30일 밝혔다. 제사용 토기 안팎에는 말과 소, 기타 포유류 등의 동물뼈와 굴, 고동, 조개류 등 각종 패각류, 뚜껑접시, 토제방울, 유리구슬, 쇠스랑 등이 확인됐다.

발굴된 말모양토기.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모습이 이채롭다. 왜 혀를 내민 모습으로 표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말모양 토기는 무덤의 호석 바깥쪽 깨진 항아리 위에서 발견됐다. 항아리 안에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항아리 위에 얹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머리와 앞다리 쪽만 발견됐으며, 등과 배 부분은 깔끔하게 절단된 듯한 흔적이 있었다. 말은 입을 벌리고 혀를 살짝 내민 모습이며, 얼굴·목·발굽 등 각 부분을 정밀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신체 비율도 실제 말과 흡사한 편이다.

이 말모양 토기가 확인된 금령총에서는 1924년 일제강점기 발굴에서 기마인물형 토기(국보 제91호) 2점이 확인된바 있다. 

주인상(높이 26.8㎝)과 하인상(높이 23.4cm)으로 구성된 이 기마인물형 토기는 무덤 안에서 확인됐다. 이번에 발굴된 말모양 토기와는 제작기법이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부장 양상은 사뭇 다르다. 1924년 발굴된 기마인물형 토기는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됐는데,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해 저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주술적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94년만에 재발굴중인 금령총에서 확인된 말모양 토기. 크기가 56㎝에 이를 정도로 그동안 발굴된 말모양 토기중 압도적 크기를 자랑한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그러나 이번에 출토된 말모양 토기의 크기는 기마인물형 토기의 2배가 넘는다. 또 무덤 밖에서 다른 제사용 유물과 함께 깔끔하게 절단된 채 머리와 앞다리 쪽만 확인됐다는 것도 다르다. 

신광철 학예사는 “제의 행위로서 제사에 쓰인 제기나 제수용품들을 의도적으로 깨뜨려 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상 대전대교수(역사학과)는 “제수용품 등을 깨뜨리는 행위는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라고 말했다. 이한상 교수는 “크기(56㎝)로 보아 일본 고훈시대(古墳·3~8세기)에 유행한 하니와(埴輪·흙으로 빚어 만든 토기의 일종)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번 발굴품이 입을 앙 다물었지만 다소 웃는 상인 기마인물형 토기와 달리 입을 벌리고 혀를 쑥 내밀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신광철 학예사는 “왜 혀를 내민 표정의 말모양 토기를 만들었는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발굴성과를 정리하자면 금령총 조성자는 무덤 안에는 기마인물형토기를, 무덤 밖에는 깨뜨린 말모양 토기를 차례로 부장함으로써 무덤 주인공의 영생을 빌었음을 알 수 있다. 

신광철 학예사는 “추가조사에서 말모양 토기 뒷부분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령총은 지난해부터 재발굴하기 시작했다. 1924년 일본인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가 조사해서 기마인물형 토기와 금관(보물 제338호), 금제 허리띠 등을 발굴했지만 당시에는 유물 수습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에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해 9월 고분 규모와 축조 방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94년 만에 다시 발굴했다.

박물관측은 지난 4월 시작한 제2차 금령총 발굴에서 호석 외부 유물을 수습하는 한편 무덤 조성 방법과 규모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금령총 직경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8m가량 더 긴 28m 내외로 확인됐다. 또 지하식이 아닌 지상식 적석목곽묘인 것으로 드러났다. 

1924년 금령총 무덤안에서 확인된 기마인물형토기 2점. 말의 표정은 웃는 상이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이로써 지금까지 신라 금관이 나온 적석목곽묘는 모두 지상식 무덤이라는 사실이 규명됐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금령총과 맞물린 또 다른 고분 4기도 확인됐다. 봉토와 호석을 갖춘 지름이 약 5m인 옹관묘를 비롯해 적석목곽묘 2기, 소형 분묘 1기가 드러났다. 

또 금령총 고분 주변 문화층 양상을 파악해보니 5∼6세기 신라 문화층이 현재 지면보다 2m 아래에 있었다. 신광철 학예사는 “이것은 식리총과 노동동 고분군 조사와 복원 과정에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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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duhan 2019.10.01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시기의 일본 말붙 하니와(埴輪)은 90cm정도도 한 크기이다.
    http://www.emuseum.jp/detail/100567?x=&y=&s=&d_lang=ko&s_lang=&word=&class=&title=&c_e=&region=&era=&cptype=&owner=&pos=1&num=1&mode=&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