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부처님이 하강하여 머무는 영산으로 추앙받던 경주 남산(해발 468m) 계곡에서 불상의 머리가 발견됐다. 머리를 되찾은 불상은 ‘청와대 미남석불’로 알려진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사각형 모양의 의자에 앉아있다. 경주 내남면 용장리의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절터) 제4사지를 조사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불상의 머리, 즉 불두(佛頭)를 찾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미남불상(왼쪽)과 이번에 출토된 약수곡 불두. 이른바 ‘미남불상’은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에게 헌상된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다. 원래는 경주 이거사터에 있었는데, 일본인이 데라우치 총독에게 이 석불을 선물하려고 서울의 총독부 관저로 옮겼다. 이 석불은 1939년 총독관저가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자 함께 자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부터 미남불상이라 일컬어졌다.

불두는 절터에 방치되고 있던 ‘머리없는’ 석조여래좌상(높이 1.15m, 너비 0.8m)의 복원정비를 위해 불상의 원위치를 확인하려고 조사하던 중 발견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에 소개된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있던 위치(미확인)에서 옮겨진 상태로 반듯하게 놓여 있다. 또한 그 옆에 불상의 중대석과 상대석이 불안정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불상의 하대석도 원위치에서 움직여 동남쪽 위에 있는 큰 바위 아래에 바로 놓여 있다.

이번에 발견된 불두는 큰 바위 서쪽, 즉 하대석 서쪽 옆의 땅속에 묻혀있었다. 머리는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면 오른쪽 일부와 오른쪽 귀 일부에서는 금박이 관찰됐다. 미간사이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은 떨어진 채 불두 인근에서 같이 발견됐다.

경주 남산 약수곡에서 발견된 불상의 머리. 절터에 방치된 석조여래좌상의 ‘머리’인 것으로 추정된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성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3팀장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의 원형을 고증하는데 있어 중요한 학술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불두 주변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됐다.

머리가 유실된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후기 작품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과 같이 ‘항마촉지’의 도상을 하고 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석가모니가 마귀의 무리를 항복시키는 인상(印相)이다.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단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 아래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싯타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순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대좌(불상을 놓는 대)는 상당수가 팔각형으로 조성된 것에 비해 이 불상의 대좌는 방형(사각형)으로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머리 없는 경주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있던 위치(미확인)에서 옮겨진 상태로 반듯하게 놓여 있다. 또한 그 옆에 불상의 중대석과 상대석이 불안정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이러한 방형대좌는 ‘미남석불’로 알려진 청와대 안 녹지원 석불좌상과 같은 형식이다. 청와대 ‘미남석불’은 최근 경주 이거사 터 출토품으로 알려졌다. 이거사는 “성덕왕이 재위 35년 만인 736년에 죽자 시호를 성덕(聖德)이라 하고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삼국사기> ‘성덕왕조’)고 할만큼 유서깊은 절이다.

이거사 터에 있던 이른바 ‘미남석불’은 1912년 경주의 일본인(도다이라 료조·小平亮三)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穀·1852~1919)에게 진상한다면서 서울의 총독관저(중구 예장동)로 옮긴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1939년 총독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졌다.

이번에 불두가 확인된 경주 남산은 부처님이 하강해서 머무는 산으로 알려져왔다. <삼국유사>는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했다”고 기록했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에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있다.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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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duhan 2020.06.12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리 없는 불상"은 한국 각지에 있다.한국인은 "일제가 파괴했다!"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조선 시대 유교 탈레반이 참수하고 방치한 것이다.그 일에 왜 글을 쓰지 않는다?

    • kimduhan 2020.06.23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원주에 있는 거돈사는 황량하다. 저 너른 터에 신라 양식 석탑 하나와 부처상 사라진 석좌(石座) 하나가 서 있다. 언제 절이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조금씩 부서지지 않고 단기간에 파괴됐다고 폐사지 흔적은 말한다. 1566년 개성 사는 유생이 이성계가 살던 양주 회암사를 불태우려는 시도가 적발됐다.(1566년 4월 20일 '명종실록') 33년 뒤인 1599년 6월 4일 '선조실록'에서 회암사는 '회암사 옛터'로 변해 있었다. 그 사이 유생들이 방화를 하고 불상 목을 깨뜨려 담벼락 아래 버린 것이다. 절에 있던 무학대사 승탑은 1821년 광주 사는 유생 이응준이 아비 묘를 쓴다고 부서뜨렸다.(1821년 7월 23일 '순조실록') 서울 탑골공원에 있던 원각사는 연산군 때 폐사되고 운평(運平·무희) 1000명과 광희(廣熙·악사) 1000명과 가흥청(假興淸·2급 기생) 200명이 상주하는 궁중 음악원 장악원(掌樂院)으로 변했다.(1505년 2월 21일 '연산군일기') 그런 절이 팔도에 숱하고, 목 달아난 불상이 도처에 흔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oid=023&aid=0003540985&sid1=110&opinionType=todayColumns

  2. Abe 2020.06.12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화유산을 포함해서 일본의 침략자들이 파괴하고 수탈해간 것들이 어디 한두개인가???

    • kimduhan 2020.06.12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 통치 시대 이전의 한국에는 "문화 유산"이라는 말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 Abe 2020.06.12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 군국주의 강점기 동안에 왜구들에 의해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파괴되고 수탈당했지요... 그리고 우리의 고매한 문화를 말살하기 위하여 갖은 만행을 저질렀지요...

    • kimduhan 2020.06.12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일본 통치 시대 이전에는 "문화 유산"이라는 개념이 조선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조선은 그것을 지킬 수 있나요?존재하지 않은 개념을 어떻게 지키는가.사실은 이 사진처럼 문화를 파괴했거든요.탈레반 조선 유학자가.

    • Abe 2020.06.12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의 나라 역사 왜곡은 왜국의 특기이지요...
      문화유산 이라는 단어는 존재했는지 모르겠지만
      개념은 있었지요... 없었다는걸 증명해 보던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현대의 왜인이 어떻게 단정짓지???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이란 걸 알까?

    • kimduhan 2020.06.12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나라 문화재 인식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재라는 개념이 일본인들에 의해 도입되고 제도화됐다는 논리다. 지금의 문화재 체계가 일제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2YQYAUS8

    • kimduhan 2020.06.12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먼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당시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의 반출이나 훼손 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1933년의 ‘조선보물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과 1950년 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모방하여 급히 제정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보호법의 입법목적, 문화재라는 용어, 문화재의 분류 등이 매우 유사하다.
      https://biz.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529500030

    • kimduhan 2020.06.12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3. 일본-남한-북한의 문화재정책 변천사

      '문화재’와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한국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일제 식민통치 시기의 문화정책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Mplaza/1265969

    • kimduhan 2020.06.12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석굴암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에 의해 ‘근대적으로 석굴암이 발견’된 이후, 비로소 석굴암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공공연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석굴암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된 경로와 과정을 석굴암의 ‘공론화’로 규정하고자 한다. 공론화는 먼저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규정 과정과 이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작용에 의해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건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석굴암은 불교 사원으로, 성스러운 예배의 공간으로 기능했지만 ‘근대적 재발견’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관광의 대상으로 변화되었다. 석굴암을 목적지로 한 여행과 그에 대한 인식은 강점기 일본인들이 제시한 문화재로서의 새로운 개념 규정, 취미로서의 관광이라는 측면이 주축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석굴암을 조선의 대표적인 과거 미술로 상정하고, 대대적인 수리・복원 공사를 통해 근대적 취미의 공간인 관광지로 변화시켰고, 산길을 뚫어 불국사로부터의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이 길은 석굴암의 관광지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한 마음 속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 조선의 영화를 대변하는 석굴암 관광은 유적을 보호할 줄 아는 문명국 일본의 자랑이 되어 쇠락한 현재 조선을 고도의 문명국가인 일본과 대비되는 타자로 인식하게 했다.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것은 제국주의 근대 국가 ‘일본’의 주도로 그들의 認知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77331237&page=2

    • kimduhan 2020.06.12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화재라는 말은 본래 1950년에 일본에서 문화재보호법을 만들면서 독일어의 ‘Kulturguter(영어의 Cultural Properties)’를 한자어로 옮기면서 탄생한 용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1961년에 문화재관리국 직제를 공포하면서 ‘문화재’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의미는 문화재에 대한 용어가 중국에서는 ‘문물(文物)’, 타이완에서는 ‘문화자산(文化資産)’, 북한에서는 ‘문화유물(文化遺物)’로 각기 다르게 쓰이고 있는 사실을 통해 쉽게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http://www.yeoju.go.kr/history/jsp/Theme/Theme.jsp?BC_ID=c0002

    • kimduhan 2020.06.12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聯合)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은 일본법을 흉내냈으나 문화재 보호의 실제 수준은 일본보다 크게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수원시 공동주최로 10일 오전 9시30분부터 경기도문예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문화유산대토론회에서 金정호 농업박물관 관장은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金관장은 이날 `문화유산의 제도적 보호'라는 주제발표문에서 "한국은 광복후에도 日帝의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호령'을 그대로 적용하다가 지난 62년에 문화재보호법을 새로 만들었으나 일본 문화재보호법의 형식을 그대로 본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재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文物'에다 재산 또는 재화의 개념을 첨가한 `일본의 신조어'라면서 우리나라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金관장은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이 7차례의 수정을 거쳤으나 행정편의와 권위주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은 시, 군 등 기초단체에 문화재 지정권과 독자적인 매장문화재 발굴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非지정문화재 보호와 관련한 규정 법규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171947

  3. Abe 2020.06.12 2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도 도배질을 해놓았군.... 이 왜구 아저씨 흥분한 모양이네...

    왜구들이 무력으로 강제 점령하면서 뿌려놓은 더러운 잔재들 청소가 아직도 다 않되었다는 사실과
    결론은 일본 따라하다보니 문화재 관리가 엉망이었다 이거네..... 왜구들이 강점기에 우리의 문화재를 관리한건 우리를 문화적으로도 침략하기 위함이었을 뿐,,,,, 석굴암도 관리한다며 오히려 더 망쳐놓았구만....

    왜구 아저씨 ! 인터넷 검색하면 자료 수만개 나오고 자기입맛에 맞는글로 도배하는건 초딩들도 할 수 있는 것... 보아하니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았네 뭐....

    • Abe 2020.06.12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왜구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문화재를 침탈했다는게 당초의 논점이라는거 잊지말고.....

    • kimduhan 2020.06.12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력으로 강점?그런 말 할 필요 없이 친일파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라 간단했다.아니야?동서 고금의 역사에서 전쟁도 안 하고 집권층이 나라를 팔아먹은 예는 한국 외에 따로 있어요?나는 모르지만 Abe씨는 압니까?

    • Abe 2020.06.1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논리가 바로 왜국의 꼴통 극우 혐한주의자들의 전형이지..... 총칼로 겁박하고 무력으로 강제한 사실은 쏙 빼놓고 나라를 팔아먹어??? 나라가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인가 ??? 이런식으로 본질을 흐리며 사실을 왜곡하니 경멸을 받는거요...

      곤회장 인터뷰는 보았나?

    • kimduhan 2020.06.12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면 이완용은 일본에 무력으로 살해당한 비극의 정치인이야.매국노가 아니다.

    • Abe 2020.06.12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또 무슨 개가 풀 뜯어 먹는 얘기?
      수준 차이가 과도해서 답변 거부 !

    • kimduhan 2020.06.12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인은 모순 덩어리이네.

    • Abe 2020.06.13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번역기 좀 잘 돌려서 뜻이나 잘 이해하고 글을 쓰라고 알려주는 이 한국인의 친절함...

    • kimduhan 2020.06.13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인은 이완용들 오적은 매국노라고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 정부의 한 병합 조약 체결은 일본에 무력으로 강제되었다고도 믿고 있다.이는 모순은 아니니?강제됐다면 피해자야.

    • Abe 2020.06.14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리 왜구라도 기본은 되어있어야 말이라도 섞지.. 글의 앞뒤 좌우를 이해 못하는 붕어 아이큐에게
      무얼 가르칠 수 있으랴....

      그냥 거품 물고 날뛰는 미친개.... 딱 그 수준으로만
      대해야 겠군...

      싸구려 번역기 말고 좀 쓸만한 걸 쓰던지... 쯧쯧...
      쥐약먹고 길길이 날뛰며 뱉어내는 똥개의 비명인지
      글인지도 모를 글도아닌 글자만 나열하는 수준하고는...

    • kimduhan 2020.06.14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반론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일본의 병합이 강젠다면 한국에 매국노는 존재하지 않는다.매국노가 있다면 일본은 무력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병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Abe 2020.06.14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붕어 왜구야 반론 불가가 아니고,,, 수준미달이라 하기 싫다니까.... 구글에 치면 백만개도 나오는 사실을
      내가 왜 맞다 틀리다 하겠니? 이 붕어 머리 왜구야?

      딱 붕어 아이큐 왜구들의 용어로 설명 해주께...

      왜구 군국주의자 들의 총칼 무력과 강압 98 + 이완용 등 매국노라 일컬어지는 왜구 사촌들의 부역질 3 = 100,,,, 이제 이해가 되니 붕어보다 못한 아베 같은 왜구 아자씨 ?

      98+2=100

      이 정도는 이해 하지요? 이해 못하면 그냥 해골 그려진 약 먹든지!

    • kimduhan 2020.06.14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100분의 2밖에 기여하지 않는 것에 100년 이상 지난 지금도 한국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로 인정되고 있나요?그렇다면 이 왕가의 분이 죄는 크다.왕자는 일본군에서 중장도 맡고 있었고.

    • Abe 2020.06.14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구의 교활함이 딱 드러나는 군요...

      총칼 군대로 겁박하며 맺은 조약을 겁먹고 오줌 싸는 강아지가 동의 했다고 해서 먹다남은 뼈다귀 조각 던져주고나서는 ...... 강아지에게서 샀다고 우기며 책임을 전가하는 비루한 왜구의 위정자들...

      딱 그 수준이지... 지금은 미중러의 똥강아지로 전락해보니 좀 이해가 될까???

      참고로 98 + 3= 101 이고,
      곤 회장님은 잘 지내신대요?

    • kimduhan 2020.06.14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완용은 병합에 관해서 거의 죄는 없다’는 주장을 들은 것은 처음이네요.

    • Abe 2020.06.14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해 능력이 떨어지네요...
      이완용의 개인적인 죄악은 차고 넘쳐 매국노라 수천년간 욕을 먹겠지만 왜구 군국주의자들의 죄상에 비하면 엑스트라일뿐....

      만악의 근원과 처단의 궁극적 대상은 왜구라는 뜻이지요... 이완용에게 죄과를 넘기려는 그 간교함과 함이 죄업을 더 쌓고 있지요...

    • kimduhan 2020.06.15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습니까, 그럼 이완용에 대한 현대 한국인의 인식은 Abe씨와 다른 더 엄격한 것 같군요.그도 명예 회복이 필요한 것 같아요.Abe씨가 노력하세요.

    • Abe 2020.06.15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한번 설명해 드리지...

      이완용은 회복할 명예도 없고 용서 할수도 없는
      역사의 크나큰 죄인.... 이완용에 비하면 왜구 군국주의자들은 한 500배쯤 죄질이 더 나쁜 악의 근원...

    • kimduhan 2020.06.15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일성 군국주의자들은 한국을 침략했는데 그들의 죄악은 어떠세요?중국 공산당도 북한의 침략에 가담하고 한반도 분단을 계속하고 있는데...저는 일본이 과거에 한국에 대해서 죄책을 한 것은 인정합니다.

    • Abe 2020.06.15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북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왜국....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하늘까지 쌓고도
      아직도 간교한 책략으로 음해하고 해를 끼치는 왜국..

      분단의 문제를 왜구와 논하고 싶지는 않음.

    • kimduhan 2020.06.15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왜국이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인가요?일본은 조선을 분할하지 않고 전역을 통치하더라구요.분할한 것은 소련과 미국입니다.

    • Abe 2020.06.16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력과 강압으로 강제 합병 - 왜국, 2차 세계대전에 우리민족 동원 - 왜국의 항복과 패전 - 왜국 병합지 연합군에의한 분할 점령 - 38선 탄생

    • kimduhan 2020.06.1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국은 한반도 고스란히 포기했거든요.키타 절반 또는 남쪽 절반만 해방된 것이 없어요.게다가 여운형의 건국 준비 위원회가 수립한 조선 인민 공화국에 대해서, 1945년 9월 6일 전 한반도의 행정권을 이양했습니다.일본의 어디에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 거죠?

    • Abe 2020.06.16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읽고 제대로된 반론을 하시요...

      왜구들이 원폭 두방 맞고 연합군에게 무조건 무릎꿇으며 항복했지 뭘 이양해? 천박한 왜구 아저씨...

      왜국의 강제병합지라서 분할 점령 된것이고..
      천벌을 받을 죄업 모르쇠하고 이제는 이완용 대신 여운형 핑계대려고? 천박한 왜구 같으니라고...

      레바논을 아무리 경제 유인으로 겁박해도 않되지?
      경제동물 왜구의 치졸함은 이제 모두 다 알거든...

    • kimduhan 2020.06.17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은 원폭과 소련 참전이란 2개의 요인으로 최종적으로 항복을 결단했습니다.그리고 조선 총독부는 여운형들 전 조선의 행정권을 정상적으로 이양했지만 연합국이 조선인 자치 능력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결국 직접 미군이 군정 통치 개시했습니다.

    • kimduhan 2020.06.17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총독부 등 주요 정부 기관 건물에서 일장기를 내려놓고 태극기를 게양하였습니다.그러나 미군은 그 태극기를 끌즙, 다시 일장기를 내걸게 하고 군정 시작 후에 성조기를 게양한 것입니다.

    • Abe 2020.06.1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확히 할 점은,,,,
      왜구들의 무력합병과 2차대전 개전과 패전으로
      연합군이 왜구들이 점령하고있던 우리의 국토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분단이 시작된 사실...

      북쪽은 이미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고,
      왜구들이 패전이 가시화되자 부드럽게 도망가기위해 간특한 술수로 여운형에게 건준을 제안했고,
      일왕의 항복으로 이미 게임 끝났는데 무슨 이양?

      연합군은 패전국의 점령지를 점령했을 뿐...
      아베 총독이란놈은 그 짧은 재임기간동안 온갖 악행 자행했고,,, 패전국 졸장이 선택권이 없었는데 무슨 태극기며 이양?

      천박한 왜국의 간교한 아베 노부유키가 ???

      역사는 창작이 아니다...

    • kimduhan 2020.06.17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분할 통치했다면 일본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시죠.그러나 일본은 한반도를 도대체로서 통치하고 있어 일체로 건국 준비 위원회에 행정권 이양을 했어요.일본은 항복하고 행정권도 이양하고 그런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kimduhan 2020.06.17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방과 동시에 조선 민중들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건국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총독부 건물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몇 일 후 미군 선발대가 비밀리에 도착하여, “미군이 진주하기까지 모든 체제를 변경하지 말고 계속 유지하되, 정식 항복할 때 일본 통치기구를 그대로 미군에게 인계하라” 통고하였다. 미군의 통고를 받은 조선총독부는 8월 18일 오후에 여운형에 대한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하고 인계하였던 신문사와 학교 등을 다시 접수하였다. 총독부에는 일장기가 다시 걸렸다. 그러나 조선 민중들은 이를 무시하고 서둘러 9월 6일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미군의 남한 진주 하루 전인 9월 7일 맥아더는 38선 이남에 대한 점령정책을 명시한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란 6개항의 포고 제1호를 발표하였다. 포고문은 ‘38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최고 통치권’은 자신에게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체의 기존 기구들과 인물들의 보존, 점령사령부의 모든 명령에 대한 복종,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엄벌’을 명시하였다. 이 포고는 남한 상공에 뿌려졌다. 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것은 해방으로부터 약 3주 뒤인 9월 8일이었다. 9월 8일 하지중장이 이끄는 미군은 공군의 엄호 하에, 완전무장을 하고 인천에 상륙하였다. 미리 일본경찰이 동원되여 한국인들의 일체의 외출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 점령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환영하고자 외출했다가 경비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의 총격을 받아 죽거나 다쳤다. 한국인들이 이에 항의하자, 미군 당국은 이를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일본경찰을 두둔하였다. 미군은 해방자로서가 아니라 점령군으로 왔던 것이다. 진주 다음날인 9월 9일 뿌려진 포고 제2호에서는 “포고령을 위반한 자는 사형 등의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하였다. 9월 9일 미 제24군단의 하지중장과 총독부 아베총독이 항복조인식을 가졌다. 이에 맞춰 일장기가 내려가고 미국의 성조기가 올라갔다. 그것이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식민지 지배자가 바뀐 것이다.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ndhbjb-8&id=94&page=3

    • kimduhan 2020.06.17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방 당일 오전에 여운형이 일본총독부의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와 면담했다. 엔도는 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대신해 항복 소식을 설명하고 일본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협의를 여운형에게 요청했다. 총독부는 그 전에 친일 부역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민족주의 계열에게 먼저 제안했지만 대담자 송진우(宋鎭禹)는 임정봉대(臨政奉戴)란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운형은 달랐다. 이미 1년 전 1944년부터 건국동맹을 만들어 해방 직후를 예견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직후의 공간은 우익(右翼)보다 좌익(左翼), 온건파로 구분됐지만 사회주의 계열에 속하는 여운형에게 힘의 균형이 맡겨졌다.


      여운형은 바로 당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를 발족한 후 다음날 서울 휘문중학교 운동장에서 경과 보고를 진행했다. 그 연설 내용을 요약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민족의 해방의 날이 왔습니다. (중략) 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총독부로부터 치안권과 행정권을 이양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새 역사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프고 쓰라린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하여야 합니다. 개인의 영웅주의는 단연 없애고, 끝까지 일사불란한 단결로 나아갑시다. (중략) 우리들은 백기를 든 일본인의 심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통쾌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아량을 보입시다. (중략) 해방된 오늘, 지주와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손을 들어보시오. 농민, 노동자들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을 들어보시오. 일제 통치 기간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친일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건국사업에 매진해야 됩니다.
      -1945년 8월 16일 건국준비원회 주최 보고대회 중 여운형의 연설 일부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9425418081

    • Abe 2020.06.18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논점을 아무리 돌리려해도, 궤변잡설로 사실을 호도해보아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구들의 강제점령이 우리민족의 최대비극인 남북분단을 초래했다는 진실.... 강점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연합군에 점령될 이유도 없었다...

    • kimduhan 2020.06.18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러시아가 병탄하고 있었습니다.그렇게 되면 소련의 일부로서이지만, 조선 전체의 일체성은 유지됐는지도 모르겠네요.

    • Abe 2020.06.18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유치하고 무책임하며 간교한 역사인식이구만..
      역시 군국주의자며, 극우 혐한론자이고 비열한 양심의 소유자이구민....

      너는 내게 죽도록 고문 받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
      아니면 지나가는 똥개에게 물려서 광견병으로 죽었을거야... 이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왜구들은 그래서 경멸과 분노의 대상일 뿐이지..

  4. Abe 2020.06.13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준차이라는게....

    국가가 돈주고 사고파는 물건인가?
    무력 아니면 돈이라는 극단적 이분법....
    스스로 설정한 모순된 선택의 틀안에 들어오지 않는다하여 상대방을 모순으로 칭하는 단세포적 사고...
    일제의 무력과 강압적 침탈이라는 근본은 숨기고
    엑스트라에게 전가시키는 간교함...

    통칭하여... 왜구 종특

    • kimduhan 2020.06.13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면 이완용은 매국노라고 불리는 이유를 가르치세요.

    • Abe 2020.06.14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얼 가르쳐.... 다 알고있는데....

      다만, 이완용이 국가라는 상품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인이고 왜구라는 고객이 대한제국이라는 물건을 구매했다고 이해하는 붕어 아이큐 왜구들과,

      남의 글 이해도 못하면서 인용하여 댓글 도배질해대는 문맹 왜구들은 가르킬 자신 없음...

      그냥 경멸하고 조롱해주면 충분함...

      이 글도 이해 못하고 염병 풍년 하겠지만...

    • kimduhan 2020.06.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자를 몰라서 그런가, 매국노(賣國奴)라는 것은 나라를 판 자식이라는 뜻이다.

    • Abe 2020.06.14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kimduhan 아가야
      어른들 노는데서 좀 나가줄래..

    • kimduhan 2020.06.14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자를 알지 못하자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조차 잘 모르게 되는 사례.

    • Abe 2020.06.14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예상대로 염병 풍년하는거 보니 붕어도 안되는 쏘가리 이구만....

      왜구 군국주의자들의 무력 강제 점령에 관한 담론이
      결국 쏘가리 수준의 글에서 종결 되는구나...

      천박한 왜구 같으니....

      근데 곤 회장 인터뷰는 읽어 보았냐고 몇번 묻잖아요
      쏘가리 왜구 아저씨 ???

    • kimduhan 2020.06.14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를로스 곤?흥미가 없습니다.나는 한국에 관심이 있습니다.

    • Abe 2020.06.14 2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난 한국에 관심 많은 꼴통 극우 왜구 군국주의자가
      곤 회장님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많은데....

      왜구들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데..

    • Abe 2020.06.14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긴... 왜구들은 자기 잘못은 관심없고 다 잊어버리거나 왜곡하지....

      깜빡했네....

    • kimduhan 2020.06.14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관심이 없어요.죄송합니다

    • Abe 2020.06.14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제가 더 죄송합니다.
      왜구라는 사실을 깜빡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