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홀로 됐고, 나도 혼자이고…. 뭐 둘 다 즐거운 일도 없고…. 어떠신가요. 있는 걸로 없는 것을 바꿔보심이….”(陛下獨立 孤분獨居 兩主不樂 無以自娛 願以所有 易其所無)”
 

한나라의 ‘사실상’ 황제인 여태후(?~기원전 180)가 한 통의 외교서한을 받는다. 흉노의 묵돌 선우(鮮于·왕)가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서신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당신도 과부, 나도 홀아비이니 함께 만나 즐겨보자”는 것이었다.  

<사진1>흉노의 귀족무덤인 골모드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장식들. 흉노인은 예로부터 문화교류의 전달자로 그 역할이 컸다./강인욱 교수제공

 

■“함께 즐겨보자”는 흉노왕의 연애편지
도저히 외교서한이라 볼 수 없는 사적인 연애편지였다. 아니 지금으로 치면 성적 모욕감을 한껏 준 스토커의 쪽지에 불과했다. 사실 여태후가 누구인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고조)의 부인이다, 남편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여걸이었다.
기원전 195년 남편이 죽자, 아들(효혜제·기원전 195~188)을 대신해 사실상의 황제 노릇을 했다. 오죽했으면 사마천이 역대 황제의 전기인 <사기> ‘본기’에 ‘여태후 본기’를 올렸을까. 사마천은 여태후를 황제의 반열에 올렸다.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만 했다. 모든 정치가 안방에서 이뤄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으니까. 또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쓰니 의식이 나날이 풍족해졌다.(<사기> ‘여태후 본기’) 그런 여태후에게 흉노의 왕인 묵돌 선우가 연애편지나 다름없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여태후는 부들부들 떨었다.
 ‘묵돌이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여태후는 지금으로 치면 장수들을 총동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다. 상장군 번쾌가 나섰다.
 “저에게 10만 병사만 주면 저 흉노를 가로·세로로 짓밟아 쓸어버리겠나이다.”
서슬퍼런 여태후의 기세에 편승한 발언이었다. 다른 장수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중랑장 계포가 나섰다.
 “저, 번쾌의 목을 당장 쳐야 합니다. 고조(유방)께서도 군사 40만명을 동원하고도 ‘평성의 치(恥)’를 당했는데 어떻게 10만명으로 흉노의 한복판을 짓밟는다는 말입니까.”
계포의 직소(直訴)가 이어진다.  
 “진나라 시황제도 흉노 정벌을 일삼았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 망했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번쾌가 아부를 떨어 천하를 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회의의 분위기는 계포의 한마디로 급반전된다. 여태후도 모욕감을 애써 감춘채 흉노정벌의 꿈을 접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계포의 말이 옳았다. 당대 흉노는 진과 한나라를 능가하는 대국이었으니까…. 그렇게 능욕을 당해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2>흉노 무덤에서 발굴된 마차의 부속품들. 기마전략은 흉노를 강대국으로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인욱교수 제공


■통일 진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다
원래 흉노의 선조들은 외몽골에서 떠돌던 유목인들이었다. 그러다 기원전 7세기부터 재빨리 스키타이의 기마전법을 습득한다. 주변의 종족들을 병합시키면서 정치세력을 결집시킨다. 흉노의 기마전법은 중원의 나라인 진·조·연나라를 충격에 빠뜨린다.
세나라는 변방에 장성을 쌓아 흉노의 침입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진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했지만(기원전 221), 흉노는 두고두고 골칫거리였다. 시황제가 어느 날 점을 쳤는데 “‘호(胡)’, 즉 흉노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점궤가 나왔다. 사실 점궤인 ‘호(胡)’는 시황제의 아들인 ‘호해(胡亥)’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진나라는 2세 황제인 호해 때문에 단 15년 만에 나라를 잃었으니까….
그러나 시황제는 호(胡)를 흉노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시황제는 몽염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흉노정벌에 나섰다. 그런 뒤 만리장성 수축에 나섰다. 하지만 장성 수축과 변방수비에 수십만명을 동원했다. 민심이 시황제를 떠났다. 결국 국경수비대로 끌려가던 진섭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켰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진나라가 흉노정벌에 힘쓰는 바람에 나라가 망했다”는 계포의 언급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나라 유방이 항우와의 건곤일척에서 승리를 거두고 천하를 얻는다.(기원전 202) 북방의 흉노는 중원이 어지러운 틈을 타 강력한 힘을 키웠다. 두만 선우(?~기원전 209)에 이어 정권을 잡은 묵돌 선우(기원전 209~174)가 흉노를 강대국으로 키웠다.
천하의 고조도 묵돌선우에게 무릎을 끓고 만다. 그것이 계포가 말한 ‘평성의 치욕’이다.

 

<사진3>흉노의 영역. 한나라의 영역을 능가하는 제국이었다. (출처:<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 흉노>, 사와다 이사오, 아이필드에서)


■‘동생이 되겠나이다’ 한나라 무릎을 꿇다
때는 바야흐로 고조가 중원을 통일하고 의기양양하던 기원전 202년 한 겨울. 고조는 개국공신인 한왕(韓王) 신(信)을 흉노와의 국경지역을 파견한다. 하지만 신은 흉노의 기습을 받고는 항복하고 만다.(기원전 200) 묵돌 선우는 파죽지세로 남하한다. 역시 천하통일로 기세가 오른 한 고조는 40만 병력을 동원, 친정에 나선다.
하지만 맹추위와 눈보라에 한나라군의 20~30%가 동상에 걸린다. 여기에 묵돌 선우의 계략이 빛났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구 소련 침공 때 구 소련이 보여준 바로 그 전략이었다.
묵돌은 정예부대를 숨겨놓고는 약졸들을 내세워 한나라군을 계속 유인했다. 묵돌의 전략에 속은 한나라군은 무려 32만 보병으로 추격전을 벌인다. 한 고조는 전군의 선두에 섰다. 한나라군이 평성(산시성 다둥시 동북쪽)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묵돌이 반격에 나섰다, 40만 정예기병을 동원, 고조가 이끄는 한나라군을 백등산 위로 몰아넣고 포위했다. 포위는 일주일간이나 계속됐다. 보급이 끊겨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그때 기사회생의 묘책이 나왔다. 묵돌의 연지(閼氏·왕비)에게 밀사를 파견한 것이다.후한 선물과 함께…. 밀사가 속삭였다.
 “한나라엔 미인들이 많아요. 만일 당신 남편(묵돌)이 한나라를 정복한다면 아마 한나라 여자들에게 흠뻑 빠질 겁니다. 그럼 당신은 폐비가 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위기감을 느낀 연지는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다.
 “두 나라 임금이 서로 괴롭히면 안돼요. 그리고 한나라 땅을 차지해도 거기서 살 수는 없잖아요?” 
마음이 약해진 묵돌은 포위망 일부를 풀었고, 한고조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역사가 ‘평성의 치’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엄청난 치욕은 그 다음이었다. 흉노의 계속되는 침략에 속수무책이던 한나라가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3가지 조항을 보면 굴욕 그 자체다.
 “한나라 공주를 선우의 연지로 보내고, 해마다 일정량의 무명과 비단, 술, 쌀 등을 바치며, 형제의 맹약을 맺어 화친한다.”
다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공주를 보낼 수는 없었다. 종실 여인을 공주라 하여 속여 보냈다.
천하의 한나라가 오랑캐인 흉노 왕에게 종실여인과 조공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형제의 연, 아니 사실상 동생이 되기를 약속한 것이다. 흉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한고조가 죽고. 여태후가 정권을 잡자 묵돌이 ‘우리 같이 살아볼까나’하는 어투의 연애편지를 보낼 정도로…. 

<사진4> 골모드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 글라스. 동서교역품이다. /강인욱 교수 제공


■“까불면 확 쓸어버린다”
흉노는 이후 누란과 오손, 호계 등 26개 인접국까지 모조리 병합하면서 더욱 기세를 떨쳤다. 한나라는 이미 흉노의 적수가 아니었다. 묵돌의 뒤를 이은 노상계죽 선우(재위 기원전 174~160)때의 일이다. 한나라가 흉노에 보내는 국서는 1척1촌의 목간을 사용했다. 그런데 흉노는 1척2촌의 목간을 썼다. 도장과 봉투도 더 크게 했다. 목간에는 이렇게 썼다. 아주 거만하게….
 “나는 하늘이 세운 흉노 대선우(天所立匈奴大單于)다. 천지가 생겨난 곳, 해와 달이 머무는 곳의 흉노 대선우(天地所生日月所置匈奴大單于)가 삼가 한 황제에게 묻노니 안녕하신가? 그리고 보내줘야 할 물건은~용건은~”

 

 <사진 5>기원후 1세기 북흉노 귀족무덤인 골모드에서 확인된 한나라제 칠기. 적대적인 관계속에서도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강인욱 교수 제공

 

흉노의 위상이 한나라보다 한 수위라고 한 것이다. 이같은 도발에도 한나라는 꿈쩍도 못했다.
언젠가는 한나라 사신이 흉노의 풍습을 비아냥댄 일이 있었다.
 “흉노에서는 노인을 천대한다지요? 또 아비와 아들이 같은 천막에 살며,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계모를 아내로 하고, 형제가 죽으면 남은 형과 동생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한다지요? 조정에 예절도 없다지요?”
그러자 한나라 출신의 망명객으로 흉노의 충신이 된 중항열이 반박한다.
 “흉노는 알다시피 전투를 큰 일로 하는 나리이다. 그래서 건장한 이들을 우대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를 보전할 수 있으니까. 또 뭐라고? 부자형제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흉노의 예절이 어지럽지만 종족만은 지킨다.”
중항열이 더 쏘아붙인다.              
 “중국은 겉치레가 심하다. 충성이나 믿음없이 예의를 강요하기 때문에 위아래가 원한으로 맺혀있기 일쑤다. 궁실의 아름다움만 좇기에 헛된 노력들을 쏟는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도 없는데 예의는 무슨 말라 비틀어진 예의냐.”
중국 사신이 더 대꾸를 하려하자 중항열은 쐐기를 박는다.
 “사신은 듣거라. 너희 한나라는 해마다 보내기로 한 비단, 무명, 쌀, 술을 차질없이 보내주기만 해라.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만약 나쁜 물건을 보낸다면 각오하라. 곡식이 익는 가을을 기다렸다가 기마병으로 농작물을 확 짓밟아 놓을테니….”
이렇게 욱일승천하던 흉노의 기세는 한 무제(기원전 141~87)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꺾이고 만다. 한나라는 기원전 115~73년 사이 무위, 장액, 주천, 돈황에 이르는 이른바 하서 4군을 획득한다. 흉노는 고비사막 북쪽으로 후퇴한다.
 “우리는 기련산을 잃었네. 이제 가축을 먹일 수 없네. 우리는 연지산을 잃었네. 여인들의 얼굴을 물들일 수 없네.(失我祁連山 使我六畜不蕃息 失我燕支山 使我嫁婦無顔色)”
<사기>의 주석서인 ‘색은(索隱)’에 실린 흉노 민요이다. 흉노가 요충지인 기련산(祁連山)과 연지산(燕支山·감숙성 하서주랑)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여인들이 얼굴에 찍는 연지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사진 6> 흉노인들이 들고다니면서 음식을 해먹던 청독솥(동복)./국립중앙박물관

 

■훈족=흉노족?
이후 부침을 계속하던 흉노는 한나라의 공격과. 천재지변, 그리고 내분이 이어지면서 쇠퇴일로를 겪는다. 
흉노의 서쪽 지방을 지배한 일축왕이 한나라에 투항(기원전 60)한 뒤 동서로 분열된다. 기원후 48년에는 지금의 내몽골과 화북 일부에 사는 남흉노와 외몽골에서 패권을 잡은 북흉노로 나뉜다. 남흉노는 중국의 속국이 됐다. 북흉노는 151년 이후 선비족의 추격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학계에서는 북흉노를 4~5세기 동유럽 석권하고 로마제국의 쇠망에 영향을 끼친 훈족과 결부시키고 있다. 훈족은 375년 발라미르의 지휘 아래 동유럽으로 침입했던 유목민이다. 유럽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결국 동유럽에 거주하던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야기시켰고, 로마제국을 흔들었다. 훈족의 침략은 유럽세계를 형성시킨 민족대이동의 발단이 됐다. 볼가강과 판노니아 평원에서 발견되는 흉노식 유물들이 증거자료로 거론된다. 특히 삶고 끓이는 조리용기인 동복(구리로 만든 솥)은 대표적인 흉노식 유물이다.


 ■신라 김씨=흉노족?
흉노족을 우리 민족과도 결부시키기도 한다.
지난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시 궈자탄(郭家灘) 마을에서 흥미로운 비석하나가 나왔다. 864년 5월29일 향년 32살로 사망한 재당 신라인 ‘대당고김씨부인(大唐故金氏夫人)’의 묘지명이었다.
 “태상 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냈다. 이름하여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 하니 이분이 곧 우리 집안이 성씨를 받게 된 세조(世祖)이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 

<사진7> 흉노에서 발견된 ㄱ자형 고구려 혹은 옥저계의 온돌. 남흉노와의 대립을 위해 정착집단을 건설하기 위해 고구려 혹은 옥저의 온돌기술을 도입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그에게서 비롯한 먼 조상 김일제가 흉노의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중략) 투정후라는 제후에 봉해졌다. 이런 김일제의 후손이 가문을 빛내다가 7대를 지나 한나라가 쇠망함을 보이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이것은 신라 김씨가 스스로의 뿌리를 ‘흉노’에서 찾고자 했음을 알리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의 단편이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비문에도 남아있다. 1769년과 2009년에 조각편들이 발견된 이 비문의 내용을 더듬어 보자.
 “문무왕의 선조는 15대조가 성한왕(星漢王)이다. 투후(투<禾+宅>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했다.”
깨진 상태여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투후 제천지윤’은 <한서(漢書)> ‘열전’에 나오는 김일제를 뜻한다.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였다. 한무제 때 한나라에 투항했다.(기원전 102) 한무제는 휴도왕을 ‘금인(金人)의 제천주’로 대접하고 일제에게 김씨성을 하사했다. 일제의 어머니도 함께 왔는데, 그 여자 이름이 알씨(閼氏·연지)였다.    
그런데 문무왕릉비와 재당 김씨부인 묘비문을 비교해서 살피면 좋다. 문무왕릉비에 나오는 ‘투후’는 재당 김씨부인묘의 ‘투정후’와 연결된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시조로 언급한 ‘소호금천씨’이다.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사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말미에 언급한 김부식의 평론과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소호금천씨가 나온다.
 “신라인들은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의 후예라 성을 김씨라 했다. ‘김유신비’에도 역시 ‘헌원(황제)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라 기록돼있다. 남가야의 시조인 수로와 신라의 왕실은 성씨가 같은 셈이다.”
언급됐다시피 소호금천씨는 황제의 후예이다. 반면 김일제는 흉노족이다. 그렇다면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김일제를 중시조로 언급한 ‘재당 김씨부인묘’의 명문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정수일 교수는 “중국 김씨에는 2대 계보가 있다”고 전한다. 즉,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하고 팽성(彭城·현 徐州)을 본향으로 하는 김씨와 흉노 휴도왕의 태자인 김일제를 시조로 하고 경조(京兆·현 西安)를 본향으로 하는 김씨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9세기대 김씨부인은 왜 중화의 소호금천씨와 흉노의 김일제를 조상으로 통합했을까.  

<사진8>당나라로 이주한 뒤 사망한(864년) 신라인 김씨부인의 묘비명. 조상이 흉노인 김일제였음을 기록했다. /권덕영 교수(부산외대) 촬영

■흉노는 매력덩어리
섣부른 추측을 하기에는 매우 미묘한 구석이 많다. 분명한 것은 신라가 특정 종족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라벌에는 오래전부터 조선의 유민들이 산 계곡에 나누서 살아 여섯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삼국사기> ‘혁거세조’)   
 ‘기원전 20년 중국 진나라의 난리를 피해 동래한 무리들이 많았고 이들이 진한사람들과 섞여 살았다.’(‘혁거세조’) 
 ‘기원후 14년 고구려 무휼왕이 낙랑을 쳐 멸망시켰다. 그 유민 5000명이 신라에 투항해서 6부에 나눠살게 했다.’(‘유리왕조’)
그러고 보면 2000년 전 한 시대를 풍미한 뒤 홀연히 사라진 제국 흉노는 참으로 매력적인 연구대상이다. 단편적인 자료와 잠깐의 연구로 호들갑을 떨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닌가 싶다.
최근 ‘흉노와 그 동쪽의 이웃들’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흉노 고분 가운데 가장 대형이 골모드 유적의 발굴성과가 발표됐다. 또 북흉노의 국가구조가 부여와 고구려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또 흉노가 고구려와 옥저의 발명품인 온돌의 기술을 도입했음을 알렸다. 흉노계 기마문화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 지도 알아내려 했다. 이렇게 차근차근의 연구로 신비로운 제국 흉노의 실체를 하나하나 벗겨가길 바란다.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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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si.xn--2013-uo4c7e4e942y280b.com/ �ץ�� ؔ�� 2013.05.03 0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통음식의 새로운 인식

  2. 흉노지 2015.07.26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흉노족은 김씨입니다. 흉노족들이 한무제에 투항을 합니다.
    그때 흉노왕자를 마부로 고용을 하다가, 반란정보를 한무제에게 밀고해버립니다.
    그 댓가로 흉노족을이 편히 살수 있는 땅을 얻게되고, 한무제는 김씨성을 흉노족에게 하사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역사서에 김씨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흉노왕자의 이름이 김일제입니다.

    김일제의 후손들은 왕망의 반란에 참여하게되고 왕망이 죽자 한족들에게 멸족될것을 우려해서 도망을 가게 되는데 그 흉노김씨들중 일부는 동쪽으로 이주를 하게되여 게르만 대이동을 야기하며 동로마를 망하게 합니다. 다른 흉노족들은 한반도 남부로 배를 타고 이주를 하게됩니다. 그당시 한반도 북쪽에는 이미 고구려라는 국가가 존재했으므로 육로를 이용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동할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한반도 남부지방도 지금의 한강 충청 전라도 지역은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기때문에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금의 경상도 지역으로 갈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흉노족 김씨들이 한반도에 있는 양반인척 하는 흉노족들이지요.
    그들은 분명 오랑케입니다. 흉노족들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관찰해보자면 흉노족이 한무제에 망할거 같으니 항복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족들이 약해지니 반란에 참여했다가 한족이 다시 부흥하자 도망을 칩니다.

    한반도 남부로 이주한 흉노족 김씨들은 당시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부족국가에 참여하지요 그러다 김씨흉노족이 왕이되자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김씨흉노족들이 왕을 세습해버립니다.
    이에 반발한 석씨들을 몰살시켜버리게됩니다. 그당시 부족국가 연합에 참여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석씨들이 오늘날 희귀성이된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신라가 거의 망해가다 시피하니 흉노 김씨들은 왕위세습을 포기하게 됩니다. 왕망에게 항복을 할때, 신라 귀족들은 귀족 지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 흉노김씨들은 고려의 귀족으로 편입이되고 고려가 망할때 다시 조선의 귀족으로 편입이됩니다. 그래서 흉노 김씨들은 조선의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명문가로 떠들고 다니죠 조선이 망하고 일제시대때 엮시 귀족지위가 유지가 되었고 대한민국 건국이되고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흉노족 김씨들은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자신들의 조상이 오랑캐 흉노족이라는사실을 숨겼으며 처음에 방송을 통해 김씨들이 오랑캐 흉노족이란것이 밝혀지마 고소를 하겠다고 반발을 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그러한 사실의 증거등이 나오게되자 이번에는 입장을 바꿔서 흉노족은 대륙을 지배했던 위대한 종족이라 포장을 하더군요. 우리입장에서는 한족이나 거란족이나 흉노족이나 다같은 오랑캐일뿐입니다.
    고구려사람들은 당나라를 서토 오랑캐라 불렀는데 신라 흉노족들은 오히려 당나라의 머슴이되고자 자청을 하게됩니다. 김춘추는 당나라 조정에가서 당황제에게 당나라 신하와 같은 옷을 입고가서 충성맹세를 하게 되지요 우리의 입장에서 김춘춘, 김유신은 절대 영웅이 아닙니다

    • 이중연 2017.10.31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슴니다ㆍ흉노신라 두인간 춘추가고구려에서잡혀갓을 때죽엇으면 지금도 요동반도 하얼빈정도까지는지금도 우리땅이되엇음니다ㆍ통일은커녕 모두다뺏기고 백재땅도줄뻔햇어요ㆍ

  3. 그래나는흉노다 2015.08.13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역사라는것을 자체로 읽고 보편적으로 봐야하는데..

    흉노김씨라는게 아직도 남아있는지..

    그리고 오랑캐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허황되고 국수주의적인것인지...

    왠지 위 사람 글을 보니 인조때 정치인들이 떠오르는 군요

  4. 이중연 2017.10.31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 통일은 신라가 한게 아니요 ㆍ김춘추는 흉노족 의후예 요ㆍ그넓은 연변 지금발해만 블라디보스톡 까지한국땅 아깝고 눈물나요ᆢᆢ

  5. 이중연 2017.10.31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 독자 2017.11.02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제 헌원이 훈족이라면 김씨 부인의 비문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7. 서와 2019.12.30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라는 양자강 이남입니다.
    한반도는 왜정시대 직전까지 인구가 약 560만명 정도밖에 거주하지 않았습니다.이게 조선이라고 할수있는지요?
    한반도는 뎐아도 남부의 반도섬인 기자도《箕子島 》입니다.
    근세 조선은 마지막에 북경을 설(수도)로 했다가
    패망해 식민지 지배권을 정당화 하기위해 한반도에 이식시켰습니다.

    난생신화는 전부 간적의 비가 낳은 자손들입니다.
    간적은 韓族을 말합니다.


    《조선 글씨  어원  연구회》

    구리족[GUE,東夷]이 창조한 조선 글씨의 어원을  연구하는 어원학회 입니다.


    ■  어원의 정의  ■

    태초 말씨의 의미로  문자 창제시 기본이 되는 문자 구조에
    그 의미를 담은것을 어원이라 한다.
     
    고로!

    어원을 지닌 기본 문자 구조가 결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문자를 이루고 
    그 문자가 이어져  단어(낱말)를​ 생성시키며
    이와같이 파생된 의미가 창조됨을 사전적 의미(뜻)라 한다.

     
     
     
     
     
    ■  조선 말씨 와 글씨  어원 해석  ■

     
     
     
    ■부모음(父母音) ■

     
    ㅎ(해의 씨앗을 내는 주체.혀스,혀다,하다,한 )   [혓]

       《ㆆ》내려질[응]  

    《ㆁ》넣어질[옹]

    ㅇ(해의 생명,씨앗,영,령,녕이 넣어지다)  [영,령,녕] 

    《ㆍ》알에[아]

    ㄱ(해의 씨앗을 껴그어 놓다. 껴 내리다)   [격,껵]

    ㅋ(해의 씨앗을 켜다,캐다,케다)  [켝]​

    ㄴ(해의 씨앗을 바다 넣다, 나오게하다)   [눈,는,난]

    ㄷ(해의 씨앗을 두다,드리워넣다,닫아두다 )   [둣,둿]

    ㅌ(해의 씨앗을 터에내다)  [톳,텃]​

    ㅁ(해의 씨앗을 껴그어 넣어 싸매다)  ㄱ+ㄴ=ㅁ   [밈,맴]
     
    ㅂ(해의 씨앗을 넣다)  ㄴ+ㅓ=ㅂ  [붓]

    ㅍ(해의 씨앗을 피다,펴다,파하다)  [푯]

    ㅅ(해의 씨앗을 내리다, 소사나다,소끄다)  [솟,속,솥]​

    《ㅿ》싸매 들어서다 [스]

    ㅈ(해의 씨앗을 짓다,만들다)  [젖,짓,♩]

    ㅊ(해의 씨앗을 채우다,차리다)  [찻]

    ㄹ(해의 씨앗을 내는일)   [일,닐,늘,를]

    《​해일》
     




     
    ■ 자음(子音) ■

    《ㅣ》영,녕,령이이서지다,잇다.
    《ㅡ》자식궁젼의 지평션, 수평션의 들어섬 과 내짐의경계
    즉 인류 어머니 태장[ 胎藏 ]의 테두리.
    《ㅏ》아지다.
    《ㅜ》우지다.
    《ㅠ》유지다.
    《ㅗ》오지다.
    《ㅛ》요지다.
    《ㅓ》어지다.
    《ㅔ》어이지다.
    《ㅕ》여지다.
    《ㅖ》여이지다.
    《ㅟ》우이지다.
    《ㅚ》오이지다.
    《ㅐ》이어지다,아이지다.
    《ㅒ》야이지다,이여지다,아어지다.
     
    자음(子音)은 용어 의 어원 대로《 해》 와 《달》의 행실로 
    《북극성 자식》 영,녕,령이
    태장[ 胎藏,Earth,젼,zone ]에 싸매짐을 의미합니다.

     
     


    ■  English etymology  ■

     
    《AB》  아이 배다.
     
    《BC 》 배진 씨앗.
     
    《CD》  씨  드리다.
     
    《DE》 드리어진 애.
     
    《EF》 애 프다(푸다), 파생되다, F=ㅋ.
     
    《FG》 파해진 씨(터의 씨).
     
    《GH》 씨를 잇다,애이찌.
     
    《HI》  해를 잇은 아이 , 에이찌 아이.
     
    《IJ》 아이가 내지다,  아이 재다.
     
    《JK》 내어져 켜다, 내져서  탄생하다.
     
    《KL》 캐진 얼 , 혼,허니,스피릿.
     
    《LM》 얼을 매,뫼다. 정신입자=설=소리입자를 산에 뫼다.
     
    《MO》 애미에게 내지다,모종.
     
    《OP》 파생되 내지다. 업=내진삶.
     
    《PQ》 내지는씨.
     
    《QR 》알에서 내지다,정신이 내지다.
     
    《RS》  음양을 잇어 내지는 혼,정신입자,설.

    (R은 내려지는 정신입자)
     
    《ST》 애가 들어서 트다, 음양의 씨.
     
    《TU》 정신의 씨가  트다.
     
    《UV》 씨를 드리어 배다.
     
    《VW》양수에 배다.
     
    《WX》 양수에 똬리를 틀어 내려오다.
     
    《XY》 여넣어져 탄생

    (태워져 탄생)하다, 내져 여지다.
     
    《YZ》여넣어져 내졌다.
     
    《ZA》 내지는아이.

    (예시문:저물다,해가지다.)

     

    ​한글은 왜정때 국문을 날조한 식민사학 용어로

    《말씨》의 의미를 담아 그느씨 그어느씨 그릇 《글씨》가
    바른표기입니다.


    English는 상나라로 알고있는 단군조선 문자중하나이며
    혼용되어 글씨 , 잉글리쉬 , 범어 , 천자문이 같이 사용되다가
    분리된것입니다.



    은 글씨《English 》제자원리는?


    A는 단군조선 글씨 ㅏ ㅣ를 기울여 제작한것이고
    아를 잇는다는게 어원이며 아새끼를 새가 내리기에
    소문자a는 새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아새끼란? 아를 새가 껴내린다는 의미입니다.

    B는 여성 머리와 임신한 배를 그린것이고

    C는 배에서 씨앗이 떨어져 나온, 탄생한 조선말
    씨를 의미합니다.

    E는 드리어진 씨를 의미하며 조선 글씨 ㄷ 안에 ㆍ알에 아를 의합니다.



    파생되어 조선 글씨 ㅌ과 같으며

    소문자 e는 움추리고있는 배아를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잉글리쉬는
    모두 조선말 사투리(소리,스토리,이야기,얘기)로 되어있습니다.

    English 알파벳 그리고 글씨의 모음(母音) 과 자음(子音)을
    포함한 전제계 모든 문자는​ 어원이 같으며
     
    해 와 달에 의해 생명의 입자가 내려짐의 의미를
    어원으로 담아 문자에 기록하고있습니다.

    조선(chosen)은 인류 금속문명의 창시자로
    전세계인의 아버지 조상은 현재 한국인의 조상이며
    그지역 모계혈통에 의해 형질이 복원된것입니다.
    전세계 사람들은 배다른 형제입니다.


    ■etymology=어원■

    《ety》=애텨,애를텨서
    《mol》=말,마을
    《ogy 》=오겨,오지
    애터말오지
    생명알이 터져서 탄생해 터, 지구에
    오다.

    어원의 용어 자체가 생명이 내짐을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시작부터 조선말 사투리(소리)입니다.

    잉글리쉬《English 》는 상나라로 알고있는 단군조선의 문자로
    범어 천자문 글씨 잉글리쉬가 함께 사용되다 분리됩니다.
    은그리스 은그려스
    은이란 정신인 령,녕,영이 넣어지다.
    천자가 내진곳이 수도인 은입니다.

    홍산문명부터 상나라 기자조선 까지가 단군조선이며 성탕시기부터 건국시기로 인식하는것은 식민사학에 근거한것으로 성탕이전의 윗대조의 역사를 떼어 한단고기로 날조한것입니다.

    상나라 천자의 칭호가 천간이며 천간의
    쳔은 1980년대 이전까지 천자문은 텬자문 , 트럭은 추럭,
    트레일러는 추레라,추레일러로 천자문 하늘쳔은 텬으로
    발음하였으며

    천간은 텬가니 탄구니 단구니 단군으로 같은 발음이자
    단군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천간의 갑을병정... 육십갑자는
    한인 단군부터의 계보로 성탕으로 이어집니다.
    성탕이전의 천간 즉 단군을 십간으로 음만 달리 취한것입니다.
    십간의 십은 열십자로 텬,톈을 말하며 탄군,단군과
    쳔,텬,십은 같은 것입니다.

    서세동점시기 와 왜정때 대륙의 역사를 식민지 지배권을 정당화 하기위해 하나의 역사를 쪼개 이식시켰습니다.

    우리는 현재 왜곡된 식민사학에 세뇌당해 암기해 배워온것으로
    지금도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전세계 문자 구조는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자가  반복되어 보조적으로
    의미를 명확하게 해줍니다.
    ​​​
    ​우리가 알고있는 자음 과 모음은 조선사편수회의​ 주도로
    왜놈 문자로 편입하려 왜놈 발음으로 날조한것입니다.
     그러니 배우면서도 무슨 발음인지 모르고 암기하며 배웠던것입니다.
    ​​
    ​《ㄱ》기역은 왜놈 장음, 조선말씨 단음은 《 격,껵》
     현재까지 경상도 안동에서 사용되는사투리입니다.
     그렇십니껵,그런미껵.
     
    ​《ㄴ》니은은 왜놈 장음,  조선말씨 단음은 《눈,는,난》 실제 현재까지
    경기,전라,충청,경상도에서 사용되는 사투리로
    느,여느어,느그,느그엄니,여넣다,여코,여놓다.
     
    ​《ㄷ》디긋은  왜놈 장음,  조선말씨 단음은 《둣,뒷,듯》
    실제 현재까지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두었다,둿다,두어스.
     
     《ㄹ》리을은 왜놈 장음, 조선말씨 단음은 《일,닐,늘,를》 
    현재까지 사용되는 용어로
    태초에 ㄱ=생명입자(설)를 꺼그느어 내리는
    일(work)을 의미합니다.
     
    ​헐버트  200여개의 세계 여러 나라 문자와 비교해 봐도
    조선의 글씨와 견줄 문자는 발견할수 없으며
    배운지 나흘이면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ㄱ"의 발음은 기역 "ㄴ"의발음은 니은 "ㄷ"의 발음은 디긋 등의 
    현재 자음으로 정립된 ㄱ,ㄴ,ㄷ,ㄹ,ㅁ...들은 
    구리족(gue,東夷)  고조선 단음의 발음을 늘어트려 장음화 시킨것입니다.
     
    한겨례 구리족은 인류 최초로 국가를 건설했으며 
    문자를 창조했으며
    구리를 만들어 창 과 방패 , 활 과 칼을 만들고 수레 와 배를 제작한 민족입니다.
     
    부여 의 조선단음 《벼》
    古고려,구려 의 조선단음 《겨,쌀겨》
    실라,사로,서라 의 조선단음 《살,쌀,설》
     
    삼족오는 난생신화를 가진 세개의 부족을 의미하며 
    최초 벼농사를 시작한 민족인 것입니다.

    삼한은 왜정때 기자조선을 분열된 국가로 쪼개놓은것으로 
    후대 마한으로 알고있는 기자조선은 실라로 계승됩니다.
     
    모두 구리족으로 대재앙 이후
    히말라야(해마루,해를 말아넣은곳=천산)에서 남하하여
    후대 요지역으로 이동해 청동기 문물을 가지고
         주체가 황하로 들어갑니다.
     
    홍산문명부터 상나라 기자조선 까지가 단군조선으로
    성탕시대 부터 상나라 건국으로 보는 견해는
    식민사학에 근거한것으로
    성탕단군 이전의 역사를 떼어 한단고기로 왜곡시킨것으로 
    하나의 역사인것이다.
     
    상나라 천자의 칭호가 천간(天干)이며
    천의 본래 발음은 텬,톈등으로
    천간 천가니 텬간 텬가니 탄군 탄구니 단군 단구니로
    동일한 발음으로 단군을 지칭하는 것이다.

    구이족이 조상인 조선인은 단음의 족속으로 문자를 창제하여 
    고대부터 발음해왔기에 문자를 함축시키고
    단음으로 발음 할수있는 족속인 것입니다.
     
    의미를 담은 천자문의 장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목욕》이라 하지만 조선말 사투리(소리)는
    단음인 《멱 과 묙》의 중간 발음인것입니다. 

    ​​​
    기역 하면 우리 문자이니 조선인이면  누구나
    무슨 소리고 
    어떤 의민지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어떻게 자국의 문자라 할수 있겠습니까?
     
     
    "ㄱ"기역을  단음으로 읽으면 껵이 됩니다. 껵이라하면 꺽어내리다 ,꺽어 그어지다 라는 의미를 누구나 알수있습니다. 
    《껴 그  , 꺼끄  ,껴 ㄱ》
     
    "ㅁ" 미음도 맴,밈 하면 뭘 맺다,싸매다 등으로 의미를 알수있습니다.
    허나 미음 하면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필자는 이것이 저것이다.
    그러니 "ㄱ"을 기역  , "ㄴ"을 니은 이라 암기해! 
    라고 주장하는것이 아닙니다.


    어원을 근거로 《ㄱ》을 기역이라 하는것은  전혀  우리 말씨가 아닌것으로
    본래 발음은 《껵》인것입니다.

    조선인이면 껵이 《껴 그다》로 무슨 의미인지 누구나 알수있으며
    ​이것이 본 발음인것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 조선(chosen)의 글씨는 형상 과 소리 와 의미
    그리고
    태초의 어원까지 담은 문자라는 것을 누구나 알수있습니다.

     
    《일제식민지》 왜정 전후로 이런 부분이 훼손 되어진 것을
    어원을 근거로 풀이해 글을 올려 드리는것입니다.
    ​​

    실제 ㄱ의 발음 껵(격)은 안동 사투리로 실생활에서 쓰이는 말씨로
    그런미껵!으로 뒤에 껵이 붙습니다.

    위와같이 복원한 모음 과 자음의 소리는 모두 실생활에서
    쓰이는 고조선 고유의 말씨입니다.
     
     
    지금의 자음 ㄱ,ㄴ,ㄷ..등의 발음 기역,니은,디긋등의
    발음은  전혀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말씨 입니다.
    또한
    전세계  언어학자 그 누구도 알수없는 발음인것입니다.
     
    현재 배우고있는 자음 과 모음은 반대로 가르키고 있으며
    본래 자음이 모음(母音 = ㄱ.ㄴ.ㄷ..)인 것입니다.

     
    현재의 자음 과 모음은 조선의 말씨를 장음으로 풀어 
    왜곡시켜 놓은것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의 개인 저술서도 수권에 이르는데
    고작 교재만한 두께의 책한권으로 창제를 했다며
    유네스코에 등재해 놓은것은 
    이미 고대에 만들어진 문자를근세에 만들었다는 취지로 
    조선인이 미개해 지금에서야 문자를 가졌다는
    논리가 성립되며 전세계적으로 웃음 거리가 되는것입니다.

    《훈민정음이란?》

    창제(創製)  가  아닌  창재《唱在》이며 소리를 찾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선인이 비로소 문자를 만들었습니까?
    이미
    古조선 시대 이전부터 천자문 , 산스크리트 , English , 글씨는
    구리족이 창제한 하나의 문자였다가 후대에 나눠진것으로
    출토 유물을 근거로 입증됨을 알수있습니다.

    ​A.D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의 삼봉 정도전선생과 훈구세력은  
    조선의 정체성 확립과 중앙집권을 목적으로 
    옛 조선의 글씨중 28자를 그대로 취해 체계화하고
     옛발음(Pronunciation sound, 發音)을 
    복원해 나라의 천자문 음(音)을 표준화 시킨것으로
     성종대황시대 최종 반포된것입니다.

    《한글》이라는 용어는 조선역사를 훼손하기 위하여
    왜정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글씨》라는 용어는 고대부터 지금껏 단한번도 단절되지 않고 
    말씨로 계승되어  씨부려지는 보편적 근원적 가치를 지닌
    문자를 지칭하는 조선 고유의 용어인 것입니다.

    《글씨》는  그으느씨 , 그르씨,그릇으로 구리(gue,東夷)를 뜻하기에
    글씨라는 용어를 대체해 한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왜정의 지원아래 한글운동을 펼쳐 글씨라는 용어를
    조선인의 기억에서 지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훈민정음(동국정운)을 한글이라 왜곡하여 부르기 시작한것입니다.
     
    《​現훈민정음은 서세동점시기 이후 훼손시킨 위작》
     
    씨앗을 담는 그릇이 필요하듯 
    말씨의 의미를 담은 그어느씨 그르씨 그릇이 글씨입니다.
    그릇이 = GLISH = 그리씨 = 글씨 = 긁어 느어 잇어지는 씨앗


    위의 역사적 사실이  일본 식민지배를 받으며 왜곡되었습니다.
    많은 문화재 와 한국의 역사가 일본에 강제 편입되었습니다.
     

    일본은  조선 글씨 28자중 네개 글씨인 《ㆍ, ㆁ , ㆆ ,ㅿ》을
    훼손하였습니다.

    훼손 이유는 위에 글씨가 있으면 그림화 되어있어  
    전세계 피라미드 주인이 구리족이며
    그후손이 조선 사람인것을 누구나 쉽게 알수있기 때문에 
    조선역사를 훼손하였습니다.

     첫번째  《ㆍ》은  초기 생명입자를 의미하며

    두번째 《ㆁ》은 음양의 초기 입자가 결합됨을 의미합니다.

    세번째  《ㆆ》는 수평선,지평선 아래로 결합된 생명입자가
    내려지는것을 의미하며

    네번째 《ㅿ》은 생명의 입자가 감싸져 보호됨을 의미합니다.

    《ㅿ》은 삼으로  산,마운틴,피라미드,자궁을 의미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동국정운은
    옛 여러 운서를 참고하여 편찬하였다 기록되어있어 
    조선 《글씨》가 조선시대에 창조되지 않았다는것을 증명하는것입니다.
     
    소리문자인 조선 글씨가 없으면 천자문
    자체를 발음할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훈민정음은 왜정때 훼손된 위작이며
    조선시대 음운서 편찬은 고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 이전의
    소리 글씨중 28자를 그대로 취하여
    글씨체를 체계화하고 
    발음
    [Pronunciation(프러눈씨앗이온) sound, 發音]을 
    복원하신 것으로 현재 조선인의 말씨와 고조선 말씨는 거의 같습니다.
     
    인류의 종실 문자인 글씨를 복원 계승한것은
    인류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수없으며
    그업적은
    대대손손 칭송받을만 한것입니다.


    《 삼가 차려 서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