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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금은동 명품으로 치장한 1500년전 신라인…170cm 장신 여성이었다

피장자가 누구인가. 금동관을 펴서 얼굴을 덮고, 또 키가 170㎝ 내외에 달하는 장신이며, 금은장도까지 착장한 6세기초 신라 최상위 귀족 여성이 아닌가.

지난 6월2일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을 발굴하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금동신발이 노출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급히 공개했다. 금동신발이 발굴된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 발굴 이후 43년 만의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발굴을 책임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금동신발도 중요하지만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노출된 금동달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 머리맡에서 노출되는 금동달개는 금동관의 부속일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었다.

황남동 120-2호의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고리, 가슴걸이 노출모습. 금동관은 평평하게 눌러 얼굴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풀세트를 착용하고 묻힌 주인공

그랬다. 금동신발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장마가 끝난 8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추가발굴이 이어지면서 금과 금동, 은제 유물 등 피장자가 걸쳤거나 들고 있었던 이른바 착장품 세트가 고스란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추진단은 “120-2호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드리개, 금귀걸이 등 금 및 금동제와 금은장도, 그리고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 등 은제 유물 등이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 그대로 출토됐다”고 3일 밝혔다. 4~6세기대에 유행한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피장자의 착장품이 풀세트로 출토된 것은 1973~75년 황남대총 발굴 이후 45년만에 처음이다.

정자영 신라왕성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 연구관은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상태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굴성과는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라 온라인 설명회를 통해 공개했다. 발굴을 담당한 학예연구사와 문화재전문가 등이 유튜브에 출연해 유물 설명 및 실시간 답변으로 진행했다. 이날 온라인 설명회에는 2700여 명이 접속했다. 이번 조사의 실무는 발굴기관인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맡았다.

이번 발굴에서 드러났듯 신라 고분의 피장자들처럼 이 무덤의 주인공 역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뜨는 해를 바라보는 신라인의 장례풍습일 것이다. 또한 발굴해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표현이 꼭 맞았다.

김권일 책임조사원의 짐작대로 머리맡에서 금제 장식(드리개) 한쌍이 붙은 금동관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금동관 안쪽에는 T자형 맞새김 장식(ㅜㅗ)이 있는 금동판이 보였다. 김권일씨는 “이 금동판이 관모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한 것인지는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노출양상은 매우 특이했다.

120-2호분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가 노출되어 있는 모습이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금동관은 왜 얼굴을 덮고 있을까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둥근 금동관을 평평하게 접어 얼굴을 덮은 형태였다”고 전했다. 예컨대 천마총 금관의 경우 두개골 사이즈에 맞춰 못으로 고정한 뒤 피장자의 머리 전체에 씌우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한상 교수는 “그러나 이번처럼 금동관을 눌러 접어 얼굴을 덮은 형태는 유례가 없다”면서 “아마도 이 금동관은 피장자가 생전에서 쓰고 다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게다가 이 금동관의 장식 또한 매우 특이했다. 관테에 여러 개의 거꾸로 된 하트 모양 구멍을 끌이나 망치로 뚫어 장식했다. 이한상 교수는 “6세기초 무덤의 금동관에서는 이런 하트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일본 군마현(群馬縣) 금관총 고분의 금관에서 관찰되는 형식”이라고 전했다. 이번 발굴로 일본 군마현의 금관총 고분의 주인공이 신라 계통이거나 신라 문물을 받아들인 인물이었다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또 금동관 아래에서는 ‘굵은 귀고리(태환이식)’가 보였고, 그 아래에서는 4열의 남색 유리구슬로 이뤄진 가슴걸이가 출토됐다.

피장자의 허리띠에 달린 것으로 보이는 금은장도. 은으로 케이스를 만든 뒤 금실로 감싼 칼집 속에 장도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무덤 주인공이 여성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유물이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허리띠에 장착된 금은장도의 용도는?

그 아래에서는 하나의 띠고리와 26개의 허리띠 꾸미개, 드리개 등으로 구성된 은제 허리띠가 확인됐다. 특히 이 허리띠에 의미심장한 유물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바로 금과 은으로 장식한 장도(粧刀)였다. 은으로 만든 케이스에 금실로 감싼 칼집 안에 칼을 넣은 금은장도였다.

허리띠 양 끝에서는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와 은반지도 확인됐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 가량의 초소형 황색유리구슬이 500여 점 넘게 출토됐다. 작은 구슬로 이뤄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 1점 확인됐다.

금관과 금귀고리 주변의 유물노출 모습. 굵은 귀고리, 즉 태환이식은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유물이다. 위의 점선표시부분은  관테의 거꾸로 된 하트모양 구멍이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아마도 두 손에 같은 수의 반지를 차고 있었을 것이므로 추가발굴이 이어지면 왼쪽 팔목 근처에서 4점의 반지가 더 확인될 가능성이 짙다. 천마총(1973년 발굴)의 피장자 역시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바 있다.

발치에서는 T자형 맞새김장식이 있는 금동신발이 한 쌍 발견됐다. 이 신발 역시 콧등이 동쪽을 향하고 있고, 다수의 금동달개가 노출됐다.


■170㎝ 장신 여성의 무덤인가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발뒤꿈치까지의 길이를 재어보니 176㎝ 가량이 됐다. 이로 미루어 무덤 주인공의 신장은 최소한 170㎝ 내외로 추정할 수 있다. 너무 큰 것이 아닐까. 김권일 책임조사원은 “모든 유물을 피장자가 직접 착용한 것으로 가정하고 잰 것”이라면서 “향후 유물의 위치와 부장상태를 더 파악해서 피장자의 정확한 신장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은팔찌(오른팔)와 구슬팔찌(노란색 남색의 작은 구슬)이 노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공은 남성인가. 그렇게 예단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발굴성과로 미뤄볼 때 오히려 여성일 가능성이 짙다. 이 무덤은 경주 시내 왕·귀족 무덤이 모여있는 대릉원 일원을 기준으로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즉 북서쪽에 즐비한 ‘왕과 왕비릉’(황남대총, 서봉총, 천마총, 금관총 등)과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는 것이다. 또 명칭(120-2호)이 말해주듯 이 무덤은 비교적 큰 규모인 120호(길이 12m, 너비 6m90)에 딸린 소형무덤 2기 중 1기이다. 120호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120-1호와 120-2호를 조성했다.

연구자들은 따라서 120호와 120-1, 120-2호의 주인공은 국왕의 직계는 아니지만 국왕과 혈족 관계를 맺고있던 최상위급 귀족과 그 일가족이 시차를 두고 묻혔을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장자가 착장한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키를 측정해보니 170㎝ 정도의 장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당초 120-2호 주인공을 남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120-2호의 주검칸과 부장칸에서 말띠 드리개 등 말갖춤새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검칸에서 확인된 말갖춤새는 서단벽에서 주검칸으로 흘러내린 양상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발굴단에서는 피장자의 착장품이 아니라 나무 덮개나 목관 상부에 부장했던 유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부장칸에서 확인된 말갖춤새와 함께 장례나 제사용이지, 피장자의 것이 아니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번 발굴양상으로 미뤄볼 때 오히려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피장자의 허리띠에 매단 것으로 보이는 금은장도가 눈에 띈다. 이한상 교수는 “무령왕릉의 왕비 곁에서도 장도가 출토됐다”면서 “장도는 주로 여성의 무덤에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만약 무덤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장도 대신 대도(큰 칼)를 차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게다가 무덤에서 확인되는 ‘굵은 귀고리’, 즉 태환이식(太環耳飾)도 주목할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피장자의 성별을 가릴 때 ‘굵은 귀고리’는 여성, ‘가는 귀고리(세환이식·細環耳飾)’는 남성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출토된 청동다리미와 방추차 또한 무덤 주인공이 여성임을 시사해준다. 그렇다면 이번 조사는 여성이 금동관을 쓴 첫번째 발굴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120-2호의 주인공은 신장 170㎝ 내외의 장신 여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20-2호에서 확인된 청동다리미. 무덤 주인공이 여성임을 암시하는 유물이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금관 금동관은 남성의 전유물 아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여성들도 금관이나 금동관을 썼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금관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금령총(1924년 발굴)과 서봉총(1926년 발굴)의 금관 주인공은 어린아이(금령총)와 여성(서봉총)으로 알려져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알려진 황남대총의 경우 금동관이 출토된 남분의 피장자는 남성, 금관이 나온 북분의 주인공은 여성인 것으로 판단된다. 금관을 여성이 쓰고, 그보다 격이 낮은 금동관은 남성이 썼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120-2호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 해도 하등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면 120-2호의 주인공은 120호 남성피장자의 부인일까. 그것은 120호 발굴 이후 언급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한상 교수는 “한 사람의 피장자 몸과 곁에서 금과 금동제, 금은제와 은제 착장품이 풀세트로 출토됨으로써 당대 신라인들의 차림새(패션)와 장례풍습 등을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교수는 특히 “금동제와 은제 유물이 절대다수인 120-2호의 양상으로 볼 때 금관 등 황금유물로 풀세트를 이룬 천마총의 귀족 버전인 인상이 짙다”고 밝혔다.

이번에 120-2호(길이 560㎝ 너비 500㎝, 최대깊이 202㎝) 뿐 아니라 120-1호(길이 610㎝, 너비 390㎝, 두께 110㎝)에서도 32점의 토기류와 바닥에 직물의 흔적이 남아있는 철솥, 그리고 말갖춤새 등이 출토됐다.

김권일 책임조사원은 “향후에는 작은 무덤 2기를 거느리고 있는 120호를 조사한다면 120호와 120호를 둘러싼 두 기의 무덤 성격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