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기부로 1901년 시작된 노벨상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하나 있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같은 기초 분야에 상을 주면서 왜 수학상은 없을까.
‘노벨상은 반드시 발명이나 발견을 통해 실질적으로 인류 복지에 기여한 자’라는 조건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수학은 당시 실용성과는 관계없는 학문으로 꼽혔기에 노벨상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이 수근거렸다.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노벨이 당시 스웨덴의 여성 수학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저명한 수학자인 미타그 레플레르(1848~1927)를 좋아했다.
결국 노벨은 이 삼각관계에서 패배자가 되었다. 심한 배신감에 빠진 노벨은 수학상을 빼버렸다. 만약 수학상을 만들면 첫 수상의 영예가 레플레르와 그의 연인에게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노벨의 질투심 때문에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기초학문인 수학이 노벨상에서 홀대받은 셈이다.
물론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이유에든 수학상이 노벨상에서 빠지자 수학계가 발벗고 나섰다.
192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한 존 찰스 필즈가 수학계의 노벨상(‘필즈상’)을 만들었다. 4년마다 수여하는 필즈상의 수상자격은 노벨상과 다르다.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로 규정했다. 젊은 시절 번뜩이는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알맞은 수학의 특수성을 감안했다. 노벨상에 견주면 100분의 1에 불과한 상금이다.
하지만 40세 이전에 얻은 수상의 영예를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있으니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엊그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의 영예를 안은 이란 출신의 마리암 미르자카니가 유방암으로 요절했다.
31살에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가 됐고, 2014년 기하학의 난제로 꼽히는 모듈라이 공간을 해석한 논문으로 필즈상을 받은 천재수학자의 죽음이다. 필즈상의 자격요건인 만 40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인스타그램은 물론 이란의 매체들까지 히잡을 벗은 미르자카니의 사진을 올리며 애도했다.
여성 수학자의 삶과 죽음이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란 사회의 금기를 깼다. 사회의 필즈상의 메달에는 이런 라틴어 문구가 있다. ‘자신 위로 올라가 세상을 꽉 붙잡아라.’
미르자카니의 생애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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