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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트럼프의 골프와 카터의 집짓기

[여적] 트럼프의 골프와 카터의 집 짓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 대회를 즐기는 동안 92살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지난주 목요일 US 여자 오픈 골프 대회를 참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하루를 카터 전 대통령의 하루와 비교하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트럼프가 재임 176일 동안 36번이나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반면 92살 고령인 카터는 89살의 로잘린 여사와 함께 안전모를 쓰고 34번째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했다.”

지난 2001년 8월 충남 아산에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하여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얼핏 트럼프를 폄훼하려는 비아냥 기사로 읽힐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호사가의 입방아로 간주하고, 카터 전 대통령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날 캐나다 에드먼턴의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75가구 건축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다가 그만 탈수증세로 쓰러졌다. 즉각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하지만 밤새 기력을 되찾은 카터와 로잘린은 다음날 봉사현장에 복귀했다.

“(내가 쓰러져서) 본의 아니게 사랑의 집짓기 행사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는 농담을 던졌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시절(1977~81) 비현실적인 도덕주의 인권외교를 표방함으로써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불렀고, 동맹국의 균열을 부추겼다는 평을 듣는다.

 

마치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에 인의와 도덕을 앞세운 공자가 현실정치에서 실패를 맛본 것과 다름없었다. 카터가 부르짖는 인권과 도덕은 ‘공자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임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는 빛났다.

1982년 설립한 카터센터는 전세계 인권과 환경 등 다양한 국제분쟁 해결에 개입했다.

 

1994년 북핵위기 때 북한을 전격방문해서 전쟁일보직전의 매듭을 푼 것이 바로 카터였다. 덕분에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은 카터의 퇴임후 활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다.

 

카터 부부는 동남아시아 쓰나미와 카트리나 사태, 아이티 지진 등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번개 건축’ 프로그램이 특히 유명하다.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임하는 카터의 언급이 심금을 울린다.

“난 집 한채를 지을 때마다 한사람의 인생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15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생종이 간과 뇌로 전이됐지만 기적적으로 암투병을 끝냈다. 이번 일사병 소동에도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인 로잘린 여사는 “간밤 병원에서 몇가지 건강을 체크한 결과 ‘이상무’라는 증명서를 받았다”고 좋아했다. 아마도 ‘가장 휼륭한 전 대통령’으로 카터의 임무가 아직 남아있다는 하늘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