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의 단일팀 추진 방침을 들은 세라 머리 감독은 “충격적”이라 했다. 선수들 역시 북한선수들을 ‘다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온 밉상 형제’ 쯤으로 여겼다.
북한 선수들 역시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모를리 없었다.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게다가 훈련과 경기 출전만 ‘함께’ 였고, 숙소와 이동은 ‘따로’ 였으니 실상은 ‘반쪽 단일팀’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훈련 첫날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머리 감독은 “(남북) 선수들만 남고 관계자 여러분은 모두 나가라”고 쫓아냈다.
외부요소를 배제시키자 선수와 코칭스태프만 남았다. 정치는 사라졌고, 아이스하키만 남았다. 선수들은 자기소개시간으로 잔뜩 얼어있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머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그동안 연습해온 작전을 기록한 시스템북을 북한 선수들에게 건네주었다. 남측 선수들은 2~3명씩 북한 선수에게 달려가 시스템북을 설명해주었다.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팀 김향미 선수가 전날 받은 시스템북을 밤새도록 달달 외워 훈련장에 온 것이다. ‘단일팀’에 한시라도 빨리 녹아들겠다는 북한 선수들의 열성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양승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올림픽 단장은 “단일팀을 둘러싼 모든 근심걱정은 첫날 오리엔테이션부터 눈녹듯 사라졌다”고 전했다. 남측 선수들도 화답했다.
북한식 생일노래를 배워 북한 김향미 선수의 생일파티 때 불러주었다. “딱히 누구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저 잘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었다”(조수지 선수)고 했다. 머리 감독이 엄금한 패스트푸드 아이스크림을 남북 선수들이 몰래 먹으며 깔깔 댔던 일, 경포 해변에 놀러가서 감독을 바다에 빠뜨리려 했던 일 등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북한 선수들은 강릉에서 맛본 입가심 냉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평양 옥류관에서 진짜 냉면 대접할 테니 꼭 오라”고 초청하기도 했다. 북한선수들은 단일팀 유니폼에 “다시 만나자”는 글귀를 써주었다. 북한선수들을 이끌고 온 박철호 감독도 머리 감독을 돕는 보조 코치의 역할에 만족했다.
박철호 감독은 “머리가 북한 선수들도 지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머리 감독의 지도스타일에 감명을 받았다.
32일간의 통일실험을 끝낸 남북한 선수들이 26일 눈물바다를 이루며 헤어졌다.
선수들은 “아프지 마. 꼭 다시 봐야 하니까…”하며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앞으로 보기 힘들다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그렇게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의 장면과 똑같은지 모르겠다. 당시 46일간 한솥밥을 먹고 헤어지던 남북 단일팀 선수들도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 기분이 뭐니’하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감성이 풍부한 선수들의 여린 마음만 헤집어놓고 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강요하는 상황이 27년 만에 재현되는가.
이번마저도 ‘일회성’으로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언니들이 왠지 무서웠다는 단일팀 막내들의 소감이 심금을 울린다. “이제 곁에 없으면 그리울 사람들이에요.”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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