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품제도가 있는 스포츠라면 아이스하키를 꼽을 수 있겠다.
나라별 실력차에 따라 엄격한 신분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축구에서는 동남아국가와 브라질이 하다못해 친선경기라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에서는 있을 수 없다.
세계수준의 팀 16강(여자는 8강)은 톱디비전에, 2부리그격인 디비전 1그룹 A와 3부리그격인 디비전 1그룹 B에 각각 12팀(여자는 6팀)씩이 소속돼있다.
신분은 디비전별 세계선수권대회의 결과로만 뒤바뀔 수 있다. 해마다 상위그룹의 꼴찌 2팀과 하위그룹 상위 2팀이 자리를 맞바꾼다.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몇 팀을 빼면 캐나다·미국·러시아·핀란드·스웨덴·체코 같은 팀은 아이스하키의 성골계급이다. ‘성골’의 팀들은 하위계급 팀과 친선경기조차 벌이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실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는 좁은 공간에서 몸과 몸, 스틱과 스틱이 부딪치고, 총알같은 퍽을 날리며 2시간 넘게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종목이다. 잘못 맞붙었다가는 요행수를 바랄 틈도 없이 수십대 0의 참패를 당하기 일쑤다.
그런 측면에서 3부 리그(디비전 1B)에 속했던 한국남자하키가 불과 3년만에 16강이 겨루는 톱디비전으로 승격한 것은 가히 ‘기적’이었다.
여자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4부리그격인 디비전 2그룹 A에 속해있다가 사상처음으로 3부리그격인 디비전 1그룹 B로 승격한 것이 불과 지난해 4월이었다.
북한과 단일팀을 이루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최국’ 자격으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스위스와 스웨덴에 잇달아 0-8로 완패했다. 이를 두고 ‘억지로 만든 단일팀 때문’이라는 수근거림도 있다. 하지만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주최국 이탈리아는 스위스와 스웨덴에게 차례로 0-11씩의 참패를 당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때 주최국 일본도 45골(2득점)을 허용하며 5전패했다. 캐나다에 0-13, 핀란드에 1-11, 중국에 1-6, 미국에 0-10, 스웨덴에 0-5로 졌다.
이번 코리아팀도 단일팀이라서가 아니라 뚜렷한 실력차 때문에 패한 것이다.
양승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전무는 “아이스하키는 우연이나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종목”이라면서 “세계강호를 상대로 잘싸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마지막 상대인 일본도 세계랭킹 9위의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넘사벽’이다. 실업팀이 10개나 되는 일본과 소속팀도 없고, 특기자도 없이 그저 취미생활로 스틱을 잡았던 한국선수들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0-3으로 완패했다.
다만 남북이 하나된 단일팀의 투지로 버텨볼 뿐이다. 공연한 돌팔매질이 아니라 아낌없는 박수가 필요한 때다. 결과가 어떻든 선수들은 절대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단일팀을 즐기고, 결과를 즐기면 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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