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은 모두 1007건(161개국)이다. 절대 다수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인류의 자랑스런 유산들이다. 하지만 절대 반복돼서는 안될, 그래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유산들도 있다.
 이른바 ‘부(負)의 유산(Negative heritage)’이다. 대표적인 ‘부의 유산’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1979년 등재)가 꼽힌다. 나치의 집단학살과 반인간적 범죄행위의 증거라는 게 등재이유였다.

대표적인 부의 유산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나치 독일이 자행한 진단학살과 반인간적 범죄행위의 증거로서 세계유산이 됐다.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될, 그래서 인류가 영영토록 짊어지고 갈 유산이라는 뜻에서 등재됐다. 
세네갈의 고레섬(1978년)과 마셜제도의 비키니섬(2010년)도 ‘부의 유산’들이다. 고레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노예무역’이 번성했던 곳이었다. 냉전시대 핵실험지로 악명을 떨친 비키니섬은 인류가 핵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음을 확인시켜 준 ‘부의 유산’이다.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돔(1996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유의해야 한다. 일본이 등재신청을 하면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가해자임을 싹 빼고 미국이 자행한 파괴적인 무기(원폭)의 피해자라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앙앙불락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만 중국·미국은 세계유산 홈페이지의 유산목록에 ‘가해자인 일본의 원폭돔 유산등재에 반대의사를 표시한다’는 성명서를 게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네갈의 고레섬. 노예무역의 핵심지역인 이곳 역시  반면교사의 유산으로서 등재됐다.

 

이번에도 일본은 같은 수를 썼다.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피가 묻은 시설물들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의 허울좋은 이름으로 등재신청한 것이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IMOS)의 등재권고까지 받았으니 세계유산총회(6월28일·독일 본)에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관례상 등재권고를 받고 총회에서 등록보류된 예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등재권고를 받고 총회에서 등록이 보류된 예는 ‘단(Dan)의 3중 아치문과 요르단 강의 원천(Triple-arch Gate at Dan & Sources of the Jordan)’, 단 한 건이었다. 
 ‘단(Dan)’이 어떤 곳인가. 구약시대 이스라엘 북쪽 끝의 도시다. 인근 헬몬산(해발 2814m)의 눈이 녹은 물은 석회암 내부로 스며들었다가 산기슭인 단 지역에서 샘으로 솟아난다. 이곳에서 솟는 용출수는 해마다 2억3800만㎥에 이르며, 이것은 요르단강으로 흐르는 물의 50%에 이른다. 풍부한 수원(水源)을 바탕으로 7000년 전부터 사람이 터전을 잡고 살았다. 이곳에서는 청동기 중기 시대에 축조된 성문과 성벽, 그리고 제사터가 잘 보존된채 발굴됐다. 특히 흙벽돌로 조성된 성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3중 아치형이다. 이스라엘은 이 ‘단 유적’을 유네스코 복합(문화+자연)유산으로 등재신청했지만, 영토분쟁지역이라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해서 등재가 보류됐다. 

 핵실험의 장소였던 비키니섬. 인류가 본격적인 핵시대로 돌입했음을 알려주는 부의 유산이다. 
그러나 이것도 영토분쟁이 해결되면 등재된다는 조건부 보류였지, 등재거부는 아니었다.

 그렇게보면 일본이 신청한 이른바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이 등재를 막기란 쉽지 않다.
 혹 일본과 협의를 거치면 ‘부의 유산’의 개념을 첨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과거사를 가리는데 급급한 일본이 받아들일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뭘까. 전문가들은 몇가지 고육책을 제안한다.
 공식문서에 첨부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세계유산 최종결정 때 ‘조선인 징용’의 사실을 발표문에 넣도록 외교력을 집중하면 어떨까. 중국과 미국이 히로시마 등재 때 했던 것처럼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반대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궁여지책이다. 물론 이달 말 한·일 간 양자회담이 열린다니까 한번 지켜봐야겠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니….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뒷북외교’의 대가, 참 고통스럽고 혹독하다는 생각….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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