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毛) 주석의 책을 읽고, 마오 주석의 명령에 따르고, 마오 주석의 지시대로 행동하며, 마오 주석의 훌륭한 전사가 되자.”
1960년 9월 14일 린뱌오(林彪) 중국 군사부장은 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 개인숭배’를 선동했다.
린뱌오는 “옳은 것은 유물론이고, 마오 사상”이라면서 “마오 동지 저서의 학습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습득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린뱌오는 1961년 5월부터 인민해방군 기관지(해방군보)에 연재한 마오쩌둥의 어록을 골라 <마오주석어록>(1964년)을 출판했다.
1966년 8월 18일 한 여중생이 마오의 팔에 홍위병 완장을 끼워주면서 문화대혁명의 본격개막을 알렸다.
이튿날 날이 밝자 톈안문(天安門) 광장은 손에손에 <마오주석어록>을 든 홍위병들로 가득 메워졌다.
인민일보 등 각 신문은 이미 1면의 ‘오늘의 중요항목’란에 ‘마오주석의 말씀란’을 배치하고 있었다. 땀이나 비에 젖지 않도록 빨간 비닐표지로 만든 휴대용 ‘어록’은 ‘훙바오슈(紅寶書)’라 일컬어졌다.
서방에서는 ‘작은 빨간책(The Little Red Book)’이라 했지만, 중국에서는 ‘붉은 책의 보물 경전’이라는 의미를 붙였다.
마오의 한마디를 곧 공자와 맹자의 경구와 명언와 견줬던 것이다. 막 인쇄된 어록이 학교에 배분되면 ‘보물경전(寶書)을 맞는 기념집회’를 열었다.
각 신문은 한 사람의 외국인이 군중 틈에 섞여 커다란 몸을 내밀고 양손을 내밀며 모의 저서를 사려고 하는 모습의 신문사진을 실었다.
중국에서는 “곧 죽어도 마오주석의 어록은 꼭 들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마오쩌둥의 초상화 앞에서 어록을 들고 혼인서약하는 풍습이 익숙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까지 50억~65억부가 발행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 <마오주석어록>은 개인숭배를 떠올리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기억된다. 물론 몇몇 희귀본은 고가에 팔리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시진핑(習近平) 개인숭배’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이념을 담은 ‘시진핑 어록 배우기’가 본격화하고, 시주석 사상이 삽입된 당헌 1만7000자 배껴쓰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주석의 책사 왕후닝(王호寧) 정치국상무위원이 지난 24일 ‘시주석 어록’ 출판기념회에서 했다는 말이 전혀 새롭지 않다.
“독창성과 시대적 특성을 담은 21세기 마르크시즘인 시진핑 사상을 전면적으로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57년전 ‘마오쩌둥 개인숭배’를 외쳤던 린뱌오의 발언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린뱌오도 1960년 당시 “대해의 항해는 조타수(마오쩌둥)에 달렸다”고 했다. 요즘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을 영수 혹은 조타수라 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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