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구제불능, 민폐, 걸림돌, 많은 이름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렇게 불러주고 싶어요. 똥!덩!어!리!”
2008년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에서 천재 지휘자 강마에(김명민)가 첼로 연주자 희연(송옥숙)에게 내뱉은 대사이다.
“아무리 연기였지만 ‘똥덩어리’ 소리에 기분이 엄청 나빴다”는 송옥숙씨의 토로처럼 ‘똥’과 관련된 욕설을 들으면 이성을 잃게 된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1932년)에도 주인공 허숭이 ‘에라이 똥물에 튀길 녀석!’이라는 욕설을 듣는 대목이 나온다. ‘똥물이나 맞을 지지리도 재수없는 놈’이라는 소리다.
<구약성서>에도 “(순종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희생 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말라기 2장 2~3절)이라는 저주의 말이 담겨있다. 하나님조차 부정하게여긴 똥을 바르겠다는 것은 최대의 모욕이었다.
줄기차게 ‘중국(청나라)을 닮으라’고 외쳐댔던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한양 냇다리 석축에는 말라붙은 똥이 덕지덕지 붙어있다”고 한없이 부끄러워했다.(<북학의>)
하지만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을 보면 똥의 진면목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돌담길에 버려진 강아지똥은 자신이 천대받는 똥의 처지임을 알고 슬퍼한다. 그러나 흙덩이와 나뭇잎을 차례로 만나 쓸모와 순리를 깨닫게 되고 결국 민들레 새싹을 만나 자신을 희생하며 꽃을 피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페르시아인들은 똥을 먹기 때문에 수명이 짧을 것 같은데 최고 80년이나 사는 이유가 뭘까. 술로 활력을 얻기 때문일까”라는 대목이 나온다. 비료로 쓰인 똥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말이다.
‘똥을 눈다’를 다른 말로 ‘대변(용변)을 본다’라 한다. 왜 ‘본다’고 했을까. 예부터 대변의 상태로 건강을 체크했기 때문에 ‘본다’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조선의 왕실병원인 내의원은 임금의 대변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고 심지어는 맛까지 보았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거야말로 ‘똥 폄훼발언’이다. 조선조 중종은 의녀와 의관이 올린 야인건수(野人乾水·똥물)를 8차례나 마셨다는 <중종실록>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야인건수는 극심한 열기를 다스리는 특효약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남자똥이 좋다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의녀는 중종의 총애를 받아 주치의 노릇을 했던 대장금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1567년(명종 22년) 중종의 아들인 명종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따른 심열증 진단을 받았다. 당대 의관이 “이럴 때는 야인건수, 즉 똥물을 처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좌의정 이명은 “어찌 다른 약이 없어 이 더러운 약을 쓰겠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나 영의정 이준경은 “질병을 다스리겠다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하며 “빨리 야인건수를 쓰라”고 재촉했다.
전북 순창군이 건강한 똥에서 채취한 미생물로 보관해 질병치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대변은행(장내미생물은행)이다. 50만명분의 대변 미생물을 영하 196도로 동결해서 질소탱크에 보관할 작정이다.
건강한 똥에 함유된 미생물이 비만은 물론 당뇨·대장염·대사증후군·아토피 등 질병 치료에 쓰인단다. 바야흐로 ‘똥의 반전’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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