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고수’였던 신라 공주가 ‘아담 사이즈 금동관’ 등으로 치장한채 환생한 것일까. 미성년자로 짐작되는 신라여성이 무게 약 1000t(트럭 약 200대분)에 달하는 돌무지에 묻혀있다가 1500년 만에 홀연히 등장했다.
2014년부터 경주 쪽샘지구를 조사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4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무덤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조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주변에서는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과 돌절구·공이, 바둑돌(200여 점)과 운모(50여 점) 등이 쏟아져 나왔다.
경주 쪽샘 44호분 주인공의 출토현황. 순금제 드리개를 늘어뜨린 금동관과 금귀고리, 가슴걸이, 팔찌, 금반지, 은허리띠 장식, 은장도 등을 풀세트로 장착했다. 150㎝ 미만의 어린 신라공주가 아니었을까.|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봉분은 중형이지만 돌을 16만여개나 쌓은 이유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쪽샘 44호는 봉분의 규모는 중형급(지름 30m)이지만 돌무지의 규모(16~19m)는 금관총(20~22m)·서봉총(16~20m) 등 왕릉으로 추정되는 비슷한 시기의 고분과 맞먹을 정도”라고 밝혔다. 쌓인 돌의 표본(1㎥=수량 298, 무게 1814.1㎏)으로 추산해본 결과 전체 쌓인 돌의 수는 16만4198개(부피 551.34㎥) 정도였고, 무게로 재면 992.41t(5t 트럭 198대)에 이르렀다.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주변에 10여기의 고분이 함께 조성되었기 때문에 봉분은 크게 할 수 없어 중형급이 됐지만 금관총·서봉총 등 왕릉급에 준하는 돌무지로 그 위상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극히 화려한, 그러나 아담한 사이즈의 왕릉급인 이유
44호분에서 쏟아진 유물의 위상 역시 지극히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특히 금동관에 매달린 순금의 드리개 장식에 주목하면서 “이처럼 금동관에 순금의 드리개를 매단 예는 왕릉이 분명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보인다”고 이 무덤의 높은 위상을 설명한다.
어창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44호분 주인공의 장신구 조합 가운데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다”면서 “이런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쪽샘 44호분의 무덤구성. 주인공이 묻힌 곳에는 한사람이 더 묻힐 수 있는 공간이 보여 궁금증을 자아낸다. 온갖 금은제품으로 치장한 주인공의 머리 맡에는 돌절구 및 공이, 비단벌레 날개 장식품 등 부장품을 넣은 상자가, 발치에는 바둑돌 등을 넣은 부장품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무덤 주인공은 ‘신라 공주’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
쪽샘 44호분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의 특징은 ‘화려하지만 아담한 사이즈’라는 데 있다. 어창선 학예연구관은 “아직 극히 일부만 노출된 44호분 금동관의 추정 높이(약 18㎝)는 황남대총 북분(높이 27.3㎝)과 금관총(27.5㎝) 및 금령총(27㎝) 등에 비해 상당히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관테와 세움장식 역시 상대적으로 작다. 출토된 허리띠의 좌우 폭(34㎝) 역시도 작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남성의 상징인 장식대도가 아니라 여성의 표지유물인 은장도가 출토됐다. 출토유물의 착장 흔적으로 주인공의 신장을 추정해보니 150㎝ 내외가 되었다.
쪽샘 44호분에서는 주인공의 발치에서 200여점의 바둑돌이 출토됐다.(위의 왼쪽 사진) 바둑돌은 임금의 무덤이 틀림없는 황남대총 남분( 240여점의) 등 주로 남성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확인된다.(위의 오른쪽 사진) 경주 분황사에서는 바둑판이 확인되기도 했다(밑 사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무덤 주인공이 여성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한상 교수는 “44호분의 경우 어린 남자 왕족 무덤으로 추정되어온 금령총의 ‘여성 버전’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금관 등이 발굴된 금령총의 경우 출토유물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무덤주인공=어린 나이의 남자왕족’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이번에 발굴한 쪽샘 44호가 바로 금령총의 ‘여성 버전’, 즉 5세기 후반을 살았던 신라의 어린 공주였을 가능성이 짙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어린 나이에 죽은 소녀(공주 혹은 왕족)를 위해 당대 최고급 제품을 아담사이즈로 특별 제작해서 한 점 한 점 끼워주고 씌워주었을 부모의 마음이 이 고분에 담겨있다”고 의미를 두었다.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품 상자 윗부분에서 확인된 수십점의 비단벌레 날개장식.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하여 하트 모양의 펜던트로 만들었다. 원 출토품의 재현품을 함께 찍었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여성의 무덤에서 바둑돌 200여점이 쏟아진 이유
쪽샘 44호분의 주인공이 어린 신라공주라면 또하나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바둑돌 200여 개의 존재이다.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 사이에 200여점이 모인채 확인됐다.
크기는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평균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다.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과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7세기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인 용강동 6호분(170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또 분황사지에서는 가로·세로 15줄이 그어진 바둑판 모양의 전돌이 나오기도 했다.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금제 드리개(왼쪽 사진). 금동관에 순금제 드리개가 달린 예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보인다. 드리개의 양식은 황남대총 북분(가운데 사진)의 것과 비슷하다. 오른쪽 사진은 경산 임당고분에서 출토된 드리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은 “738년(효성왕 2년) 신라인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소식에 당나라 현종(재위 712~756)이 바둑 고수인 중국 양계응을 사절단 부단장으로 파견하면서 ‘당나라의 바둑 실력을 뽐내고 오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칠기엔 ‘마랑(馬朗)’이라는 명문에 보였다. 그런데 최근 이 ‘마랑’이 3~4세기 중국 서진(266~316) 시대에 활약한 중국의 바둑 최고수인 ‘기성(棋聖)’의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음이 밝혀졌다. 즉 마랑이라는 인물은 갈홍(283~343)이 저술한 <포박자> 등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포박자>는 “마랑의 자(字)는 수명인데, 바둑기술에서 적수가 없으니 기성의 칭호를 얻었다”고 했다.
44호분에서 출토된 가슴걸이(왼쪽 사진). 천마총과 금령총 등 최상위급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과 비슷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송나라 학자인 정초(1104~1162)가 쓴 사서 <통지> ‘예문학’에는 “원강연간(291~299) 조왕 륜의 사인인 마랑이 <위기세(圍棋勢)> 29권을 편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마랑은 서진(266~316) 시대에 실존한 인물이며, 바둑책을 29권이나 펴낼 정도로 이름을 떨친 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마랑’명 칠기는 한마디로 불세출의 기성인 ‘마랑’의 사인이 새겨진 바둑알통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아온 정신스포츠였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에까지 ‘신라인들이 바둑을 잘둔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런데 지금까지 바둑돌은 거의 다 남성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황남대총 남분·천마총·금관총 등)에서 출토됐다. 이번에 여성, 그것도 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바둑돌이 다량 출토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전에 고인이 즐겼던 용품을 무덤에 넣어주는게 관례가 아닌가. 그렇다면 44호분에 묻힌 이는 바둑을 즐겼던, 혹은 공부했던 신라 공주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44호분에서 출토된 금은반지(왼쪽 사진). 10개 손가락에 모두 낀 흔적이다. 황오동 5호묘의 반지가 비교자료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비단벌레 날개로 만든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등장한 이유
이번에 또다른 주목할만한 유물은 비단벌레 장식이다. 비단벌레 날개는 녹색 또는 금록색 광택이 나는 성충의 앞날개를 이용하여 각종 장식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이번에는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품 상자 위쪽에서 수십 점이 확인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하여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다. 쪽샘 44호분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표지유물이다.
그런데 비단벌레 날개장식품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라는데 또다른 의미가 있다. 이한상 교수는 “이번 출토품들은 비단벌레 날개 두 개를 오려서 가장자리에 금을 씌워 만든 하트 모양의 펜던트”라고 소개했다. 기존 말안장이나 말다래의 배경 장식으로 제작된 것과는 또다른 형태라는 것이다. 발굴단에서는 이번에 확인된 비단벌레 장식도 역시 안장이나 다래(말 탄 이의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에 매달아 사용한 장식품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쪽샘 44호분의 규모. 봉분은 중형이지만 쌓인 돌은 금관총(20~22m)·서봉총(16~20m) 등 왕릉으로 추정되는 비슷한 시기의 고분과 맞먹을 정도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무덤 주인공 옆에 묻힌 순장자는 시종 혹은 유모?
이번에 특이한 점은 무덤 주인공의 옆에 누군가 누워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공백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공백에는 금귀고리가 보였다. 심현철 학예연구사는 무덤 주인공을 따라 묻힌 순장자의 공간이 아닌가 추측했다. 미성년자 공주인듯한 주인을 따라 죽은 이는 누구인가. 아마도 공주를 지근거리에서 모신 시종이거나 유모일 가능성이 짙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경산 임당고분의 E3-8고분에서는 금동관을 쓴 꼬마의 관 위에 유모인듯한 성인 여성의 유골이 놓여있었다”고 밝혔다. 주인공의 머리맡 석단에서도 순장자의 것으로 보이는 금귀고리 등이 흩어져있었다. 심현철 학예사는 “순장자는 4~5명 정도인 듯 하다”고 전했다.
무덤 주인공의 곁에 공간이 보인다. 그 공간에서는 금귀고리가 확인됐다. 아마도 어린 공주를 지근거리에서 모신 시종이나 어린 공주를 키운 유모가 순장자로서 묻힌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돌절구와 공이는 철솥 옆에 있었던 이유
주인공 머리맡 부장상자 안 철솥 바로 옆에서 돌절구와 공이가 확인됐다. 하지만 돌절구 크기(높이 13.5㎝, 폭 11.5㎝)와 함몰부의 용량(약 60㎖)으로 미뤄보면 곡물을 빻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아보인다.
심현철 학예연구사는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돌절구·공이 1묶음, 서봉총에서 공이 1점이 확인된 바 있다.
쪽샘 44호분의 위치. 국왕을 비롯한 왕족의 공동무덤인 대릉원과 붙어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불로장생의 신약이라는 운모가 출토된 이유
이밖에 출토된 유물로는 운모(雲母)가 있다. 길이 2.5~3㎝, 너비 1.4~2㎝ 가량의 운모가 다량으로 보였다.
운모는 화강암 가운데 많이 들어 있는 규산염 광물의 하나인데, 도교에서는 운모를 장기간 복용하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는 선약(仙藥)으로 인식된다. 이번에 출토된 운모는 마름모형 혹은 오각형 등으로 재단하여 작은 구멍을 뚫어 매달아 장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창선 학예연구관은 “피장자 상반신을 중심으로 주변 전체를 두른 상태로 출토됐고, 가슴걸이 하부에서도 노출된 점으로 보아 장신구 착장 이전에 수의(壽衣)를 장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바둑돌과 연관짓기도 한다. 예부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뜻의 ‘난가(爛柯)의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놀음’은 바로 바둑을 뜻한다. 바둑알과 운모의 등장을 도교의식과 연결지을 수 있지 않느냐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지난해 쪽샘 44호분 토기 항아리에서 확인된 행렬도. 주인공인 듯한 사람이 말을 타고 뒤에는 개를 거느린채 가고 있다. 이 행렬도의 주인공이 무덤 주인공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난해 발견된 ‘신라행렬도’와는 어떤 관계?
이 쪽샘 44호분은 지난해 10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빼닮았지만 신라 특유의 문화도 빼놓지않은 ‘신라 행렬도’를 새긴 토기가 발견된 고분이다. 행렬이라는 큰 주제 아래 기마·무용·수렵의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복합 문양은 신라 회화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였다. 무덤제사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
토기 그림은 말을 탄 인물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춤추는 듯한 모습이다. 활쏘는 사람들이 암수 사슴과 멧돼지, 호랑이, 개 등을 사냥하고 있고,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개(犬)와 함께 행렬하고 있다. 이한상 교수는 “토기 그림과 무덤 주인공의 관계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심현철 학예연구사는 “아직 토기에 새겨진 신라행렬도와 무덤 주인공의 관계를 추론할만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향후 연구를 통해 규명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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