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옷의 특징이 하나 있다.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마고자에 달린 호주머니는 뭐냐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고자는 임오군란의 배후로 지목돼 청나라에 유폐된 흥선대원군이 1885년 귀국하면서 입은 청나라 옷(마괘)에서 유래됐다.
이전엔 남녀노소가 별도의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주머니의 유래는 뿌리깊다.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은 어릴 때 비단주머니(錦囊)를 차고 여자아이처럼 놀았다”는 <삼국유사> 기록이 있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황금허리띠에도 이런저런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고려 때도 허리띠에 갖가지 장식에 향이 든 비단주머니(錦香囊)을 찼는데, 많을수록 귀하게 여겼다.(<고려도경>)
자연스레 옷과 장식품은 당대의 멋과 전통을 담은 패션이 된 것이다. 특히 색깔에 심오한 뜻을 새겼다.
즉 옛사람들은 우주만물이 음양오행으로 이뤄졌다고 여겼다. 음과 양의 조화로 여기는 음양설과 만물의 생성·소멸을 목·화·토·금·수의 변화로 설명하는 오행설이다.
이 오행을 동(청), 서(백), 남(적), 북(흑), 중앙(황) 등 방향으로 나타낸 것이 오방이다.
아기의 돌과 명절 때 입는 색동옷에 바로 이러한 음양오행의 심오한 뜻이 숨어있다.
사악한 기운을 쫓고 건강과 화평을 기원하는 것이다. 몸에 달고 다니는 주머니에도 5가지 색깔을 썼다. 오방낭이다.
청·적·백·흑·황색의 비단을 모아 만든 오방낭은 ‘나만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당연히 길상(吉祥·상서로운 조짐)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는 부적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1996년 10월 정보통신부가 ‘한국의 미’ 시리즈 우표 4종을 판매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오방낭이었다. 어엿한 문화유산 대접을 받은 것이다.
최근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서 ‘오방낭’ 사진이 담긴 파일이 나왔다.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때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오방낭)’ 제막식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모두들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일 개인의 주술 도구로 전락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최순실씨는 그 오방낭에 무엇을 담았을까. 조선조 성종 때 폐비 윤씨는 주머니에 비상을 간직한 죄목으로 사사됐다. 그렇다면 최순실씨는 오방낭 속에 무엇을 넣었을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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