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암이 아닐까.’ 2002년 9월 경기 파주 교하의 파평 윤씨 묘역 중 무연고 묘에서 나온 미라의 옆구리 쪽을 살피던 김한겸 교수(고려대 의대)팀의 심장이 떨렸다. 미라의 홑바지 옷고름에 있는 글씨로 보아 ‘병인년윤시월’(1566년 윤 10월)에 묻힌 여인으로 추정됐다. 436년이 지났는데도 피부의 탄력이 살아있었다. 아직 인체에 수분이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모자 미라의 충격
무엇보다 김교수가 경악한 것은 심하게 부풀어오른 옆구리였다. 이것이 수백년전 사망한 여인의 암덩어리라면 어떨까. ‘암 연구’에 획기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떨리는 심정으로 미라의 X레이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판독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부풀어 오른 복강과 골반강 안에서 태아의 골격이 보이고 있었다. 암 덩어리가 아니라 태아가 뱃속에 있었다는 얘기다.
이 미라는 한 사람이 아닌 ‘모자(母子) 미라’였던 것이다. 분만 도중 사망한 산모와 태아 미라가 한꺼번에 확인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임신이나 분만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 부패가스가 장기에 차서 태아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컴퓨터 단층촬영(CT)와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분석해보니 자궁 안에 만삭 크기의 태아가 정상 분만 체위로 자리잡고 있었다. 태아의 머리는 모체의 산도(질·膣)에 진입한 상태였다. 산모의 자궁벽에서 별 모양의 파열 흔적이 선명했다. 광범위한 출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여인은 출산직전에 자궁파열에 의한 저혈량성 쇼크(실혈사)로 태아와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애기부들 꽃가루의 비밀
2004년 대전에서 출토된 ‘학봉장군’ 미라와 2016년 경기 의정부에서 확인된 ‘김의정’ 미라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위내용물은 물론 소장과 대장 등 소화기관 전반에 걸쳐 애기부들 꽃가루가 상당량 확인됐다는 점이다. 애기부들은 6~7월 사이 연못이나 강가의 얕은 물속에서 자생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애기부들 꽃가루가 포황(蒲黃)이라는 지혈제로 사용된다. 두 사람은 피를 토하는 병에 걸렸다는 말인가.
과연 분석결과 그랬다. ‘김의정’ 미라의 왼쪽 폐에서 폐흡충(기생충)의 성충과 수많은 알이 역시 미라가 된 모습으로 현미경 관찰 결과 보였다. 폐흡층은 민물고기를 날것이나 덜 익혀 먹었을 때 감염되며, 객혈이나 가슴 통증 등을 유발한다. ‘김의정’ 미라는 폐흡층에 따른 객혈 등으로 고통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학봉장군은 어떨까. 최첨단 장비로 분석한 결과 기관지 확장증과 같은 중증 폐질환을 잃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피를 토하는 폐질환을 앓았고, 지혈을 위해 애기부들 꽃가루를 복용하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댕기머리 소년의 현현
미라 연구의 효시는 2001년 11월 5일 경기 양주 해평 윤씨 선산 회곽묘에서 출토된 ‘댕기머리 소년 미라’(1680년생 윤호로 추정)였다. 막 잠이 든 것 같았던 소년의 나이를 추정하니 4.5~6.6세 사이로 판단됐다. 폐의 병리조직검사에서 흥미로운 점이 확인됐다. 적혈구가 기도 내의 기관지에서 혈병을 형성하고 있었다. 내부장기를 덮는 복막에서 작은 결절이 널리 퍼져 있었다. 폐렴이나 폐결핵 같은 감염성 질환에 의한 객혈의 흔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소년은 결핵균에 감염되었지만 항생제가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 소년 미라는 현재 합성수지로 특수처리되어 단국대 석주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성인병에 걸린 진성이낭
2010년 4월18일 경북 문경시 흥덕동 회곽묘에서 조선시대 여성 미라가 확인됐다. 35~50세 사이로 추정된 미라의 관 위를 덮고 있던 명정(銘旌·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에는 ‘진성이낭지구(眞城李娘之柩)’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진성 이씨’ 가문의 여성임이 확인됐으므로 ‘진성이낭’ 미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은주(서울아산병원 내과)·신동훈 교수(서울대병원 해부학과) 등이 공동연구팀을 꾸려 사인규명에 나섰다. 이 미라는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는 편충 및 간흡충에 감염돼 있었다.
미라가 발견된 경북 문경은 낙동강 상류지역이 아닌가. 고인은 민물회를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 미라의 사인은 ‘죽상동맥경화증에 의한 심혈관 질환’으로 추정됐다. 죽상동맥경화증은 나쁜(LDL) 콜레스테롤이 동맥 안에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이다. ‘진성이낭’은 요즘 현대인에게도 흔한 성인병의 덫에 걸려 생을 마감한 것이다.
■5300년 전의 ‘외치’ 살인사건
1991년 9월 독일인 등산객 부부는 알프스 빙하지대인 외츠탈에서 반쯤 녹아있던 빙하에 엎어져 있던 시신을 발견했다. 처음엔 등반 중 사망한 산악인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연구에서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미라는 기원전 3300년 무렵에 살았던 키 160㎝, 몸무게 50㎏ 내외의 45세 O형 남성으로 추정됐다. 최근 30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미라는 확인된 얼음미라 ‘외치’가 발견된 것이다.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고인의 식생활과 사인 등이 속속 규명됐다. 우유를 마시면 속이 편치 않은 형질적인 특성을 보였고, 마지막 식사로 밀과 고사리, 염소와 붉은 사슴 스테이크를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인으로는 처음엔 등반 중이거나 목축 중에 길을 잃고 추위와 탈진으로 동사한 것으로 짐작됐다. X-레이가 박힌 화살촉을 찾아내면서 사인도 명확해졌다. 외치는 등 뒤에서 누군가가 쏜 화살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외치는 죽기 며칠 전부터 누군가와 격투를 벌였고, 운명의 그날 사망장소까지 올라갔다가 등 뒤에서 누군가가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외치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치열한 법정투쟁을 벌인 것도 유명하다. 당초 외치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법의학연구소에서 8년간 연구했다. 그러나 외치의 출토지점이 오스타리아 국경에서 92.56m 떨어진 이탈리아 땅으로 판명됐다. 결국 1999년 1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를 떠나 이탈리아 볼차노시의 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으로 이동됐다.
■내부 장기가 잘 보존된 한국 미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 미라라 하면 이집트 미라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이집트 미라는 ‘파평윤씨 모자 미라’와 같은 한국미라 및 얼음미라 ‘외치’ 등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집트 미라는 시신에서 모든 장기를 제거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 미라(외치 포함)는 내부 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연적인 미라이다. 얼음속에 갇혀있던 외찌야 그렇다치자. 한국 미라는 왜 그렇게 잘 보존되어 있었을까.
조선시대 독특한 장례문화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는 조상의 무덤이 개미와 나무뿌리 등 동식물의 침범으로 훼손되거나 물에 잠겨버리면 ‘불효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회곽묘’에서 묘안을 찾았다. 회곽묘는 보통 석회와 가는모래, 황토를 3:1:1로 섞어 회다짐을 하여 무덤 구덩이와 곽에 싸바르는 무덤조성양식이다. <주자가례>는 “석회는 모래를 얻으면 단단해지고, 흙을 얻으면 들러붙어서 여러 해가 지나면 굳어져 벽돌처럼 단단해진다”고 했다. 고려 말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본격 도입된 회곽묘의 효과는 대단했다. 얼마나 단단하게 밀봉되었는지 굴착기 브레이커(breaker)로 분쇄한 뒤에야 겨우 목관이 노출된다. 지금까지 발견되는 미라가 모두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뇌와 척수는 물론 소화기관 등 내부 장기를 온전히 갖춘 자연미라의 상태로 노출된다. 수백년 전의 식생활과 건강, 몸상태 등과 관련된 정보를 더 얻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대부분의 미라가 가문의 선산에 묻히기 때문에 족보나 비석에 기록되는 경우가 있다. 또 염습의 등 부장품이 동반 발굴되기 때문에 신원을 가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죽은 자에게도 인권이?
그러나 한국의 미라 연구는 그 역사가 일천하다. 시신 훼손을 백안시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 지대하다. 매장이전 과정에서 미라가 나와도 곧바로 재매장되거나 화장(무연고 시신의 경우)됐기 때문에 미라 연구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구 목적으로 기증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등에서 보듯 조선시대 미라가 담고 있는 학술적인 가치가 워낙 엄청났다. 그래서 역사에 비해서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을만한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달은 느낌이다. 미라를 비롯한 고인골 연구를 위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의 경우 ‘고고유물보호법’에 따라 ‘고고학적 맥락 안에서 발견된 100년 이상된 인간의 뼈’도 고고유물의 일부로 언급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프랑스, 러시아 등도 비슷한 맥락에서 취급하고 있다. 반면 영국이나 캐나다 등은 문화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100년 이상이 지나거나 고고학적 맥락 안에서 출토된 고인골은 다양한 법령에 따라 수집·관리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고인골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 또는 집단 간 분쟁 소지가 없을 경우’이다.
예컨대 미국과 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의 경우 박물관 등이 원주민의 유해와 부장품을 소장하려면 원주민 기관과 반드시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법령은 원주민의 무덤이 약탈과 고고학 연구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로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죽은 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이다.
■미라의 법적지위는 ‘무연고 시신’
반면 한국은 어떤가. 물론 ‘미라가 문화재인가, 그냥 시신인가’하는 개념정리도 되어있지 않다.
지금 국내에서는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 및 미라 조차도 일반 분묘에서 나오는 ‘무연고 시신’과 같은 법률(‘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 즉 이 법률 4장 28조는 ‘무연고묘에 매장된 시체 또는 인골은 일정기간 봉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미라(인골 포함)의 법적인 지위는 그저 ‘무연고 시신’일 뿐이다. 그런 탓에 국내의 미라는 대부분 1차 연구를 마치고 화장 혹은 재매장된다. 문화재청이 1998년부터 2017년까지 파악한 미라 59구 중 24구가 재매장 혹은 화장됐다.
아니 그게 뭐가 어려운가. 그냥 미라(혹은 인골)에 문화재의 지위를 부여하면 될 것이 아닌가.
물론 미라를 연구하는 법의학계와 고고학계 등 관련학계는 ‘(최소한 100년 이상 된)미라=문화재’라는 법적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고고학자인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고고학적인 의미를 갖는 미라(혹은 인골)는 옛 사람들의 유전적·형질적 특성과 식생활 문화 등의 연구를 통해 과거 문화와 역사를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당연히 문화유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라가 과연 문화재냐, 그저 시신일 뿐이냐’는 개념정리는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해부학교실)는 “사람의 시신을 문화재로 분류하는 문제는 자칫 소모적인 ‘윤리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고려청자를 예로 든다면 고려청자 그 자체의 고유권리가 있을 수 없지만, 사람은 비록 죽은 후에도 인권은 보장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라를 문화재로 보느냐’는 문제는 2016년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발굴과정에서 출토되는 미라(인골 포함)의 처리를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도 제기됐다.
김수현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사무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이 문제가 부각됐을 때도 상위법인 ‘문화재보호법’에 인골·미라를 문화재로 정의할 수 있는 지 논의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당시 박물관의 입장에서 미라는 문화재로 정의할 수 없고, 따라서 전시품도 아니며, 소장할 수 있는 유물도 아니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바 있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물론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미라·인골을 문화재로 개념정리한다면 보존·연구 측면에서는 최상의 해답이다. 하지만 신동훈 교수는 “개념 정리에만 신경을 쓴다면 소모적인 논쟁만 야기시키고 결국 평행선만 달리다가 세월만 보낼 수 있다”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즉 미라(인골)을 문화재로 정리하기에 앞서 기존 법, 즉 ‘장사 등과 관련법’ 등에 ‘100년 이상 지난 고인골의 보존과 연구에 관한 예외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서는 ‘무연고 시신’에 불과한 미라(인골)에게 일단 연구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라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다양한 법규로 미라·인골의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 해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다. ‘인골의 문화재’ 개념 정리는 그후 치열한 윤리적 논쟁을 벌여가며 하나하나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목받는 8구 미라의 거취
‘파평 윤씨 모자미라’와 ‘학봉장군 미라’, ‘김의정 미라’ 등을 연구하면서 국내에 이른바 ‘미라학’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한겸 전 고려대 의대교수가 최근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2월 김교수가 은퇴함에 따라 그동안 보관하고 연구해오던 미라 8구의 갈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김교수가 연구해온 미라는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 2구와 고려대 의과대 6구 등이다. 만약 고려대 의대와 병원측이 방을 빼달라고 하면 큰일인데, 아직 후속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고려대 박물관측은 “고려대 병원과 의과대측에 여덟분의 미라를 계속 보관해달라고 구두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한겸 교수가 관리한 8구의 미라를 모두 받을 수 있다고 나선 곳은 있다. ‘학봉장군 미라’를 소장한 ‘한국 자연사박물관’(옛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이다. 조한희 자연사박물관장은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등 한구 한구의 미라가 학술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인수의 뜻을 밝혔다. 이 가운데 ‘파평 윤씨 미라’의 경우 문중측이 2001년 고려대박물관측에 기증한 것이다. 따라서 고려대 박물관측의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물론 파평 윤씨 문중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김한겸 교수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부가 미라를 보관·연구하기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우선은 빨리 예외조항이든 뭐든 관련법규를 만들어 ‘무연고 시신’이 아니라 ‘연구 대상 미라’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연구를 지속할 근거를 만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박물관은 어떻습니까. 엄청난 정보를 안고 있는 조선시대 미라는 외면하면서 이집트 미라에는 열광하지 않습니까. 외치를 두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는 또 어떻습니까. 부럽기만 합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참고자료>
김한겸·김우림 외, ‘파평 윤씨 모자 미라의 고병리학 분석’, <대한병리학회지>, 대한병리학회, 2004
우은진, 이원준, 공수진, 신동훈, ‘학술적 연구대상으로서 고인골의 법적 지위에 대한 검토’, <야외고고학> 제20호, 한국문화유산협회, 2014
신동훈,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미라 형성과정 연구’, 서울대 산학협력단,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김명주, ‘조선시대 회곽묘 출토 미라 연구에 대한 회고와 전망’, <동양학> 제40집,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2006
신명호, ‘조선시대 회격묘와 미라’, <동북아 문화연구> 제13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7
이승해·안보연, ‘조선시대 회격·회곽묘 출토 삽에 대한 고찰’, <문화재> 41권 42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진성이낭묘 출토유물 보존’,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정광호, ‘학봉 장군 부부 미라의 고병리학적 분석’, 고려대학원 박사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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