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 하면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유명인이 바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일 것이다.
매일 땅콩버터와 바나나, 버터, 꿀, 베이컨을 얹은 샌드위치 4개를 한끼 식사로 먹었다. 이 땅콩크림버터바나나 샌드위치에 ‘엘비스 샌드위치’란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도넛에 꽂혀 한번에 10개 이상 먹어댔고, 마시멜로, 초콜릿, 문파이, 사탕, 아이스크림, 햄버거 등에 집착했다고 한다. 혹자는 정크푸드에 빠진 엘비스가 가난했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먹었던 일종의 ‘솔푸드(soul food)’였을 것이라고 한수 접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애교로 봐주기에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당뇨와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약물 과다까지 겹쳐 42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니 말이다.
엘비스의 사례가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혈당치가 경고 수준을 넘어 의사가 당뇨약을 권했지만 혼자 속삭였다.
‘난 약 없이도 조절할 수 있어.’
그러면서 걷기운동을 합네, 근력운동을 합네 하면서 나름대로는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핑계가 많아졌다.
자, 운동을 했으니 아이스크림 하나 정도는 어떠랴. 밥은 안 되지만 과자는 괜찮아. 주스는 안 되지만 과일은 마냥 먹어도 돼. 왜? 천연이니까. 카스텔라는 안 되지만 식빵은 괜찮을 거야. 달지 않으니까. 그렇게 핑곗거리를 찾다가 하루종일 뭔가를 입에 달고 사는 지경이 됐다. 혈당치가 200~300을 넘어섰다.
“물을 매일같이 한 동이 이상 마셨다”고 소갈(당뇨병) 증세를 토로한 세종대왕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화장실을 하루종일 들락거렸다.
그때라도 병원을 찾아갔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제 ‘당(糖)과의 전쟁’은 목숨을 건 성전이 됐다. 식이요법을 좇다 보면 배고파서 견딜 수 없다.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으면 “당신은 평생 먹을 탄수화물을 미리 다 먹었으니 이제부턴 참아도 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렇지만 가끔은 제과점의 카스텔라와 팥빙수, 패스트푸드점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미치도록 먹고 싶다. 그만큼 당의 유혹과 금단현상은 치명적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정제당인 설탕은 대량생산됐던 순간부터 인간을 사납게 중독시켰다. 커피와 차, 담배 역시 인간을 매혹시켰지만 설탕에 견줄 수 없었다. 혀끝에 닿는 순간부터 달콤한 설탕의 맛과, 쓰고(담배·커피) 떫은(차) 맛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13세기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리에 따른 단식 기간에 설탕을 먹는 것이 율법이냐 아니냐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이렇게 정리했다.
“설탕은 식품이 아닙니다. 약입니다.”
아퀴나스의 확실한 보증 속에 설탕은 인류를 거리낌 없이 중독시켰다.
뭐니뭐니해도 설탕의 가장 큰 원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흑인노예의 역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16세기부터 300년간 아프리카 대륙에서 1300만명이 ‘사냥’됐다.
그들은 서인도제도와 브라질, 미국 남부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와 하루 18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10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잃은 아프리카 대륙은 성장 동력을 잃어갔다. 아프리카가 지금까지 기아선상에 시달리는 근본 이유가 바로 설탕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1791년 영국에서 흑인노예의 ‘검은’ 피와 땀이 ‘하얀’ 결정체로 녹은 서인도제도산 설탕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몇몇 무역업자들은 ‘우리가 들여오는 설탕은 노예와는 상관없다’는 내용의 라벨을 붙였다. 이것이 ‘공정무역(Fair Trade)’ 라벨의 효시이다.
하지만 인류는 끝내 설탕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귀족들의 신분과시용에서 벗어나 설탕+커피, 설탕+차의 희한한 조합으로 서민들까지 중독시킨 것이다. 필자 역시 설탕을 잔뜩 넣은 주전자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던 어릴 적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중에는 당이 단백질·지방과 함께 몸에 꼭 필요한 3대 영양소인데 굳이 살벌한 용어(전쟁)까지 쓸 필요가 있느냐는 항변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필자가 뼈저리게 경험했듯 당의 유혹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추산으로 전 세계 4억2000만명이나 되는 당뇨환자가 있다지 않은가.
설탕의 역사를 살펴봤듯 ‘인문학적인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새삼 1791년 서인도제도산 설탕의 불매운동을 벌인 윌리엄 폭스의 언급이 귓전을 때린다. “설탕 1온스(28g)는 인간의 살 2온스와 같다.” 200여년 전엔 흑인노예의 희생을 강조한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인간의 건강을 갉아먹는 설탕의 해악을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필자가 설탕과의 성전(聖戰)을 벌이는 이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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