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탄생한 자리에 고·현생 인류가 탄생한 시기, 즉 200만 년~1만 년 전 사이를 뜻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인류기’라고도 한단다.
바로 그 시기였다. 한반도 중부, 그러니까 평강 서남방 3㎞ 떨어진 오리산(해발 453m)과 검불랑역 북동쪽 약 4㎞ 떨어진 680m 고지에서 용암이 분출된다.
그것도 한 두 번의 분출이 아니었다. 10여 차례나 흘러 나왔다.
■휴전선 너머에서 생긴 일
그런데 오리산과 검불랑에서의 화산 분출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거대한 폭발, 즉 증기와 용암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중심분출’이 아니었다.
벌어진 지각 틈 사이로 용암이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이른바 ‘열하(裂하)분출’이었다. 그것이 오리산이나 검불랑 고지가 백두산이나 한라산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화산체로 솟아오르지 않고, 소박한 야산 정도로 남은 이유가 된다. 어쨌든 그렇게 흘러나온 용암은 평강과 철원 일대의 650㎢(2억평)를 뒤덮는다. 가히 ‘용암의 바다’가 되었다.
쌓인 용암은 낮은 골짜기를 찾아 흐르기 시작한다. 오리산의 용암과 검불랑의 용암은 연천 전곡 도감포에서 만나 한줄기가 되어 흐른 뒤 파주 화석정 인근에서 멈춘다. 97㎞에 달하는 긴 여행이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평강·철원 일대는 광활한 현무암 대지를 이룬다. 화산이 분출한 평강 일대의 현무암 지대는 당연히 두껍다. 평강-철원-포천-연천-파주 순으로 용암의 두께가 얇아졌을 것이다. 평강이 해발 330m의 고원지대로, 철원이 해발 220m의 거대한 평원지대로 차례차례 변한 이유이다.
지금도 저 멀리 휴전선 너머 북쪽을 관찰하면 거대한 둑처럼 시야를 가리는 평강고원을 볼 수 있다.
■화산분출의 조화
뜨거운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현무암이 되고, 그 사이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것이 풍화작용 겪으면서 사각형~칠각형의 기둥 모양이나 널판지 모양으로 갈라진다.
이런 결정체를 주상절리(柱狀節理·다각형) 혹은 판상절리(板狀節理)라 한다. 그런데 혹독한 빙하기가 지나 간빙기가 되자 평강·철원 지역을 덮고 있던 빙하가 녹기 시작한다. 오리산 쪽에서 내려온 물은 한탄강이 되었고, 검불랑 쪽에서 내려온 물은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평안천이 되었다. 두 물은 전곡 도감포에서 만나 임진강이 되어 다시 연천-파주로 흐른다.
용암이 급격히 식을 때 생긴 주상절리와 판상절리는 빙하물을 만나 더욱 조화를 부린다. 현무암이 흘러오는 강물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식될 때 덩어리째 떨어져 나간다.
용암이 식어 조성된 현무암지대는 원래 약한 성질을 갖고 있다. 때문에 침식원인이 있는 취약지역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무너지는데, 수직절리현상이 있는 곳은 직각의 절벽을 만든다.
특히 임진강·한탄강은 물살에 거센 데다 기온의 연·일교차가 상당하다. 겨울 혹한이 길고, 서리가 내려앉는 날이 많다. 여름철엔 덥고 집중호우가 빈번하다.
그러니 풍화 및 침식작용이 활발한 것이다. 온탕·냉탕의 변화무쌍한 날씨조건에다 거센 물살에 따른 강물의 침식이 계속되면서 직벽의 하부는 계속 깎이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주상 및 판상절리의 절묘한 결정체를 알알이 박아놓은 한탄강·임진강변의 직벽이다.
■한국판 그랜드 캐니언
지금도 한탄강·임진강변을 답사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경기 포천 영북면 운천리의 한적한 농촌마을의 논두렁을 잠깐 벗어나 수풀을 한번 헤쳐보라. 30~40m의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수놓은 환상의 수직단애가 꿈처럼 펼쳐진다.
고소공포증에 몸을 떠는 기자는 오금이 저려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난 2014년 기자는 포천 관인면 중리에 있는 멍우리 협곡을 찾아가보았다.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대회산리(포천 영북면) 마을에서 내비게이션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멍우리 캠핑장’ 안내 팻말을 보고 꾸불꾸불 정처없는 길을 달릴 뿐…. 달려도 달려도 주상절리 같은 절경은 보일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랐는데 민가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마을 주민이 나와 길을 내준다. 그러고보니 은장산 첩첩산중에 둘레길 공사가 한창이었다.
막다른 길이 다다랐는데 민가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포기하고 돌아갈 참이었는데 마을 주민이 나와 길을 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은장산 첩첩산중에 올레길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중인 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 둘레길 중간에 전망대를 만들려고 나무를 베어놓은 곳에 섰다. 아찔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멍우리 협곡(명승 제94호)이었다.
오른쪽 그림은 오리산과 검불랑에서 분출한 용암이 임진강과 한탄강을 만들고, 두 강이 만나 큰 임진강이 되어 서해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10여 분 올라가 둘레길 중간에 전망대를 만들려고 나무를 베어놓은 곳에 섰다. 아찔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멍우리 협곡(명승 제94호)이었다.
마치 한반도의 모양처럼 휘어지며 흐르는 한탄강의 양안에 끊임없이 전개되는 높이 20~30m 직벽의 주상절리….
협곡의 총길이가 4㎞ 정도라니 누군가 그랬단다. 이곳이 바로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스르르 무너져버린 주상절리가 깎아지른 절벽의 틈으로 길을 내주었다. 일행은 조심스레 현무암 더미에 발을 디디며 협곡 밑으로 내려갔다.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모양의 다양한 주상절리가 절벽전체를 수놓고 있다. 그 절벽 중간 중간에 주상절리의 침식과 박리 등으로 인해 형성된 하식동굴이 점점이 박혀있다.
기자가 다여온 것이 2014년이었으니 이제는 길이 다 뚫렸을 것이다. 이제 편안한 길로 한국의 그랜드캐년을 다시 합번 돌아볼 것이다.
■한반도의 탯줄
오리산·검불랑의 화산 분출이 빚어낸 풍경은 멍우리 협곡 뿐이 아니다.
기자일행은 이어 구라이골이라는는 특이한 이름의 현무암 협곡을 찾아나섰다. 날이 일찍 저무는 초겨울 오후였기에 서둘러 찾아갔지만 허탕칠 뻔했다.
분명히 네비게이션에는 포천 창수면 운산리로 찍었는데, 차가 관인면 중리 쪽으로 넘어갔는 데도 좀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참을 헤매고보니 공사중인 구간 저 편에 수상해서 공사장 길을 거쳐 의심지역으로 가보았다. 수풀 앞에 공사중임을 알리는 통행금지가 붙어있는 곳….
한데 자칫하면 빠질 것 같았다. 한적한 땅에 그렇게 칼날처럼 날카롭게 푹 꺼진 협곡이 있으니 말이다. 소규모 협곡이지만 침식지형인 하식애와 침식동굴인 하식동 등 현무암 침식지형의 대표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단다. 협곡의 중간에 있는 작은 폭포는 주상절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곳 뿐이 아니다. 아치형의 주상절리 동굴과 현무암 수직절벽이 펼쳐진 비둘기낭(천연기념물 537호)은 한탄강 주상절리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지금까지 ‘선덕여왕’, ‘신돈’, ‘추노’, ‘괜찮아 사랑이야’ 등 수많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각광받았다. 27만 년 전의 절대연령을 자랑하는 대교천 현무암 협곡(철원 동송~포천 관인·천연기념물 436호)은 어떤가.
‘까칠한’ 비탈길을 통해 협곡 아래로 내려가면 이승이 아닌듯 오싹해진다. 여름철엔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협곡에 마구 부딪혀 서늘한 함성을 자아낸다.
이밖에도 사시사철 수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샘소(포천 관인 냉정리 협곡), 볏단을 쌓아올린 듯한 형상이라는 화적연(禾積淵·포천 영북면 자일리·명승 93호), 못의 형태가 가마솥처럼 생겼다는 교통 가마소(포천 관인 중리)도 유명한 주상절리 명소이다. 또 강물과 용암의 작용으로 둥근 베개 형태의 지형이 만들어졌다 해서 아우라지 베개용암(포천 창수면 신흥리·천연기념물 542호) 등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오리산·검불랑의 화산분출은 빼어난 자연현상 만을 잉태한 게 아니라는 것.
바로 문명의 젖줄인 한탄강 임진강을 낳았고, 그 강물을 터전을 삼고 살았던 고인류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30만 년 전 연천 전곡 한탄강변에서 태어난 구석기인들이다. 전곡리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인류는 한탄강 용암대지 위에 채집생활을 하며 강물을 고속도로 삼아 문명을 일궜다. 그러고보니 오리산·검불랑은 결국 한반도 문명의 배꼽이었고, 한탄강·임진강은 문명이 탯줄이었던 것이다.
■왠지 ‘센치’해지는 이유는
그래서 그런가.
철원을 가면 왠지 푸근한 어머니 품 같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풀어헤치며 응석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어머니(오리산)의 자궁 같은 그런 2억 평에 이르는 드넓은 땅과 탯줄과 같은 그런 강이 있어서인가. 1100년 전 궁예도 그랬을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젖먹이 때부터 ‘나라를 해롭게 할 아이’라며 버림을 받고 한쪽 눈까지 잃었던 그 비운의 영웅이었기에….
훗날 왕건에게 쫓기면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궁예의 흥망성쇠가 바로 저 오리산과 오리산이 낳은 철원·평강에 간직돼있다.
철원을 노래한 문인들도 한결같이 궁예의 흥망을 애수(哀愁)에 가득 찬 시구로 노래했다.
아마도 풍천원 벌판에 방치된 궁전의 흔적을 보고는 폐허가 된 은허(殷墟)의 모습에 슬피 울었다는 은(상)나라 성인인 기자(箕子)의 ‘맥수지탄(麥秀之嘆)’을 떠올렸을 것이다.
태봉국 궁예와 은(상) 주(紂)왕의 난행과 망국, 그리고 폐허로 변한 도읍지의 황량한 모습을…. 그러고 보니 은의 인쉬(은허ㆍ殷墟)와 태봉국의 철원은 닮은꼴이 아닌가.
“나라가 깨져 한 고을이 되었구나. 태봉의 자취에 사람은 수심에 가득 차네. 지금은 미록(미鹿ㆍ고라니와 사슴)이 노는 곳. 가소롭다 궁예왕은 멋대로 놀기만 일삼았으니.…”(서거정의 시)
“(파괴된 궁실 자리에서) 보리는 잘 자랐고, 벼와 기장은 싹이 올라 파릇하구나. 개구쟁이 어린애(주왕)야! 나하고 사이좋게 지냈더라면….”(기자ㆍ箕子의 ‘맥수지가’)
저 멀리 오리산과, 오리산의 땅을 보면 왠지 ‘센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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