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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백년하청' 황하가 맑아진다. 성인이 출현할 것인가

황하(황허·黃河)에는 ‘물 한 말에 진흙 여섯되(一石水六斗泥)’가 흐른다고 한다.

해마다 13억~16억t에 이르는 황톳빛 진흙이 강 하류로 운반된다.
지난 3000년 동안 이 엄청난 진흙은 1500회가 넘는 범람과 제방의 파괴를 일으켰고, 26차례 이상 강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이 침전물을 높이 1m로 쌓으면 지구를 27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태평성대의 임금인 요순 임금 조차도 황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요임금은 곤(鯤)이라는 인물에게 임무를 맡겼지만 역불급이었다. 오히려 수해가 커졌다. 요임금의 후임인 순임금은 그 책임을 물어 곤을 죽이고, 곤의 아들인 우(虞)에게 치수를 맡겼다.

황톳물이 쏟아지는 황하.

비명에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치수를 맡은 우는 강을 다스리는 필살기를 선보인다. 물길을 파서 황하를 여러 갈래로 나워 소통시키고, 여러곳에 수리 시설을 축조했다.

우는 황하를 다스리는 13년 동안 3번이나 자기 집을 지나쳤지만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우는 결국 요순도 해내지 못한 ‘그 어려운 치수’를 해냈다.
이 공로로 우는 순의 뒤를 임금이 되었고,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 창업주가 되었다.

한자인 치(治)와 법(法)자를 보라, 모두 물 수(水)변이 있다. 그 정도로 물, 그 중에서도 흙탕물인 황하를 다스리고 조정하는 것이 중국 역사의 숙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72년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하자 정나라에서는 주화파와 주전파가 논쟁을 벌였다. 주전파는 진(晋)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려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화파의 자사(子駟)는 주나라의 시를 인용하면서 “황하가 맑기를 기다리면 사람은 늙어죽는다(待河之淸 人壽幾何)”(<춘추좌전>)고 했다.

황하는 그동안 26번에 달하는 유로변화를 겪었다. 그 중 9번은 지도가 바뀔 정도로 물줄기가 바뀌었다.

‘어느 세월에 진나라 구원병을 기다리겠냐. 꿈깨고 항복하자’는 것이었다. ‘일소비하청(一笑比河淸)’이라는 비유도 있다. 송나라 때 강직한 인물로 꼽힌 포증(999~1062)은 늘 근엄한 얼굴로 정사를 처리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포증의 웃음을 황허가 맑아지기는 것’에 견줬다.(<송사> ‘포증열전’) 포증이라는 인물에게서 웃음을 죽었다 깨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백년을 기다려봐라. 황하가 맑아지나…’라는 ‘백년하청’ 성어로 표현했다.
그러나 대대로 황하가 맑아지기를 염원해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어도 있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이강은 “황하가 맑아지면 성인이 출현한다(黃河淸而聖人生)”(<운명론>)고 했다.

그 대목에 “황하는 1000년에 한번은 맑아지는데, 그런 상서로움에 반응해서 성인이 출현한다”는 각주가 달렸다. 즉 황하가 맑아지면 3일간은 청수(淸水)가 되고, 그 다음 백수(白水·흰색)-적수(赤水·붉은 색)-현수

칭하이성(청해성)에서 발원한 황하는 네이멍구(내몽골) 지역르로 북향하다가 동향한 뒤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향하는 등 급격한 유로변화를 이룬다. 중하류보다 남쪽지방을 흐르는 상류가 봄철이 되면 먼저 녹는다. 따라서 상류에서 녹은 물이 아직 얼어있는 중하류로 쏟아져 내리는 일이 많다. 이 경우 뜻밖의 홍수가 일어난다.        

 

(玄水·검은 색)를 거쳐 다시 황수(黃水·노란색)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후 성인이 태어날 징조인 ‘황하의 맑은 물’을 염원하는 시와 글이 잇달았다.
단적인 예로 송시열(1607~1689)은 “집대성한 사람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는데 1000년만에 흐린 황하가 맑아졌다(一千年後濁河淸)”면서 <주자대전>을 쓴 성리학자 주희(1130~1200)를 찬양했다. 세종 때 연주된 궁중음악 중에도 ‘성인=임금’을 염원하는 “황하청지악”이 들어있다.
최근 백년하청의 성어를 낳았던 황하가 급속도로 맑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0~2015년 사이 황하에 유입되는 토사량이 연간 2억6000t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수십년간의 치수정책이 성과를 냈단다. 그렇다면 ‘1000년 만에 성인이 나타날 징조’라고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닌게 이니라 황하가 맑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 중기의 문장가 장유(1587~1638) 역시 ‘황하가 사흘간 맑아졌다니 하늘의 뜻 정녕코 태평시대 열려는 듯 하다(大河三日澄光 天意丁寧泰運昌)’고 좋아했다.
하지만 장유 이후 400년이 지난 지금 ‘맑아진 황하’를 한없이 기뻐할 수 있을까.

개운치 않다. 인공적으로 대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해봐도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 무엇보다 새삼 눈을 돌려 찾아본다. 대체 성인이 어디쯤에서 나온다는 건가.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