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고 죽나 독가스에 질식돼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1868~1934)는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독가스 예찬론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소금을 분해해서 치명적인 염소가스를 만들었다.
독일은 1915년 봄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168t의 염소가스를 살포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염소에 노출된 피부와 눈 등이 타들어갔다. 흡입되어 몸속으로 들어간 염소는 물과 반응하면서 온몸의 장기를 사정없이 파괴시켰다.
연합군도 독가스로 맞섰다. 그러나 1915년 가을 첫번째 시도에서 되레 쓰라림을 맛봤다. 독가스를 살포했으나 때마침 역풍이 부는 바람에 오히려 3000명 가까운 영국군이 죽거나 다쳤다.
그럼에도 1차 대전은 통제불능의 독가스 전쟁으로 전락했다. ‘더 더 강력한 독가스’를 향한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평화기에는 문명의 이기로 활용됐던 물질이 대량살상 무기로 변질됐다.
화학산업에 쓰인 포스겐는 물론, 노출되기만 하면 DNA를 손상시켜 서서히 고통속에 죽게되는 겨자가스까지….
신경성 독가스인 VX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52년 영국의 화학자 라나지트 고쉬 등은 인산화염 화살충제를 연구하다가 진드기 살충에 효과적인 물질을 찾아냈다. 곧 시장에 출시됐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3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됐다.
그러나 이 물질을 눈여겨 보는 쪽이 있었다. 영국군이었다. 생화학무기로 거듭난 물질은 ‘VX’라는 암호명을 얻었다. 1961년부터는 미국이 대량생산에 나섰다.
사담 후세인은 훗날 유엔무기사찰단에 “이라크도 한때 VX 개발계획을 세웠지만 생산에는 실패했다”고 증언했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 등 다국적군은 이라크내 VX 생산시설을 샅샅히 수색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VX가 1994년 12월 12일 전쟁터가 아닌 엉뚱한 곳, 즉 일본 오사카의 백주대로에서 테러용으로 쓰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옴진리교 사건이다.
사교집단인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저 자는 경찰 스파이’라고 지목한 28살의 회사원이 희생자였다. 아사하라의 사주를 받은 일당 4명은 출근하고 있던 회사원의 뒤통수에 ‘VX’ 가스를 뿌렸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회사원이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10일만에 사망했다.
VX가 개발된 후 42년만에 발생한 세계 첫번째 독살사건이다. 일본경찰도 처음엔 깜쪽같이 속았지만 옴진리교가 자행한 일련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피살된 김정남의 얼굴에서 VX성분을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단 10㎎만 피부에 닿아도 치명적이라는 VX를 감쪽같이 뿌렸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옴진리교 사건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야만적인 테러를 백주에 자행하는 비인륜적인 행태…. 인간의 탈을 쓰고는 차마 벌일 수 없는 행위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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