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도량형을 통일한 1446년(세종 28년) 건축물을 지을 때의 영조척(營造尺·과거 건축물이나 조영물을 만들때 사용된 길이기준)은 312㎜ 내외였다. 

세종대왕 영조척은 상황에 따라 다소 달리 쓰이기는 했지만 18세기 후반까지 건축물을 지을 때 대체적인 기준으로 알려져 왔다. 이 기준은 19세기 들어 일본의 영향아래 1자당 303㎜의 자로 바뀐다. 그런데 최근 세종대왕 당시의 영조척이 19세기 중후반에도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유물이 나왔다.

경기 안성 청룡사 대웅전 해체 보수과정에서 확인된 곡자가 발견됐다. ㄱ’자 형태의 자인 곡자는 전통건축에 쓰인 목재와 석재 길이를 측정하거나, 집 전체의 크기와 비례, 치목(治木·나무를 깎는 일)과 치석(治石·돌 다듬는 일)에 필요한 기준선을 부여할 때 사용한다. |문화재청 제공

경기 안성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 824호)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전통건축 건설에서 기준선을 부여할 때 사용한 ㄱ 형태의 목재곡자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최근 경기 안성시가 시행중인 대웅전의 공사 과정에서 ‘목재 곡자’(긴 변 43㎝, 짧은 변 31.3㎝, 두께 2㎝ 내외)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웅전의 상량문 기록 등을 토대로 이 곡자는 1863년(철종 14년) 대웅전 수리공사 당시 기둥의 해체보수 작업 과정에서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ㄱ’자 형태의 자인 곡자는 전통건축에 쓰인 목재와 석재 길이를 측정하거나, 집 전체의 크기와 비례, 치목(治木·나무를 깎는 일)과 치석(治石·돌 다듬는 일)에 필요한 기준선을 부여할 때 사용한다.

목조건축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인 대웅전 뒤쪽 기둥 하부와 초석사이에서 발견된 곡자. 이 곡자는 세종대왕이 도량형 통일 에 따라 만들었던 영조척(312㎜ 내외)과 거의 흡사한 1자 313㎜였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세종대왕 시대의 기준대로 건물을 지었다는 의미이다.|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발견된 곡자는 목조건축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인 대웅전 뒤쪽 기둥 하부와 초석 사이에서 나왔다. 또 곡자 주변에 습기 조절 등을 위한 건초류와 고운 황토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와관련, 문화재청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문정민 선임연구원은 “후대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된 치수 단위를 알 수 있도록 한 옛 목수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곡자는 짧은 변을 10치로 나누어 세부 단위를 ‘1(一)’부터 ‘10(十)’까지 표기했다. 특히 1에서 3까지는 다시 한 치(1자의 10분의 1) 당 10등분을 하여 측정의 정밀도를 높였다. 건물의 기본이 되는 길이 단위인 용척에 대한 1차 분석결과 한 자는 313㎜ 내외였다. 이는 대웅전의 용척과 정확히 일치했다.

ㄱ자로 꺾이는 곡자. 대웅전의 기본 길이 단위와 정확히 일치했다.|문화재청 제공

1자 313㎜ 기준은 조선 세종대왕 때인 1446년(세종 28년) 도량형을 통일할 때 만든 영조척(營造尺·과거 건축물이나 조영물을 만들때 사용된 길이 기준. 세종 당시의 영조척 기준은 312㎜ 내외)과 거의 일치한다. 

이 영조척은 상황에 따라 다소 달리 쓰이기는 했지만 18세기 후반까지 조선건축물의 기준으로 활용됐다. 그러던 것이 19세기들어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 조성되면서 일제강점기까지 303㎜ 용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313㎜ 곡자는 19세기 중후반인 1863년(철종 14년) 대웅전 수리공사 당시 기둥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정민 선임연구원은 “1863년 당시 이 세종대왕 때 도량형 통일 당시 쓰였던 영조척을 기준으로 대웅전을 고쳤다는 의미”라면서 “세종대왕, 바로 그 당시의 313㎜ 기준이 19세기 중후반까지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밝혔다.  

문정민 선임연구원은 “이번에 발견된 곡자는 그 당시에 건물을 짓거나 수리할 때 사용한 척도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은 주요 부재의 노후화로 건물 전체 변형이 심하다는 판단아래 2016년 6월부터 해체보수 사업을 진행중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