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 안되는 아주까리 씨앗은 물론 1㎜ 안팎에 불과한 오동나무 씨앗까지…. 이것이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핀셋과 현미경으로 찾아낸 1600년 전 신라시대 씨앗들이다.  

이 중 아주까리는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나 ‘…바람에 깜빡이는 아주까리 등잔불…’(가수 최병호의 1941년작 ‘아주까리 등불’)에서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식물이다. 시와 노래에서 나오듯 등잔불이나 머릿기름으로 쓰였고, 혹은 들기름이나 참기름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아주까리 씨앗. 25t덤프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일일이 물체질로 걸러내 찾아낸 유기물이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1600년 전 신라인들도 아주까리 기름을 미용과 약·식용 혹은 등잔용으로 사용했음을 시사해하는 아주까리 씨앗이 경주 월성의 해자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한 불과 1㎜도 안되는 한반도 자생 오동나무 씨앗도 찾아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6~19년 사이 경주 월성해자에서 발굴한 유기질 유물을 이른바 물체질로 걸러내는 과정에서 5세기 신라인의 삶과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미세자료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지난해 4월 월성해자 발굴성과로 공개된 5세기 씨앗 63종 외에 지난 1년간의 추가작업 끝에 10여종의 씨앗을 새롭게 찾아냈다”고 최근 전했다.

이 중 아주까리 씨앗은 길이 9㎜, 폭 7㎜ 정도였다. 아주까리는 한반도 자생종이 아니라 인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월성 출토 아주까리 씨앗은 외부에서 유입된 종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부터 아주까리 씨앗을 짜서 식용이나 미용, 혹은 등잔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크기가 1㎜도 채안되는 오동나무 씨앗. 씨앗에 날개같은 것이 붙어있다. 한반도 자생종인 오동나무 씨앗은 지난해 4월 열린 기자간담회 때까지는 찾지못했다가 이후 물체질과 현미경 관찰 등으로 걸려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아주까리 씨앗은 등잔용, 혹은 머릿기름으로 사용됐지만 약용으로도 쓰였다. 문헌자료를 종합하면 “아주까리(피마자) 기름종이에 불을 붙여 연기로 훈증하면 혀가 부풀어 나오는 증상을 쾌유된다”(<향약재생집성방>)든가, “감기에 잇몸이 붓고 진물이 나는데 아주까리 줄기를 아픈 이에 눌러 문다”(<중종실록>)든가, “피곤하고 허약할 때 아주까리 기름을 쓴다”(<중종실록)든가 하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도 아주까리 씨앗은 크기가 1㎝ 남짓은 되니 그나마 발견하기 쉬웠다. 연구소측이 찾아낸 씨앗 중에는 크기가 1㎜도 안되는 오동나무 씨앗도 들어있었다. 한반도 자생종인 오동나무 씨앗이 고대 유적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소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해자에서 파낸 점토흙을 하나하나 물체질 하면서 그 안에 존재할 지도 모를 유기체를 걸려내고 있다”고 밝혔다. ‘물체질’이야말로 5세기 신라 왕궁을 감싸고 있던 1600년전 ‘월성숲’ 환경복원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결정적인 몫을 해내고 있다.

발굴구간이 연못터였던 덕분에 흙에 수분이 많아 그 속의 유기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반면 퇴적층은 점토이기 때문에 작은 씨앗 등 그 속의 미세한 유기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물체질로 걸러낼 수밖에 없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원측은 월성해자 발굴구간(가로 155m×세로 34)에 쌓인 점토흙 1.1m를 파내 일일이 물체질해오고 있다. 이종훈 소장은 “연구소측이 물체질하고 있는 흙의 양은 25t 덤프트럭 100대분(2200㎥)에 이른다”고 밝혔다. 발굴구간은 연못터였던 덕분에 흙에 수분이 많아 그 속의 유기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물기 덕분에 산소가 통하지 않아 썩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퇴적층은 점토이기 때문에 작은 씨앗 등 그 속의 미세한 유기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월성발굴현장, 발굴단은 덤프트럭 100대분의 흙을 모두 수습해서 물체질로 그 속에 존재하고 있을 유기체를 찾아내고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안소현 연구원은 “점토를 물에 풀어 놓은 다음 가라앉는 것은 골라내고 물에 뜨는 것은 일일이 핀셋으로 찝어낸다”면서 “그와 함께 그물간격이 0.5㎜에 불과한 체로 걸려내는 작업을 반복해서 미세유기물을 찾아낸다”고 전했다. 또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유기물은 현미경으로 골라내야 한다. 

단적인 예로 크기가 1㎜도 안되는 오동나무 씨앗은 지난해 기자공개회 때는 찾아내지 못한 유물이었다. 그후 현미경을 동원한 세심한 관찰 끝에 극적으로 찾아냈다. 안소현 연구원은 “어마어마한 양의 점토 안에 어마어마한 유기물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무한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0.5mm 정도의 체를 이용해 걸러낸 식물유체들. 지금까지 확인한 식물유체는 70여종에 달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말 그대로 ‘극한직업’이 아닐 수 없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렇게 찾아낸 식물자료에 대한 규조·화분 분석 등을 더해 지난해 신라인들이 가시연꽃이 가득 핀 해자를 보며 걷고, 느티나무 숲에서 휴식을 취했을 5세기 신라 왕궁의 풍경을 복원한바 있다.  

이종훈 소장은 “201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단에 고환경연구팀을 조직했다”면서 “이 팀이 발굴조사단계부터 다양한 연구시료를 확보해서 1600년전 월성 주변의 환경과 신라인의 삶을 그려왔다”고 밝혔다.

연구소측은 이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체코 프하라에서 개최될 세계고고학대회에서 ‘신라왕성을 감싸고 있던 월성숲과 환경복원’을 주제로 독립세션(회의)을 구성하는 개가를 이뤘다. 3~4년마다 열리는 세계고고학대회는 100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고고학 연구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학술포럼이다. 그래서 ‘고고학 올림픽’이라 일컬어진다. 올해 7월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내년(7월)으로 연기됐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세계고고학대회 사무국의 엄정한 심사를 통해 단일 세션 구성이 결정됐다”면서 “단일 유적을 대상으로 환경 연구를 체계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보기드문 사례라는 점이 부각됐다”고 소개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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