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채소바구니를 짊어지고 날마다 홍구(虹口·훙커우) 방면으로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上海·상하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선생님께서….”

1932년 4월1일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를 남겨둔채 혈혈단신 상하이로 건너온 24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다.

청년은 피혁공장과 세탁소 등에서 일하다가 훙커우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백범을 찾아온 용건은 “(이봉창 의사처럼) 제발 나를 독립운동 자원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김구 선생은 허심탄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청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끝에 ‘의로운 대장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요. 뜻을 품으면 마침내 일을 이룬다(有志者 事竟成)는 말이 있지…. 사실 내가 요사이 연구하는 바가 있는데 마땅히 사람을 구하지 못해 번민하던 참이었소.”

윤봉길 의사와 백범 김구 선생이 거사직전에 맞바꾸었던 회중 시계. 왼쪽 사진은 윤봉길 의사가 “저는 새 시계가 필요없다”면서 백범에게 건네준 시계(등록문화재 제441호)이다. 오른쪽 시계는 윤봉길 의사가 신상시계를 건네주고 백범으로부터 받은 낡은 시계(보물 제568-2호)이다.

■‘죽을 자리를 구하러 왔습니다.’
당시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내 한국독립운동의 입지는 매우 좁았다. 1931년 7월 일제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현(長春縣) 만보산 지역에 이주한 한인과 현지 중국인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술책을 썼다.

일본 경찰이 개입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선에서는 중국인을 배척하는 폭동까지 일어났다. 이른바 만보산 사건의 본질은 만주에 세력을 형성한 중국 민족운동 세력과 한인 세력의 반일 공동전선 투쟁을 막고 분열시키려는 일제의 음모였다.

일제의 이간책에 휘말리는 통에 중국 내에서도 한인에 대한 악감정이 커져만 갔다. 상하이 길거리에서조차 중국인과 한인 노동자간 충돌이 벌어졌다.

거사에 앞서 한인애국단 선서식을 치른 윤봉길 의사

일제는 한발 더 나아가 1931년 9월 만주 사변과, 1932년 1월 상하이 사변을 잇달아 일으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부 사정도 좋지 않았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됐고, 20년대 후반에는 해외동포들의 모금도 거의 중단됐다. 독립운동가들도 대부분 상하이를 떠났고, 소수의 임시정부 고수파만이 외롭게 간판을 지키고 있었다.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이런 난국을 타개하려고 만든 단체가 바로 한인애국단이었다. "현단계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은 어렵지만 테러공작, 즉 요인을 암살·파괴하는 공작을 펴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백범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임시정부 국무회의는 공작에 사용하는 자금과 인물의 출처 등 전권을 백범에게 위임했다.

한인애국단의 첫번째 임무는 이봉창 의사의 ‘일왕 저격 미수 사건’(1932년 1월8일)이었다. 물론 이 사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일본의 신성불가침인 일왕의 저격을 꾀함으로써 세계만방에 한인이 일본에 결코 동화되지 않았음을 과시한 사건’으로 평가됐다. 중국 국민당 기관지 ‘국민일보’의 “한국인 이봉창이 일왕을 저격했지만 ‘불행히 명중시키지 못했다(不幸不中)’”는 기사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통 및 도시락 폭탄을 제조한 까닭
각설하고 백범이 청년 윤봉길과 이야기하면서 떠올린 ‘요사이 연구하는 바가 있는 계획’이 무엇이었을까.

“왜놈이 (상하이 사변에서) 승전했다는 위세를 업고 4월29일에 홍구공원에서 이른바 일왕의 천장절(생일) 경축식을 열 모양이오. 성대하게 거행해서 군사적 위세를 크게 과시할 것 같은데 윤군이 한번 일생의 대목적을 달성해봄이 어떻소?”(<백범일지>)

한인애국단 선서문.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봉길의 답변은 시원시원했다.
“예. 이제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때마침 일본 영사관은 ‘일일신문’을 통해 상하이 주재 일본인들에게 “식장에 참석하는 자는 물병 하나와 도시락, 일본 국기 하나씩 들고 오라”고 통보했다. 백범은 “이거야” 하고 무릎을 쳤다. 백범은 용의주도했다. 즉시 중국군 장교였던 김홍일(중국명 왕슝·王雄)과 상하이 병공창장인 송식표를 찾았다.

“어깨에 매는 물통과 도시락을 사서 보낼테니 3일 안에 그 속에 폭탄을 장치해서 보내주시오.”

폭탄제조를 맡은 중국인 기사 왕바이슈(王伯修) 등은 뇌관 20개를 실험해서 20개 모두 폭발성공을 마친 뒤에야 물통 및 도시락에 고성능 폭탄을 장착했다. 그것도 20개 모두 무료로 주었다. 이봉창 의사에게 건네주었던 폭탄의 능력이 미약해서 일왕을 폭살시키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소중하게 만든 고성능 폭탄은 김홍일의 집에 운반되었다.

■최후의 조찬, 쇠고기 국밥
이제는 윤봉길 의사의 차례였다. 천장절 사흘 전인 4월26일 윤봉길은 한인 거류민단 사무실에서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을 거행했다.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왜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합니다.”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기념식. 일본 군대 1만명 등 모두 3만명에 이르는 일본인들이 대대적인 환영식을 열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일으키기 직전의 단상 사진이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 상하이 주둔군사령관은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서 있다. 

선서를 마친 윤봉길은 태극기 앞에서 임시정부 재무장인 김구 선생과 기념촬영을 했다. 백범은 윤봉길에게 거사비용 은화 200냥을 주었다. 윤봉길은 거사장에 입고들어갈 양복 한벌과 시계 등을 구입했다.

윤봉길은 이때 마련한 일본식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날마다 훙커우 공원을 답사했다. 식장을 설치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거사할 위치와 동선을 점검했다. 또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상하이 주둔군사령관(대장)을 비롯한 폭살 목표 요인들의 사진을 구하고 일장기를 마련했다.

거사당일인 29일 새벽 윤봉길은 백범과 함께 교포 김해산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백범은 김해산에게 미리 “쇠고기 국밥 좀 마련해달라”고 부탁해놓았다.

윤봉길의 마지막 식사 모습을 지켜보는 백범의 가슴은 찢어졌다. 당시 56살인 백범에게 이제 24살에 불과한 청년 윤봉길은 영락없는 아들뻘이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어른들 때문에 이 앞길 창창한 청년을 사지로 보내야 하다니…. 밥 먹는 윤봉길의 모습을 묘사한 <백범일지>를 보라.

“윤군의 기색을 보니 태연자약했다. 농부가 논밭에 나가려고 일찍 일어나 자던 입에 일부러 밥먹는 것을 보면 할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는데….”

윤봉길 의사의 격살 목표였던 시라카와 상하이 주둔군 사령관이 식장에 들어서는 모습. 윤의사의 폭탄을 맞은 지 28일만인 5월26일 사망했다. 일본은 일왕까지 나서 작위와 어주까지 내리고 욱일훈장까지 주는 등 쾌유를 빌었으나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자 중국인들은 축포를 터뜨리며 환호했다.

■맞바꾼 회중시계와 탈탈 털어준 돈
아침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윤봉길이 품에 지니고 있던 회중(懷中, 품안에 넣는) 시계를 꺼냈다.

“선생님, 이 시계, 선생님 것과 바꾸시죠.”
윤봉길의 시계는 백범이 건네준 거사자금 중 6원을 주고 산 신제품이었다.

“보아하니 선생님의 시계는 낡았네요. 한 2원짜리 밖에 안될 것 같네요. 저에게는 1시간 밖에 소용없습니다.”

백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청년이 건네주는 시계 또한 마지막 기념품이 아닌가. 이렇게 백범의 시계와 윤봉길 의사의 시계가 맞교환됐다.

이 뿐이 아니었다.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로 향하는 자동차를 타다말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윤봉길 의사가 지니고 있던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 윤의사는 투척한 것은 물통 폭탄이었다.

“선생님, 이게 남은 돈인데요. 자동차 요금 주고도 5~6원 정도는 남을 것 같습니다. 제겐 필요없는 돈이니 선생님이 갖고 계십시요.”

“무슨 소리? 그래도 돈은 좀 갖고 있어야지.”

“아닙니다. 전 필요 없습니다.”
백범이 돈을 돌려줄 사이도 없이 자동차가 미끄러져 갔다. 백범은 허공으로 팔을 내저으며 몇 걸음 자동차 뒤를 쫓아갔다.

“윤 군! 윤 동지!…나중에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봉길 의사가 차창으로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무심한 자동차는 경적을 내며 훙커우 공원으로 내달렸다.

■무력시위에 나선 일본군
윤의사가 훙커우 공원에 도착한 것은 7시45분이었다.

천장절 행사는 상상 이상으로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기갑 및 보병 기마부대가 상하이의 온 시가를 누볐고, 행사장을 에워쌌다. 공중에서는 수십대의 비행기가 무력시위를 벌였다.

윤봉길 의사는 어깨에 물통을 메고 양손에 도시락과 일장기를 들고 입장해서 일반관람객 속에 자리를 잡았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후 아수라장이 된 천장절 식장. 중상자를 끌어내리는 장면이다.

식장은 발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외국사절도 초청됐지만 절대 다수가 일본의 공·상업 각계인사와 상하이 거주 일본인 남녀노소였다. 무력시위에 나선 일본군 1만명을 포함해서 총 3만명의 일본인이 자리를 메웠다.(‘시보’ ‘시대신보’ 4월 30일자)

오전 9시가 되자 삼엄한 경비 속에 상하이 주둔군 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을 필두로 내·외빈이 줄줄이 입장했다. 단상에는 시라카와와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중장, 제9사단장인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중장과 상하이 총영사인 무라이 쿠라마쓰(村井倉松), 일본공사인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와 일본 거류민 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지(河端貞次), 거류민단 서기장인 도모노 모리(友野盛) 등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공식 행사와 열병식은 2시간 30분간 이어졌다. 열병식 후 외빈들이 자리를 떠난 뒤 일본의 주요기관 인사와 일본교민들만이 참여하는 관민결합대회가 열렸다. 이때가 11시 30분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1932년 5월1일 일본 오사카아사히 신문 1면에 실린 윤봉길 의사 채포장면. 현장에서 구타당해서 파투성이가 되었다는 보도가 많았지만 이 사진에서 보이는 윤의사의 얼굴과 옷은 깨끗하다. 이 때문에 사진의 주인공이 윤의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피바다가 된 사령대
일본 교민들이 부르던 기미가요(君が代)의 마지막 한 절이 끝나고 시간이 11시45~50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일어나 사령대 쪽으로 물통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시게미쓰와 노무라 우측, 우에다 좌측에 떨어졌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시라카와와 우에다가 ‘폭탄이다’라 외치며 10여 발자국 물러섰다. 잠시 뒤 폭탄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신보> <시보> 4월30일자)

같은 날짜인 5월1일자 '오사카 아사히 신문'의 호외 2면에는 피를 흘리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이 실려있다. 아마도 격화된 반일감정에 불을 붙이지 않을까 두려워 한 일본 신문이 깨끗하게 처리한 1면 사진을 실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김상기의 '윤봉길의 상해의거에 대한 일본언론의 보도' 논문에서)

중국 신문들은 폭탄이 터진 뒤의 장면을 앞다튀 보도했다.

“가와바타는 내장이 모두 쏟아진채 경축단상에 꿇어앉아 ‘사람살리라’고 소리 질렀다. 시라카와는 왼뺨에 파편이 박혔다. 시게마쓰는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졸도했고, 노무라는 왼쪽 눈알이 튀어나왔다. 사령대가 질퍽하도록 피로 물들었다.”(신보 4월30일)

폭탄이 터진 사령대 바닥판은 산산조각났다.  
“보통의 수류탄이 아니다, 알루미늄제 군용보온병으로 위장된 특수폭탄이었다. 보온병 안에는 물대신 강력한 화약이 채워져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사령대를 크게 파손시켰다. 사령대 왼쪽 앞에는 직경이 1m 가까운 구덩이가 패였다. 화약을 담은 알루미늄통은 폭발과 함께 엄청난 파편이 되어 가공할 살상력을 보여주었다. 두께 2촌, 넓이 9촌 정도인 사령대 바닥판은 산산조각 났다.”(‘시보’ 4월30일)

봉길 의사에게는 아직 던지지 못한 도시락 폭탄이 남아있었다. 중국신문들은 “도시락 폭탄은 길이 8인치, 폭 3인치, 깊이 2인차 정도였고 안에는 폭약이 가득차 있었다”고 전했다.

중간수사발표와 함께 용의자의 사진을 게재한 ‘오사카 아사히 신문’ 5월7일자. 5월1일자 호외 1면에 썼던 사진을 얼굴만 따서 다시 게재했다. 만약 윤봉길 의사가 아니었다면 잘못된 사진을 중간수사발표 이후에도 그대로 재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차별 구타당한 윤봉길 의사
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일본인들에게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당했다. 

“일본인들이 마구 구타했다.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피투성이가 됐고, 헌병대에서 그를 압송했다. …군중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피투성이인 상태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한 모습이었다.”(‘신보’ 4월30일)

‘대만보’는 서양인이 본 윤봉길 의사의 체포장면을 전하고 있다.

“사령대 옆의 사람이 난폭하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제압하여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군중은 그 사람의 옷을 찢고 발로 차며 마침내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일본 헌병대가 끌어냈을 때는 얼굴부터 허리까지 선혈이 낭자한 모습이었다. 옷소매 사이로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록 중상을 입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냉소가 흘러나왔다.”(‘대만보’ 4월30일)

각 신문들의 보도를 보면 윤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를 당한 뒤 헌병대로 끌려갔음을 알 수 있다.

■윤봉길 체포사진은 조작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오사카아사히 신문(大阪朝日新聞)’의 5월1일자 호외 1면 사진은 무엇인가. 그 사진을 보면 연행되는 윤봉길 의사의 얼굴과 옷이 깨끗하다.

이 때문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얼굴과 옷이 깨끗한 사진은 이것 뿐이다.

같은 날짜 ‘오사카아사히 신문’의 호외 2면에는 ‘머리카락이 서있고, 얼굴에 핏자국이 보일 정도의 성처가 난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실었다.

거사 후인 5월8일자 일본 '홋코쿠신문(北國新聞)에 실린 윤봉길 의사 가족사진. 왼쪽이 윤의사 아버지 윤황, 뒤에 아이를 보듬은 이가 윤의사 부인 배용순, 어린애는 윤의사의 자녀들이고, 오른쪽 3명은 윤의사 동생들로 추정된다.

즉 1면에는 깨끗한 사진을, 2면엔 피투성이 사진을 실은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발행되는 영자지인 ‘더 차이나 위클리 리뷰’  4월30일자와 '더 차이나 위클리 리뷰' 5월7일자 사진을 봐도 얼굴이 시커멓고. 코트에 진흙 같은 것이 묻은채 헌병에 의해 끌려가는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세 커트의 사진을 보면 주인공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오사카아사히 신문’의 호외 1면 사진만 깨끗할까.

혹시 ‘오사카아사히 신문’이 사진원판에 손을 댄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간다.

1면에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내면서 핏자국이 서명한 윤의사의 얼굴사진을 그냥 싣는다면 상하이 사변 이후 격화된 반일감정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를 당했지만 의연했다. 범인임을 숨기지도 않았고 혹독한 고민 속에서도 너무도 태연자약했다.

“체포 후에도 윤봉길은 전혀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태연자약했다.”(‘대만보’ 4월30일)

“다급해진 일본헌병은 윤봉길의 입을 열게 하려고 온갖 가혹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윤봉길은 만신창이가 됐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이어지는 고문에 윤봉길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믿고 있다.”(‘시사신보’ 5월3일)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마쓰 마모루. 훗날 외무대신이 된 그는 항복후인 1945년 9월2일 미주리 함상에서 열린 항복조인식에 나설 때도 무게 10kg의 의족에 의존했다.    

■다리를 절단한 미래의 외무대신

그렇다면 사령대(식단) 위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본인 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지는 폭발 직후 내장에 쏟아져 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급히 후송되었지만 다음날 새벽(4월30일) 사망했다.

“내장이 쏟아져 나온 가와바타는 새벽에 두 차례나 피를 토하고 거품을 뿜으며 기침을 그치지 않다가 결국 새벽 3시10분 사망했다.”(‘대만보’ 4월30일)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온몸에 64곳이나 파편이 박힌채 혼수상태로 이송됐다. 결국 일주일만에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중국 신문들은 시게미쓰의 수술소식을 고소하다는 듯 아주 선정적인 필치로 전했다.

“수술용 톱으로 다리를 잘라낼 때 선혈이 사방으로 튀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잘라낸 다리 부위의 살과 근육이 한동안 꿈틀대는 모습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시보’ ‘시사신보’ 5월6일)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는 훗날 일본의 외무대신이 됐고 1945년 9월2일 미국의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다.

폭발 직후 눈알이 빠진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은 결국 실명하고 말았다. 제9사단장인 우에다 중장은 발가락 4개가 완전히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고, 상하이 총영사인 무라이와 거류민단 서기장인 도모노는 경상을 입었다.

시라카와가 죽은 뒤 시라카와의 부관이 피묻은 군복을 정리하고 있다. 

■술까지 마시다 사망한 사령관 시라카와 
그러나 관심의 초점은 역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자 육군대장인 시라카와였다.

윤봉길 의사의 타격목표가 바로 시라카와였기 때문이었다. 시라카와는 1925년 대장으로 승진한 이후 육사교장, 시베리아 파견군 사령관, 육군성 차관, 관동군 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대신을 지낸 일본 육군의 대표적인 지휘관이었다.

1928년 퇴직했지만 1932년 1월 29일 상하이 사변을 발발하자 다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으로 복직됐다. 한마디로 일본군의 상하이 침공을 상징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시라카와는 30여군데가 넘는 파편을 맞았지만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가 패혈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일왕이 남작의 작위와 욱일훈장까지 내리고, 사주(임금의 내리는 술)까지 하사했지만 사망했다.

그랬으니 중국신문들도 시라카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의거 직후 시라카와의 용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왼쪽 뺨 7~8곳의 파편을 맞았고, 어깨와 복부 및 다리에 30여곳의 상처자국이 남아있었다. 일본 육군병원 측도 “출혈이 심하지 않아 4주 정도면 완치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시보’ 5월1일) 병세가 나날이 호전되어 병상에서 술을 마실 정도였다.

‘시사신보’는 “평소 술을 좋아한 시라카와가 브랜디를 찾고 있으며 문병 온 지인들과도 환담을 나눴다”(5월4일)고 전했다. 그러나 5월21일이 되자 시라카와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동안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시라카와가 내장출혈로 인한 혈변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시사신보’ 5월21일)

23일 새벽 시라카와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자 일본 본토에서 일왕까지 나서 난리를 피웠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시라카와에게 ‘사주(賜酒·임금이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리는 술)’와 함께 욱일 대훈장과 남작의 작위까지 내렸다. 5월24일 혼수상태에 빠진 시라카와의 병상에서 의식을 펼쳤다.

먼저 일왕의 칙어를 봉독하고 남작의 작위를 내리는 사실을 알렸으며, 사주인 백포도주를 시라카와의 입술에 적셔주었다.  

시라카와가 일본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왕까지 나서 쾌유를 빌고 별의별 수단을 썼지만 시라카와는 회복하지 못했다.

위장과 대장을 절제하는 대수술을 감행했지만 5월26일 오전 11시 40분 사망했다.

중국 국민당 주석이었던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이 1969년 윤 의사를 기리며 쓴 헌시. 장 총통은 "살고 죽는 것을 알고 바른 기운을 세상에 남기고 천지 사이에 의리를 취하여 몸을 바쳐 어진 것을 이루었으니 업적이 길이 빛나리라"라고 윤봉길 의사를 칭송했다. 장제스는 의거 당시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칭찬한 바 있다.

■축포를 터뜨린 중국인들
중국인들은 시라카와가 사경을 헤맬 때부터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미리 퍼져 축포를 터뜨리며 환호했다.

“일본은 이번 전쟁이 황군의 위력을 떨쳐보인 승전이라 큰소리치고 있지만…전쟁통에 노무라와 우에다가 다치고 시라카와의 사망소식이 들려오자 상하이의 모든 시민은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했다.”(<상해보> 1932년 5월25일)

시라카와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무렵인 5월25일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파견 일본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무리 군법회의였다지만 1월8일 일왕을 저격한 이봉창 의사가 9차례나 심문을 받고 9월30일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비하면 너무도 전격적인 재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상해보’는 “일본은 시라카와의 무덤에 윤봉길 의사를 순장시키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시라카와가 사망하자 일본정부는 윤봉길을 처형하여 시라카와를 따라 순장시키려 한다. 시라카와의 죽음에 대한 앙갚음으로 사형에 처해진다 해도 윤의사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상해보’ 5월 31일)
중국 신문은 “윤봉길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윤의사를 기리고 있다.

윤봉길 의사가 아들에게 남긴 친필 유언. 젖먹이 두 아들에게 ‘강보에 싸인 두 병정, 너희가 피가 있고 뼈가 있거든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훙커우 의거의 후폭풍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는 엄청난 후폭풍을 안겼다. 만보산 사건 이후 비등했던 중국내 반한 감정이 말끔히 해소됐다. 한술 더떠 중국과의 반일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중대 계기를 마련했다.

충격에 빠진 일본군은 확전을 단념하고 긴급히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주석은 “100만 중국군이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했다.

이후 중국 군관학교에 100여명의 한인 청년들이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조선 의용대 및 한국광복군의 근간이 되었다. 임시정부 또한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국내외 동포의 재정적, 정신적인 지원까지 재개되면서 임시정부는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로 하여금 한국의 독립을 제안하고 그 선언문에 명문화시킨 공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1932년 12월19일 일본 가네자와(金澤) 교외인 육군작업장에서 충살형을 당한 윤봉길 의사. 군법회의의 총살형은 일본역사상 3번째였다고 한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1949년 6월26일 오후 2시36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 선생의 유품은 모두 18점이었다.

그 중 10점은 피묻은 선생의 옷이었고, 5점은 도장이었다. 3점은 선생이 쓴 유묵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점은 바로 윤봉길 의사와 맞바꾼 회중시계(등록문화재 제441호)였다.

그렇다면 백범이 윤봉길 의사에게 준 시계도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있다. 윤봉길 의사가 간직하고 있던 백범의 시계는 지금 보물(568-2호)이다.

지금도 25살 윤봉길이 아버지뻘인 백범 선생과 주고받은 말이 귀에 쟁쟁하다.

“선생님, 저에게는 새 시계가 필요없습니다. 선생님이 필요할 것 같아요.”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행 자동차를 타면서 백범에게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뒤져 남은 돈을 건네면서 했다는 말도….
“선생님 저에겐 돈이 필요없어요. 선생님이 쓰세요.”
달리기 시작하는 자동차를 따라 쫓아가던 백범이 했다는 말도 어떤가.
“윤군! 윤동지! 지하에서 봅시다.”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또한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흐르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마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생각할수록 못난 나라다. 24살 앞날이 창창한 젊은 가장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윤의사는 어리디 어린 젖먹이 두 아들에게까지 ‘강보에 싸인 두 병정’이라 하면서 ‘조국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라’고 독려했다. 다시는 그런 못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스치듯 흘려보낸 4월29일의 역사를 다시 소환해보는 이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참고자료>
한시준,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에 대한 중국신문의 보도’,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2권 32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김상기, ‘윤봉길 상해사변에 대한 일본언론의 보도’,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2권 32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김광재, ‘윤봉길의 상해의거와 중국측 역할’, <한국민족운동사 연구> 제33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2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2011
김광, <나의 친구 윤봉길>, 이민원·양수지 역주, 선인, 2017
임중빈, <윤봉길 의사 일대기>, 범우사, 2006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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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질을 보자 2018.05.07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면 저도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법으로
    답을 해볼까요?

    아시아의 많은나라의 양민을 학살하고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미국의 선량한 주민들을
    학살한 전쟁의 괴수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공원에 뫃인 일본인들은 군복을 입었든, 않입었든
    전쟁을지원한 범죄자들이므로 척살해도 좋다.

    • kimduhan 2018.05.07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당연 찬미하지 않고, 비판합니다.
      전쟁과 평시의 테러는 명확히 구별됩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했다. 그것은 미국의 침략적 색채가 있습니다만, 합법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에 반감을 가진 아랍인이, 부시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서 테러를 하고, 미국 공화당지지자를 말려들게 해서 죽이면, 그것은 당연 범죄입니다.

    • kimduhan 2018.05.07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더 한국인에게 가까운 사례를 이야기하면, 북한 특수 부대가, 한국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서 랑군에서 폭탄 테러를 했다. 그래서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그의 주치의 등이 죽음을 당했다. 그것은 칭찬되어야 할 행위입니까?

  3. 본질을 보자 2018.05.07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두한씨가 반 테러리스트라면
    일 제국주의 하에서 국가가 주도한 숱한
    테러리즘을 먼저 통렬하게 비판하고
    반성부터 하세요

    어줍잖은 역사의 잔 지식 끌어다 양비론과
    본말전도로 본질을 흐리지 말고..

    그리고 중국인의 반한 감정인데,
    그게 사드배치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는걸
    모르나봐요. 적어도 대한민국은 중국과 갈등이
    있어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해도 일본처럼 스스로 꼬리를 내리며 주권을 포기하지는 않지요

    안전불감증이 우리나라의 오랜 문제였었죠.
    요즘은 많이 낳아져서 현재 극우화 하고있는
    일본을 백년, 몇백년 전에 전쟁을 치룬 국가들의
    후예국 보다 위험하게 보는거지요

    • kimduhan 2018.05.07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은 제국 주의 시대, 전쟁을 한 것이어서, 테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전쟁과 테러의 차이를 공부하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한 것이 테러가 아니다고 한들, 그 침략은 깊이 반성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윤봉길 의사는 애국자! 」등과 자국의 치부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하고, 특히 중국에서 많은 민간인을 말려들게 하고, 희생시킨 것을 통절하게 반성 할 필요가 있습니다.

    • kimduhan 2018.05.07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거의 일본 군국주의가 진행된 것= 침략전쟁= 용서되지 않는 것.

      윤봉길이 간 것= 민간인을 말려들게 하는 무차별 테러= 용서되지 않는 것.

      북한이 랑군에서 간 것= 죄도 없는 의사까지 말려들게 한 무차별 테러= 용서되지 않는 것.

  4. 본질을 보자 2018.05.07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의 무력 투쟁이나
    대한민국의 항일 무력투쟁은
    평시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대한만국 독립군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간의 전쟁중에 일어난 사건
    입니다.

    종전은 1945년에 있었구요

    • kimduhan 2018.05.07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는 1941년12월10일. 윤봉길의 테러는 1932년.
      임시정부자체가,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도 승인되지 않고 있었던 단체이므로, 연합국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 받고 있었던 자유 프랑스와 비교 대상도 하게 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해도 선전 포고이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일본정부는 교전 상태에 없었습니다.

    • kimduhan 2018.05.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만일 교전 상태에 있어도, 전시 국제법에서는, 공격 목표는 적의 전투원(Combatants)인가 군사목표(military objectives)에 한정됩니다. 또 공격 목표로서 금지되고 있는 것은, 항복자, 포획자, 부상자, 군대의 위생요원, 종교요원, 민간인, 민간방위 단원 등의 비전투원 등입니다.
      만일 대일본 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교전 상태라도, 민간인을 살해한 윤봉길의 행위는, 전시 국제법위반의 단순한 테러입니다.

  5. 본질을 보자 2018.05.07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전쟁과 테러에 대해서 공부하라고 귄고
    하셨지요.

    침락전쟁, 근세사에 일본을 포함한 열강들이 저질렀던 패륜적 침락전쟁과 식민지배 행위들이야 말로 진정한 테러라는 개념 모르세요?

    이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라 추앙받는
    노엄 촘스키의 권력과 테러라는 책을 읽어보시고
    왜 제가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궤변으로 한국의
    항일 무력투쟁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하는지
    성찰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어 한두개와 행위의 일면에만 집착해서 팩트의
    한 단면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으면
    차라리 제가 어제 제안했던 기호학적 접근을
    시도하던지요?

    • kimduhan 2018.05.07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의 제국 주의 세력의 행위도, 물론 현재부터 보면 용서되지 않는, 테러라고 말해도 좋은 것 같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도 테러를 했다고 하는 것도 사실로, 그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테러를 했기 때문에라고 말하고, 일본이 한 것이 훌륭하다든가, 면죄 된다고는 일체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죄 쪽이 무거운 것은 당연 사실입니다.

    • kimduhan 2018.05.07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정나 지식인·촘스키의 주장에 당신은 찬동합니까?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2005년
      P153

      “사실 세계의 선진국들을 살펴보면 아주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5분만 관찰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미국에서는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사실이란 무엇이냐 하면 경제 선진국들은 서방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경험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이에 비해 서방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들은 총체적인 실패작으로 끝났습니다. 서방의 식민지 정책을 물리친 나라는 일본인데, 경제 발전을 이룩한 전통적 제3세계의 유일한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유럽은 일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정복했고 일본은 경제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프리카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일본이 산업화 과정을 시작했을 때(1870년대), 서아프리카의 아산테 왕국은 가용 천연자원, 국가 형성의 수준, 기술 발전의 단계 등에 있어서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지역을 비교해 보십시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두 나라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일본은 서방에 의해 정복되지 않았는데 비해, 아산테 왕국은 영국에 의해 정복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서아프리카 그대로이고 일본은 경제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일본도 그들 나름의 식민제도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들 역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운영 방식은, 식민지에서 일방적으로 빼앗기만 한 서방국가들의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도 잔인한 식민지 수탈 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들을 경제적으로 발전시켰던 겁니다. 이들 식민지는 산업화되고,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교육 수준을 높이고, 농업 생산을 증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과 타이완의 성장률은 20세기 초반 내내 일본의 성장률과 비슷했습니다. 사실 1930년대에 이르러 포모사(현재의 타이완)는 아시아의 상업적 센터 중 하나였습니다. 타이완과 그 바로 옆에 있던 미국 식민지 필리핀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필리핀은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형편 무인지경의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 다시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6. 본질을 보자 2018.05.07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김두한씨가 논쟁을 벌이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점은 알겠는데요,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이 테러리스트(?)라는 주장.

    그런데 논리의 전개나 역사 인식은 갈팡질팡 하며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의 흉내부터 전형적인
    군국주의자들의 사고행태까지, 꽤 스펙트럼이
    넓네요.

    어떤분의 글을 빈 라덴에 투사하여 은연중에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를 동급으로 매도하는걸 보면 메타포아를 통한 상징조작의 프로냄새도 나고.... 디테일 숫자와 사전적 개념에 발 묶여
    핵심을 못 보는걸 보면 중, 고딩인가 싶기도하구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건 본말전도와 양비론을 통한 본질 왜곡이지요. 가릴 수 없는 일본의 과오는 인정하지만 일본의 과오중에 발생한 한국의 과오도 인정하고 역사미화나 한국 교과서 왜곡을 중단하라는...

    테러는 테러일 뿐이라는 단선적 접근하다가
    평시와 전시에따른 테러의 개념을 도입했다가
    느닷없이 침략전쟁을 테러로 생각할 수 도
    있으니 한국도 테러 했다고 인정하라는
    엿 바꿔먹기 네고를 시도하더니
    임시정부의 합법성,
    선전포고 싯점,
    본인들도 지키지 않았던 전시 국제법까지 동원하여 "윤봉길과 김구는 테러리스트고 한국은
    역사와 교과서를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다"?

    본질과 팩트로 바로 갈께요
    저는 역사의 흐름은 관심이 많지만 숫자 외우는
    재주가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제 침탈하여, 주권과 국토와 외교권을 빼앗고, 농.공.수산.광업 자원 수탈하고, 말과 글과 이름까지 빼앗고, 기미년엔 양민을
    대량학살 할때, 일본인은 평시라고 생각 하나요?

    우리는 전쟁 중 이었지요. 중국땅과 전국 팔도에서 민초들과 독립군들은 패악의 무리들과 광복전쟁을 했어요. 그게 임시정부 수립전이었으면
    대한제국의 군인, 전투원으로서, 수립후라면
    대한민국의 광복군으로서...

    일본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 못히더라구요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경험 했잖아요

    일본은 그 오랜 전쟁시기를 겪으면서 적장만
    죽이거나 사로잡거나 할복하면 전쟁 끝났다고
    생각 하잖아요? 전쟁은 군인만 하지요?

    근데 우리는 침략을 받으면 왕이 도망가도, 아니면 종묘사직 계승을 위해 피신 시키고, 백성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원으로 변해요. 심지어는 살생을
    금하는 스님들도 적의 뇌수에 창을 꼽지요.
    행주산성에서 연약한 아낙네들도 전투에 나선거
    아시지요. 쟌 다르크는 우리나라에선 껌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윤봉길의사를 독립전쟁을
    수행한, 혈혈단신으로 수많은 적군들 속에서
    죽음이 정해진 폭탄투척이라는 의거를 수행한
    장부의 기개를 지닌 의사, 열사라고 부르지요.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요
    하지만 부당한 폭력에 목숨걸고 물리력으로
    맞서는 전사로 변하셨어요. 안의사님의
    모친께서도 천주교도 였지만 장부의 죽음이라며
    살생을 범한 아드님을 자랑스러워 하셨지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해한 안두희를 평범한
    버스기사 출신인 조xx님이 수년간 추적하여
    정의봉이라 명한 몽둥이로 패 죽인 사건
    아시지요? 아참 그 조선생님도 천주교
    신자이신데 의거를 끝내고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하며 살생의 죄에대한 용서를
    구하고 자수했어요...

    이제 아시겠지요?
    침략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케케묵은 테러라는
    개념에대한 집착을 버리시고 현재의 석학들
    책도 좀 보시고,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왜 일본이 왕따가 되고,
    백악관에서 일본 극우 언론에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지 생각도 좀 해보시고,
    한국, 미국과도 정상회담을 수용한 파격적인
    김정은 위원장이 왜 일본 만큼은 가시 돋친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말씀드릴점은 전 반일, 혐일주의자가
    아니라 평화와 합리성을 사랑하지만
    진실을 왜곡하거나 파시즘, 나찌즘, 군국주의 같은
    극단주의에 찌든 인간들을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 kimduhan 2018.05.07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의 한국 통치는,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과 수준이 다릅니다.
      일본의 한국 통치는 무력에 의한 침략이 아니고, 한국의 매국놈이, 자신에게서 나라를 매도한 결과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전쟁을 한 적은 없다.
      진정인 지식인인 촘스키가 말하게, 서양의 식민지와도 다르고, 일본은 조선에 근대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나쁘지 않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일본에 통치되어, 그 결과 근대화한 것은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통치 내용이라도, 어떤 민족을 다른 민족이 통치한다고 하는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나는 조선·한국에 대한 사죄의 기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 kimduhan 2018.05.07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사해 보면, 윤봉길에게 테러를 실행시켜서 자신은 비겁하게 뒤에 숨고 있었던 김구는, 정말로 최악인 범죄자이네요.
      전혀 순진한 일본인보따리장수를, 식당에서 상을 차리는 일의 순번으로 분노하고 있어서 살해.
      그 후 중국에서도 독립 운동가를 4명도 죽이고 있다. 정말로 테러리스트의 수괴다.
      김구는 일본 제국 주의와 싸운 것이 아니고, 한국 독립 운동에 대하여 테러 한 것이네요.

  7. kimduhan 2018.05.07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이봉창 의거에 대한 기술에서, “1년 전부터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하도 운동계가 침체되어 있으니 군사 공작을 못한다면 테러 공작이라도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게 되었다.“라고 기술했다.

    또한 ‘백범일지 하권을 쓰고서’라는 맺음말에서도 아래와 같이 테러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그리하여 침체된 국면을 벗어날 목적으로 미주, 하와이 동포들에게 편지하여 금전의 후원을 빌며, 한편으로는 철혈남아들을 물색하여 테러(암살, 파괴) 운동을 계획하던 때에 상권 기술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곧 동경 사건과 홍구폭탄사건 등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본인이 스스로 일본 요인을 암살하려 시도했던 이강훈 또한 스스로 그러한 암살 행위를 ‘테러’라 규정하였다. 이강훈은 암살 시도로 인하여 옥고를 치루었으며, 해방 후 민단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인의 유골을 국내로 모셔와 안장하였으며, 광복회 고문과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강훈은 1986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죽음을 걸고 하는 테러는 단 한 번 하는 거지요. 나는 비록 실패하고 징역만 살았지만, 테러란 사실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있어서 그것은 최고의 휴매니티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를 죽이는 데는 그 길 밖에 없었으니까요.”
    http://ppss.kr/archives/17860

  8. kimduhan 2018.05.07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당한 폭력’은 정당한가

    이완용 테러를 막다가 죽은 인력거꾼 박원문과 윤봉길의 홍커우 의거에서 무고하게 죽은 일본인들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7/04/021109000200704120655080.html

  9. 한심한kimduhan1 2018.05.07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꾸라지 일본놈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며 대한민국 안에서 백주대낮에 지들 혼네(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은 단지 저런 정신병자가 이곳에서 떠든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고 한 두 놈 들이 아닌 저변에 깔린 저들 쪽바리들의 본심일 것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려고 갖은 짓을 다하는 아베 한 놈이 아닌 일본놈들 상당수가 지들의 기나긴 침략 역사를 언젠가는 완수하리라는 무의식적 DNA가 바로 옆 나라,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뒷통수를 칠 것을 항상 경계토록 해야 할것이다.
    백강전투 때부터 왜구의 준동, 임란, 근대 식민지 침략.. 계속되어온 쪽바리들의 야욕..
    이 진실을 호도하는 kimduhan 한 놈 쪽바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 kimduhan 2018.05.07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정부도, 일본 국민도, 전쟁따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은 세계를 상대에게 전쟁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내아이의 꿈으로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은 총력전을 하고, 망국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전쟁에 대한 기피감이 강한 것이 일본입니다.
      거기에, 19세기에서 20세기 초두와 다르고, 21세기의 현재, 침략해서 타국을 침략해서 점령하고, 어떠한 이익이 있습니까?
      곧 세계에서 제재되어, 경제 봉쇄되어, 미군이나 중국군, 러시아군에 의해 징벌되어요.
      초등학생이라도 생각하면 곧 아는 것입니다.

    • 한심한kimduhan1 2018.05.07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가 여기서 배설하고 있는 말같지 않은 소리에 한국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경계심을 늦출 수 없거 되는 것을 아느냐? 때린 놈이 앞으로 안때리겠다고 믿어 달라고 했으니, 맞은 사람은 네~~ 안때리실 것으로 알겠습니다..라고 생각하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넌 여기서 네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애국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야말로 이 한민족에게 새겨있는 니들이 저지른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며 후벼파는 테러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썩 꺼지지 못할까~~~~

    • kimduhan 2018.05.07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피해 망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
      BBC의 조사를 보아도, 일본은 세계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국가의 상위 단골 손님입니다.
      일본이 세계 평화스럽게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외에 있다고 한다면, 예를 내 주세요)
      세계적 입장부터, 일본을 보아 주세요.

  10. kimduhan 2018.05.07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 운동가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군을 죽이려고, 중국 건국 절축하회장에서 폭탄투척하고, 거기에 있었던 민간인도 같이 죽였다. 이런 사건은, 테러입니까? 의거입니까?

  11. 본질을 보자 2018.05.07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안 청소하고 쓰레기 비우는 동안 글 많이 올리셨네요... 논점도 몇개 더 생겼지만 결론은 같구요.

    박노자 교수 글이나, 촘스키의 글이나, 백범일지나
    저도 잘 모르는 이름들도 보이고... 불완전하지만
    외국인 치고는 한국어 구사도 좋고,,, 이런걸 보면
    김두한씨는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진 재한 일본인
    이거나, 한국학이나 한국사를 전공한 일본 사람으로 보입니다만, 역사적 진실에 대한 탐구 방향성이나, 상황인식에는 많은 모순점이 보이네요.
    특히,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입장을 강변하면서
    일본도 잘못 했지만 한국도 잘못 했다는 그 기조는
    지성인의 탈을 쓴 전형적인 일본 극우주의 독서광
    정도로 보이네요.

    일단, 세계적 관점이나, 평화 위협, BBC 등을
    얘기해 볼까요.

    • kimduhan 2018.05.07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하의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 운동가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군을 죽이려고, 중국 건국 절축하회장에서 폭탄투척하고, 거기에 있었던 민간인도 같이 죽였다. 이런 사건은, 테러입니까? 의거입니까?

    • kimduhan 2018.05.07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를 「극우」라고 부르고 있지만, 일본인에게서 보면 한국인은 전원이 「극우」이에요. 적어도 누구라도 일본인보다 민족중심주의에 해쳐지고 있다. 일본에는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한국에는 없다. 위안부 문제로, 한국 국내의 상식이외를 쓴 대학교수의 책은 검열되어, 기소당한다. 일본은 그런 사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극우라면, 「일본은 전혀 나쁜 것은 없다」라든가 「한국인은 해충과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말살해라」라고 하는 사람은 무엇이지요?
      극우라면, 조금이라도 일본의 부 측면을 주장하거나, 사죄하거나, 반성하거나 하지 않는데요. 당신은 일본의 극우가, 나와 같이 「일본이 한 것은 나빴다. 반성한다」라고 한다고에서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일본의 중간층입니다. 우익은 「일본은 좋은 것도 했다」라고 하는 사람. 극우는 「일본은 좋은 것밖에 하지 않고 있다」라고 하는 사람. 중간층은 「일본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을 했다」라고 하는 사람. 좌익은 「일본이 한 것은 모두 죄악」이라고 하는 사람. 극좌는 「일본은 세계최악의 나라이기 때문에 파괴해야 하다」라고 하는 사람.

  12. 본질을 보자 2018.05.0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촘스키의 표현대로 일본은 식민지 경영이라는
    서구의 반 인륜적 흐름의 제물이 되는걸 피할 수
    있었지요. 사카모토 료마라는 비극적 선각자,
    존왕양이의 명분으로 시작된 메이지 유신,
    영국으로 파견한 일본식 신사유람단,( 안중근
    의사의 제물이된 이토히로부미도 그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압니다.) 등등의 요인으로
    영국식 문물을 많이 도입했지요.

    입헌군주제나, 양원제나, 귀족서품/호칭, 심지어 복식이나 영연방 국가들 만 쓰는 오른쪽 운전...

    그래서 그당시 세계 최강 영국은 일본을 상당히
    기특(?)하게 생각했고 일본 또한 영국을 숭상
    했지요. 지금은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더구나 섬나라 문회의 특성상, 공통점도 많았고
    무사가 ( 사무라이, 나이츠) 통치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다보니 특유의 이중적 성격, 무사들의 칼날로부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발달한 위장된
    친절, 예의, 질서 까지 닮아있지요. 일본과
    영국은 사무라이 정신, 기사도 라고 칭하지만
    서민들은 폭압적 지배자로부터의 생명부지
    문화 였지요. 모르는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기분 나쁘게 하면 바로 칼 맞으니까요...

    현시대에도 엽기적인 사건들이 유독 두 나라에서
    많이나는 것은 이런 억압이 강제된 문화의 탓이지요. 영국이 이미지와 달리 인구당 강간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중 하나이고, 관음증의 시조인
    피핑톰 문화가 일본에서는 AV형태로 나타나지요.
    축구장과 야구장이 해방구가되는 문화까지...

    짧게하지요...사실 일본과 영국 비교는 아주 시사점이 많지만...

    일본의 선각자들의 혜안과 영국의 비호아래
    서구 열강의 침략을 면할 수 있었고 동양
    역사상 최초로 한국보다 앞선 문물을 접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아시아 국가로는
    드물게 서구와 교역을 시작했기에 지금도
    유럽및 서구에서는 일본의 인지도가 높지요.

    그래서 BBC는 아시아 국가중 조차지 일때의
    홍콩과, 자신들의 아류인 일본에 호의적이지요.

    하지만 여기까지 뿐 입니다

  13. 본질을 보자 2018.05.07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일본을 세계평화의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북한 포함)이외에도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있습니다. 물론 구시대의
    총칼을 동원한 무력의 모습을 띄기는 힘들겠지요.

    서구국가들이나 미국의 국민들은 사실 홍콩, 일본외에 아시아국가에 별 관심이 없었지요 . 중국의
    거대한 부상 이전에는요.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의
    근 현대사에도 관심이 없다가, 군국주의 일본군의
    성노예 사건이 많은 서구의 지성인들의 관심을
    촉발 했고 일본의 실망스러운 대응방식에
    기존의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고 일본정부는
    그것을 비합리적으로 막으면서 부작용을 더
    키우는 악 순환을 거듭하고 있지요. 또한
    종전 후의 역사왜곡과 적정한 사과 거부로
    같은 전범국가였던 독일의 총리 로부터
    힐난까지 받는등 명성은 금이가고
    경제적 영향력 또한 줄어들고 있지요.

    아시아인 들에게는 일본에서 독버섯 처럼 자라고있는 군국주의의에 대한 향수, 극우주의자들의 득세,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 경제적 영향력으로
    주변국들의 안보이익 침해 행태등이 욱일승천기를 휘두르며 덴노 반자이를 외치던 악마의 군단을
    떠올리는 거지요. 최근에 필리핀의 성노예 추모상을 경제지원 협정을 무기로 철거케 만든 것은
    과연 일본의 지도자들은 정상적인 인간들인지
    매우 의심스러운 질문을 온 세계에 던지고 있지요

    평창 동계올림픽에 위안부 문제로 참여 한다 안한다, 양국의 경제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체결
    되었고 별문제 없으면 자동연장하는 통화스왑건도, 별 생트집 잡으면서 한다, 안한다 ?

    전세계의 초미의 관심거리인 남북한 정상들
    공식만찬 메뉴에 시비를 걸지 않나, 트럼프
    대통령 방한시 국빈 만천에 독도새우를
    올린 이유가 무엇이냐고 시비를 거는
    이런 일본이 평화 위협국이 아니고 무얼까요?

    • kimduhan 2018.05.07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독립 운동가의 질문은, 회답 회피입니까?

      동남아시아제국이 일본을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근거를 내 주세요. BBC의 조사라도, 어떤 조사라도, 동남아시아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친일적인 지역입니다.

      근거를 제시해 주세요. 어느 여론 조사입니까?

    • kimduhan 2018.05.07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의 조사 기관(퓨 리서치센터)이, 2015년에 아시아태평양제국 (10개국)에서 간 조사 결과입니다.
      http://www.pewglobal.org/2015/09/02/how-asia-pacific-publics-see-each-other-and-their-national-leaders/asia-heat-map/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Pew)리서치센터가 4월 6일부터 5월 27일까지 아시아 태평양지역 10개 국가(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파키스탄, 한국, 중국) 국민 1만5,313명을 대상으로 주변국에 대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중략)
      조사대상 국가들 중 전체적으로 가장 호감도가 높은 국가는 일본(71%)으로 집계됐으며, 그 뒤를 중국(57%), 인도(51%), 한국(47%) 등이 뒤를 이었다.
      http://www.hankookilbo.com/v/9762b50052b34b818e2da8a2e2e1ee30

    • 한심한kimduhan1 2018.05.07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질을보자님//
      이제 그만 하세요. 그만하면 됐습니다.
      저 자가 지난 몇 달 동안 실체를 숨기고 한국의 깨어있는 양심적인 사람인척 하면서 왜놈들의 역사에 대해 찬양하는 논조를 은근 슬쩍 비추기만 하여, 이번 팟캐스트 기사에선 제대로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려고 댓글을 걸었더니 덥썩덥썩 물고선 다행이 이번에는 극우쪽바리 임을 여실히 드러내 줬네요.
      저 김두한이라는 자의 논조거리도 안되는 말싸움에 시간 낭비 더는 그만하시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 인간이 여기에 싸질러 놓은 댓글을 보고 일부 일본인들이겠지만 그들이 드러내지 않고 뒤에 숨겨논 본심을 알게되는 좋은 계기와 표본이 될 것으로 봅니다.
      앞에선 선한척 웃으며 예의바른 척하지만, 그 뒤엔 서슬퍼런 비수를 꽂고 상대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휘두를 수 있다 판단될 때까지 자신의 자세를 끝까지 낮추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본질을보자님의 사려 깊고 고매한 지성으로 써주신 글 아주 잘 보았습니다.

  14. 본질을 보자 2018.05.07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타자 속도가 한국인인 저보다 빠르군요
    글 쓰는 사이에 질문과 항변이 있었네요...

    답변 다하려면 밤 새워야 겠네요.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니 오늘은 조금만 더하고
    나머지는 주중에 시간 나는대로 답하지요
    촘스키의 글이나 백범일지 관련한 내용은
    답할 내용이 많네요.

    일단 신장 위구르 독립 운동가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의 예는, 저는 테러에 가깝다는 견해구요
    촘스키는 그의 행적을 비추어보면 폭력을 비판
    하더라도 좀 더 독립운동가에 우호적인 판단을
    할거 같네요.

    하지만 이 예는 윤봉길 의사의 건과 상황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본질이 다르네요

    • kimduhan 2018.05.07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 운동가의 경우는 테러로, 조선인 독립 운동가의 경우는 테러가 아니다. 그 판단을 이끌기 시작하는 배경을 설명해 주세요.
      아시는 바와 같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티벳에서도 좋습니다만,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에 침략되어, 강제 병합되어, 독립 운동을 하면 체포되는 장소에요. 언론의 자유는 일절 없다. 조금이라도 「독립」이라고 말하면 사형입니다.
      아직 일본 통치 시대의 조선 쪽이 적어도 법률을 운용하는 노력은 했습니다. (탄압은 탄압으로, 긍정할 작정은 없습니다)
      병합 시대의 조선과, 위구르, 티벳이 다른 점은 어디입니까?

  15. 본질을 보자 2018.05.08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그만하시라는 충고를 보고 오늘 오갔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충고가 맞는거 같군요.

    깅두한씨의 정체는 빈 라덴을 끌어들이며
    조롱할 때 드러났고,
    편협한 숫자 놀음, 십몇년 동안 이루어진 통계
    수 천가지 중 하나를 들고나오고,
    촘스키의 철학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인용문은 따오는 걸 보면 구글링에 능한 편집증...

    시빗거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수준의
    포악함도 보이네요.

    제 잘못이네요.

    외국인 치고 한국어 잘하기에 기본적인 지성을
    갖춘 사람인줄 알았더니, 그냥 훈도시찬
    키보드위의 퍼핏 이었군요.

    아마 선하고 합리적인 명상을 하다보면 제 글의
    뜻을 알겁니다. 아니면 미시마 유키오 같은
    괴물이 되시든지..





    • kimduhan 2018.05.08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인은,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단지 상대를 매도 하는 것만으로 전혀 토론이 되지 않습니다.
      토론에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한국인은 감정만.
      반론할 수 없게 되면, 인격부정을 외쳐서 철퇴.

  16. 신조협 2018.05.08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분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애국지사가 많이 있었기에 또 그런 민족이기에 나라가 이렇게 유지된것이라 생각합니다.

  17. 아리랑 2018.05.08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구선생님,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 김좌진장군, 홍범도장군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한 몸 희생함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들.
    수 십 세기 동안 외적의 침탈에 맞서 꿋꿋하게 이 땅을 지켜온 진정한 애국자들 덕분에 간악한 일제로 부터도 벗어나 지금의 영광스런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한반도 안에는 일제 잔재가 득세하고 일본에 아부하여 사익만을 꾀하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이들을 교묘히 꼭둑각시질 하여 제 2, 제 3의 일제를 만들려는 간악한 왜구들이 물밑에서 기회를 옅보고 있습니다.
    일본을 너무 멀리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라도 우리 등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그들이기에 경계심 정도는 늦춰선 안되겠습니다.
    제 2, 제3의 일제침략은 경제 예속화 및 정치, 역사 장학생 등을 지속적으로 배출토록 뒷돈을 대주는 그들 야욕의 변형된 다른 수법이기도 합니다.
    윗 댓글들을 써댄 kimduhan 이라는 일본인이 바로 그런 양의 탈을 쓴 또 다른 모습의 일본제국이기도 한 것 입니다.

    • kimduhan 2018.05.08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에게서 보면, 조금 위험정도의 정신상태이네요 …. 참억새를 보아도 유령으로 보인다고 할 것인가?

    • 아리랑 2018.05.08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그야..으른 야그 할 땐 찌그러져 있으라잉~

  18. 선각자들 덕분에 2018.05.09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이나 각종 독립운동자료에 윤봉길 의사에 대해 많이 기술되어 있으나 다시 한 번 매헌 선생님의 고귀한 애국심에 숙연해지며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목숨 바치는걸 아까워 하지 않으셨던 순국선열들께 뜨거운 감사를 올립니다.

    • kimduhan 2018.05.09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을 칭찬한다. 정말로 무서운 발상입니다.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국가 주의.

  19. 아리랑 2018.05.13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imduhan아 국가가 영토의 구획을 규정한 물리적 구분으로만 아는가 본데, 너희 니뽕인들이 죽었다 깨도 알지 못하는 국가관이 우리 한민족에겐 있단다.
    나, 가족, 우리, 민족, 나라, 영토.. 등
    이런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 이게 한민족의 국가라는 것이다. 너희처럼 다이묘에게만 충성하는 것 밖에 배우질 못한 왜구들은 국가를 위해 죽는다는게 진주만에서 죽은 미친 카미카제 같은 방법 뿐이겠지.

    • kimduhan 2018.05.13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환상으로, 그런 것을 위해서 죽을 가치는 없습니다.
      적어도 21세기, 당당한 독립국의 한국에는 어울리지 않은 가치관이다.

    • 아리랑 2018.05.14 0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kimduhan 상.. 당신이 뭔데 남의 이상과 가치관까지 제어하려하고 옳고 그름을 간섭 하는가?
      네 말만 맞는게 아니고 남들의 생각도 틀린게 아님을 깨달으시오.
      편협한 日本人

    • kimduhan 2018.05.14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군국주의시대의 일본은,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을 칭찬했다. 21세기, 민주국가의 한국은, 지금도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을 미화하고 있다. 시대 착오라고 생각한다.

    • 아리랑 2018.05.15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희 니뽕이라는 나라의 시대착오는 뭔줄 아는가? 너같은 편협, 왜곡, 아집, 질시, 반목하는 니뽕인을 지금도 꾸준히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너희네가 그렇게도 힘들게하고 못살게 굴었던 남의 나라에서 왜 이런 짓을 하는것이냐

    • kimduhan 2018.05.15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간인희생이 없는 한국의 독립 운동에 대하여 나는 관대합니다. 한국의 역사나 독립 운동에 대하여 당연합니다만 질투는 없습니다. 동정은 있습니다.

  20. 빗자루 2018.12.04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운동은 kimduhan상이 멋대로 동정할 대상이 아닙니다. 민간인 희생은, 그나라 신사참배 대상들에게 적용하기를 권합니다.

    • kimduhan 2018.12.04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립 운동에 대해서 동정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비참한 역사에 대해서 동정하고 있습니다.

    • 빗자루 2019.08.19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kimduhan상의 댓글로 보아 동정보다는 위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21. tonarvik 2019.02.20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에 읽어도 읽어도 항상 새로운 감동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분의 의연함과 정의로움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 분의 뜻을 이어받기엔 너무 나약한 우리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가나자와 노다에 있는 의사님 암매장지에 꽃을 헌화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또 찾아오리라 다짐했습니다.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그 기억을 전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