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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七)'자 기와에 '묻지마' 사적지정…'1500년 국제화약고였으니까'' 겨우 ‘칠(七)’라고 찍힌 명문 기와 조각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2002년 1월) 산성이 있습니다. 경기 파주 적성 중성산(해발 148m)에 조성된 칠중성입니다. 변변한 발굴조사 한번 없었습니다. 1982~2022년 사이 6차례에 걸쳐 지표 및 정밀지표조사를 벌이는데 그쳤습니다. 다만 2000년 정밀지표조사 때 성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 중 ‘칠(七)’명 기와조각이 나온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데 문화재위원회는 “더이상 볼 것도 없다. 향후 발굴조사 할 필요도 없다. 곧바로 사적으로 지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칠’자 명문 기와조각 1점 나왔다고 ‘묻지마 사적 지정’을 했다는 얘기인가요. 경솔한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발굴조사’..
왜군이 도굴·훼손한 조선왕릉…‘이릉의 치욕, 결코 잊지마라' 최근 조선왕릉과 관련해서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40기의 왕릉 중에서 유일한 비공개릉이던 서삼릉의 효릉을 9월8일부터 일반에 개방한다는 겁니다. 효릉은 조선의 12대 왕인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과 부인(인성왕후 박씨·1514~1578)의 무덤인데요. 비공개의 이유가 있습니다. 서삼릉의 다른 왕릉과 달리 효릉에 들어가려면 국내 농가에 젖소 종자를 공급하는 젖소개량사업소를 거쳐야 했거든요. 그래서 방역 문제가 걸려있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곤란했답니다. 이번에 젖소개량사업소를 거치지 않는 관람로를 따로 마련해서 그 문제를 해결한거고요. ■정치적으로 조성된 서삼릉 서삼릉은 인종 부부의 ‘효릉’ 외에도 인종 친어머니 장경왕후(1..
빛 비췄더니 ‘염촉=이차돈의 본명' 보였다…순교비서 79자 새로 읽었다 “79자를 새로 판독하고, 64자를 고쳐 읽었습니다.” 8월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차돈순교비’를 주제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판독문이 발표됐다. 817~818년(헌덕왕 10) 조성한 ‘이차돈 순교비’의 비문을 ‘RTI 촬영(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으로 읽어낸 결과물이었다. ‘RTI’는 360도 각도에서 빛을 쏘아 글자가 가장 잘 보이는 순간을 읽어내는 첨단 기법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관에 상설전시 중인 ‘이차돈 순교비’는 일반인 눈썰미로는 10자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멸된 명문 비석이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서 첨단기법으로 79자나 새롭게 구별·판독해내고, 그동안 형태를 잘못 표기했거나(오기·誤記) 다른 글자로 잘못 읽은(오독·誤讀)..
'와르르 멸망한 발해'…"백두산 화산폭발이 방아쇠 당겼다" “오시(낮 12시쯤) 함경도 부령부와 경성부에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때때로 황적색의 불꽃 연기와 같으면서 비린내가 가득…마치 화로 가운데 있는 듯 뜨거워 견딜 수 없었다. 4경(다음날 새벽 3시 무렵) 후에야 사라졌다.” 1702년 5월20일자가 전한 6일전(14일) 백두산 화산 분화 소식입니다. “아침이 되니 (화산)재가 눈처럼 흩어져 내려 1치(3㎝) 정도 쌓였는데…강변의 여러 고을도 모두 그러했다….” 이 기록을 토대로 ‘1702년 백두산 분화의 강도와 화산재의 규모’를 검토한 논문(윤성효·이정현, ‘백두산 화산의 1702년 강하화산재 기록에 대한 화산학적 해석’, 2011)이 있는데요. 부령부와 경성부는 백두산에서 각각 똑같이 139㎞ 떨어진 곳(부령부는 동쪽, 경성부는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라카와 축! 사망', 상하이 시내에 축포 터졌다"…윤봉길 의거 '그 후'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은 일본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2월 이어진 ‘상하이 사변’에서 중국군을 몰아낸 일본군이 시내를 장악하고 있었죠. 일본군은 승전 기념을 겸해 천장절(일왕 생일) 경축식을 훙커우 공원에서 열고자 했습니다. 행사장에는 일본군 1만여명을 포함, 상하이 거류민까지 모두 3만명의 일본인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일본군 장교를 도륙하겠다 오전 7시45분 어깨에 물통을 메고 도시락을 든채 일반관람객 속에 자리를 잡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24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3일전(26일)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한다”고 선서한 한인애국단원이었습니..
"나라가 망했는데 한사람 쯤은 따라 죽어야지"…경술국치 '순국'의 변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순절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1910년 9월6일이었다. 경술국치(8월26일) 소식이 뒤늦게 매천 황현(1855~1910)이 은거하던 전남 구례에 전해졌다. 이때 동생(황원·1870~1944)은 형(매천)에게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나라가 망했는데, 왜 ‘아무개 공(某公)’ 같이 인망(人望)이 두터운 분이 죽지 않고 있는거냐”고 책망했다. 매천이 씩 웃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남이 죽지 않는다고 뭐라 해서 되겠느냐. 나라가 망한 날에는 사람마다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틀 뒤인 9월9일 새벽 매천은 홀연히 붓을 들어 ‘절명시’ 4편과, 유서(‘순국의 변’) 등을 써내려갔다. ■내가 죽어야할 의리는 없지만… 우선 ‘순국의 변’을 보라.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
'300여 년의 야욕'…일본인들은 조선의 국보 석탑을 통째로 뜯어갔다. 원주-서울(명동)-서울(남창동)-오사카-서울(경복궁)-대전(국립문화재연구원)-원주. 무려 1975㎞를 떠돌다가 ‘112년 만의 귀향’을 이룬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강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인데요. 예전엔 ‘미인박명’ 소리를 들었던 문화유산입니다. 탑이 지극히 아름다워 ‘미인’이라 했습니다.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시대에 활약한 왕사인 지광(해린·984~1070)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한 승탑인데요.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장식 등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죠. 그러나 이 탑은 ‘박명’ 소리도 들었습니다. 일본인에 의해 오사카로 밀반출된 이후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은 물론이고요. 한국전쟁 때는 미군의 폭격으로 무려 1만2000조각으로 박살나는 비운을 맞거든요. 그래서 ..
물체질로 찾아낸 1600년전 월성의 ‘사계’…한쪽에선 ‘사람제사’ 살풍경 25t트럭 100대 분량의 흙을 물체질로 걸러낸 끈기와 집중력의 개가…. 얼마전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월성 해자와 그 주변의 고환경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실감:월성 해자’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경주 신라월성연구센터(숭문대) 전시동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데요. 월성 해자(垓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에 판 물도랑 혹은 연못)에서 출토된 동물 유체는 물론이고요. 작은 씨앗과 미세한 꽃가루 같은 식물자료까지 학제간 연구를 통해 분석해서 당대(5세기)의 환경을 복원해낸 건데요. 복사나무(복숭아나무), 잣나무, 가시연꽃, 밀 등의 식물과 각종 곡식이 자라나는 공간을 배경으로 개, 돼지, 곰이 뛰노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방영하고 있답니다. 그런 영상을 만들어내기까지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