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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라고 얕보지 마라’…나라 위해 목숨 바친 ‘환관 열전’ ‘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왕명을 전달하는 승..
15살 소년왕의 ‘요절’ 미스터리…피살·의문사로 점철된 백제 왕가 ‘무덤 주인공=15세에 죽은 삼근왕(개로왕 손자)’.최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조사·분석 결과를 발표했다.웅진(공주) 백제 시절의 왕과 왕비·왕족이 묻힌 무령왕릉 및 왕릉원 가운데 2호분의 주인공을 ‘콕 찍어’ 특정한 것이다.그 이가 보도자료 제목에 등장하는 ‘삼근왕’이다. 삼근왕은 477년 9월 피살된 아버지(문주왕·475~477)의 뒤를 이어 13살에 즉위했다가, 2년2개월 뒤(479년 11월) 요절한 소년 임금이다. ‘2호분=삼근왕’으로 특정하기 까지의 과정과 이유도 기막히다.웅진 백제 시기(63년)에 즉위한 5명의 국왕 중 이번에 2호분에서 확인된 치아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소년 삼근왕은 물론, 개로왕(큰 아버지)과, 아버지 문주왕, 사촌 동성왕까지 줄줄이 의문사했거나 살..
임은정 지검장은 왜 ‘열사’ 아닌 ‘검사 이준’을 ‘존경하는 선배’라 꼽았을까 “나는 이준 검사의 후배입니다.” 최근 임은정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여러 관련 기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그 가운데 2022년 6월7일 임 검사가 SNS(페이스북)에 게재한 글과 사진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검사가 검찰청 역사관에 마련된 ‘검사 이준의 상(흉상)’ 옆에서 찍은 사진이 첫번째요, 임검사가 “이준 검사의 후배로서 저도 이준 검사의 흉내를 낼 것” 이라고 다짐한 것이 두번째였다. ‘평리원 검사 이준의 고소사건에 관한 건’ 보고서.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이준 열사는 검사 시절 자신이 올린 사면대상 명단을 법부 관리가 멋대로 바꿔치기 한 것에 격분, 그들을 상대로 치열한 법정투쟁을 벌였다. 이준이 올렸다가 삭제된 사면명단에는 을사늑약에 반대한 우국지사도 ..
사랑의 묘약? 미의 표현?…15세 신라여인은 왜 ‘비단벌레 금동관’ 썼나 “이건 비단벌레 날개 아닌가.” 지난해(2024년) 12월이었다. 경주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정리하던 중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관의 뒷면에 장식되어 있던 비단벌레 날개였다. 올해(2025년) 2~3월 본격적인 보존처리 결과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이 금동관은 4단의 출(出)자 모양 세움장식 3개,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 관테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움장식과 관테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그렇게 금동관 곳곳에 뚫어놓은 구멍을 영롱한 빛깔의 비단벌레 날개로 메워 장식한 것이다. 이 비단벌레 날개 장식은 모두 13곳에서 15장이 수착(흡착과 흡수가 동시에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날개장식은 대부분 검게 변했지만 원래의 빛깔이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경주 황..
아궁이에 걸린 밥 솥…한강변 고구려군은 속절없이 전멸됐다 1977년 7월이었다. 해발 53m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던 서울 구의동 유적의 발굴 현장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이 발굴은 학술조사가 아니었다. 강 건너는 잠실지구, 강 이쪽은 화양지구 개발이 이뤄지면서 한강 본·지류를 정비하고, 택지 등을 조성하기 위한 실시된 구제발굴이었다. 약 3000평에 이르는 구릉은 벌써 절해고도로 변해 있었다. 주변은 개발 계획에 따라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이 구릉을 깎아내야 거기서 얻은 흙을 택지개발에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평지로 변한 이 주변 또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할 수 있었다.하지만 예부터 ‘말무덤’ ‘장군총’ 등으로 구전되었던 구릉을 그냥 뭉갤 수는 없는 일이었다.1977년 발굴된 서울 구의동 보루에서는 온돌 아궁이 속에 솥과 주전자가 걸려있는 그대로 ..
‘7000명이 쌓고, 1만4140명이 고쳤다’…신라 왕실의 ‘저수지’ 프로젝트 해방 직후인 1946년 어느 날이었다. 대구사범대에 재직 중이던 금석학자 임창순(1914~1999)이 길을 걷다가 대구 대안동의 어느 집(서태균의 집) 앞에 놓인 둥근 형태의 비석을 발견했다. 임창순 선생은 단박에 ‘명문 신라 고비’로 판단했다.집주인(서태균)에게 물으니 “매입한 적산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을 수리하다가 부엌 부근에서 발견한 비석”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경북 영천의 청제(저수지) 제방을 쌓고(536) 수리(798)하는데 7000명(축조)~1만4140명(수리)이 동원되었음을 알려주는 명문비석. 1968년 학계에 보고되었다.|국가유산청 제공이 비석의 원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후속 연구(하일식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비석이 발견된 대안동 서태균의 집이 조선시대 경상 감영에 속해있었다. 따..
과학으로 증명한 ‘639년의 낙뢰’, 그 순간…무왕의 익산 천도 3번째 퍼즐 맞췄다 ‘이것이 꼭 1386년 전인 639년 떨어진 벼락(낙뢰)의 흔적이다.’ 얼마전 (2025년 3월호)에 따끈따끈한 논문이 실렸다.전북 익산 제석사터에서 두 동강으로 방치되었던(지금은 붙여놓음) 목탑의 심초석을 자력 탐사로 분석한 논문(오현덕·한광휘의 ‘자력탐사를 통한 익산 제석사 목탑에 내리친 낙뢰(벼락)의 과학적 고찰’)이었다. 커다란 심초석이 두 동강 난 이유로는 ‘벼락 때문’으로 짐작되었다.(후술) 따라서 이번 자력탐사는 ‘벼락을 맞은’ 직접증거를 찾기 위함이었다.벼락 맞은 목탑의 흔적문헌(에 639년 벼락을 맞아 소실·붕괴된 것으로 기록된 익산 제석사 목탑터에 대한 자력탐사 결과 실제로 강력한 전류의 흐름이 번개문양으로 측정되었다. 문헌자료가 사실임이 입증된 셈이다.|오현덕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학..
수장고에 꽁꽁 숨긴 ‘천마총 인물화’…‘깔끔쟁이’ 신라인의 화장실 88곳 경주 천마총(6세기초 조성) 하면 어떤 유물이 떠오를까. 1973년 조사된 이 왕릉급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1만1500여점 중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해방 후 우리손으로 처음 발굴된 ‘금관’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러나 금관보다 더 센 유물이 출현했으니, 그것이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천마도’)였다.워낙 강한 ‘원투펀치’ 때문에 다른 유물은 상대적으로 묻혔다.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고리 모양의 채화판.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서는 듯한 1500년전 신라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천마도와 금관 등에 가린데다 공기 중 훼손에 취약한 자작나무 재질이어서 지금까지 수장고에 보관되었다.|국립경주박물관 제공■원투펀치에 밀렸지만…그 중 천마도 말다래와, 그 밑에 차곡차곡 쌓은 말갖춤새까지 걷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