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영국 대중지 ‘더선’이 6월28일 독일이 한국에 0-2로 져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한 소식을 전하며 대문짝만하게 달아놓은 제목이다.
그러면서 “이 독일어 명사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뜻”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였다. 신문의 스포츠면은 독일이 최하위(1무2패)로 탈락한 F조 승패표와 가위를 표시해놓고는 짓궂은 설명을 붙였다.
“이 표를 잘라 보관하세요, 기분이 우울할 때 이 승패표를 보면 웃음이 나올 겁니다.”
신문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독일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보비 찰튼, 스튜어트 피어스, 크리스 워들, 테리 베나블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프랭크 램파드, 그리고 잉글랜드 축구팬 모두에게 이 승패표를 드린다”고 했다.
‘더선’ 뿐이 아니다. ‘최악의 독일대표팀, 안녕(Auf wiedersehen)’(미러), ‘예상보다 빨리 휴가를 즐기게된 독일팬들을 위해 선베드(일광욕용 침대)에 타올을 갖다놔라’(데일리메일) ‘종말이 올 때는 뭔가 징조가 보이는데, 독일은 백주 대낮에 80년만의 탈락을 경험했다’(가디언)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영국팬들이 오랜 앙숙관계인 독일이 한국에 패해 탈락한 ‘꼴’을 고소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더선’의 제목이 지나친 ‘국뽕’이어서 좀더 솔직하고 선정적이었을 뿐이다.
1960~80년대 외국에서 벌어지는 한국경기의 중계는 ‘국뽕’의 전설이었다. 라디오 캐스터와 해설가의 중계를 들으면 언제가 한국의 필승이 유력시됐다.
골대를 훨씬 벗어나는 슛인데도 ‘살짝 빗나가는 슛’이라 하고, 상대의 슛이 아슬아슬 빗나가면 ‘어림없는 슛’이라 했다. 그러다 패하면 ‘심판 판정 때문에 졌다’고 책임을 돌렸다. 중국 원정경기에서 중국인들이 빨간 오성홍기를 흔들며 ‘짜여(加油)!’를 외치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외쳤던 아나운서의 멘트가 기억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을 빚은 스위스의 골을 두고 “온사이드가 맞다”고 말한 해설자가 퇴출됐다. 당시의 정서는 ‘그래 너 잘났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대중지 ‘더선’의 표지.
사실 스포츠 해설자나 캐스터는 쉽지않은 직업이다. 전력차가 뻔해서 패배가 불문가지인데도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야 한다. 게다가 축구의 경우 90분 동안 떠들다가 잘못 내뱉은 말이 설화를 빚는 경우도 있다.
3일 벌어진 16강 일본-벨기에전서 벨기에의 나세르 샤들리가 역전골을 넣자 KBS 한준희 해설위원이 “(샤들리 욕해서) 너무 잘못했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라 외침으로써 구설에 올랐다.
물론 “숙적 일본을 떨어뜨린 벨기에 선수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랬겠냐”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중계의 ‘짤방’을 잘 들어보면 일단 ‘샤들리 미안하다’는 말까지는 이해가 간다.
한준희 위원이 “샤들리가 투입된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고, “만약 샤들리가 뭔가를 보여주면 제가 즉시 사과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샤들리) 감사합니다!”라 외친 뜻은 무엇일까.
한준희 위원은 “샤들리의 골 덕분에 연장전에 가지않게 되었고 그것이 고마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숙적 일본의 극적인 탈락 순간 본심이 튀어나온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축구팬들의 속마음을 순간 대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공영방송 해설자가 이성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맞다. ‘본능적으로 나왔다’지만 절대 칭찬받아야 할 해설자의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란 무엇인가. 총칼을 들고 직접 전쟁을 할 수 없는 인류가 룰을 만들어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게임이다. 특히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몸과 몸이 부딪치는 축구경기는 내셔널리즘이 가장 극적으로 발현되는 종목이다.
4년만에 벌어지는 월드컵의 한경기 한경기에는 가히 전쟁을 방불케하는 전략과 전술이 동원된다. 그 나라의 농축된 축구역량을 한경기에 모두 쏟아붇는다.
축구의 울타리에서는 다소간 지나친 흥분도, 애국심의 발현도 어느 정도 허용될 수도 있다. 편파해설도 국뽕중계도 그저 축구의 일부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경기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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