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미 7차례의 보안장치를 통과한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수장고를 공개한 17일 오전이었다. 덧신을 신고 철문을 열고 수장고 복도에 들어서자 왠지 약품 냄새가 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박준우 유물관리부장은 “아마도 여러분 집안 공기보다 훨씬 맑을 것”이라면서 “4중으로 공기와 습도를 처리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수장고 하면 왠지 지하 깊숙한 곳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곳은 지상이다. 한강 범람에 대비해서 한강의 수위보다 높여 조성했기 때문이다. 약 140m에 이르는 무장식의 긴 복도 양쪽에 모두 19개의 수장고가 자리잡고 있다.
도자기가 쌓인 ‘3수장고’에 닿았을 때 박 부장은 “언론공개 때문에 풀어놔서 그렇지 여러분은 이미 7차례 보안장치를 통과한 셈”이라면서 “유물을 만나려면 두차례 더, 그러니까 모두 9차례의 철통보안장치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마침내 마지막 문도 열렸다. 반듯한 나무장들 속에 도자 유물이 저마다 고유 번호를 달고 ‘모셔져’ 있다. 유물을 보관하는 가구장은 모두 천연목재다. 바닥은 너도밤나무, 가구의 뼈대는 미송이다. 유물을 넣은 상자는 수분을 흡수 방출하는 특성에다 습도조절에 방충에도 탁월한 재질을 갖고 오동나무로 되어 있다. 유물의 종류와 재질에 따라 다르다. 도자기의 경우 20~24도 사이에서 맞춰야 하고 습도는 50%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온·습도에 가장 민감한 서화 직물 칠기류는 메마르지도, 습하지도 않은 50~60%로 유지된다. 반면 금속유물의 경우 습도는 45% 선에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재의 수축·이완이 반복돼 변형될 수 있다. 당연히 공기 중 부식에 영향을 끼치는 이산화황 때문에 수장고의 공기질 또한 규제된다. 또 유물들은 빛도 차단된다.
물론 수장고 영역은 한강범람은 물론, 지진(진도 7)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됐다. 블랙아웃(대정전)이 되더라도 1개월 정도는 항온·항습이 유지된다. 전쟁 등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의 특별 대책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인간의 종합병원이 있다면 박물관 수장고에도 문화유산의 건강에 관여하는 문화재 종합병원이라 할 수 있는 보존과학팀이다. 문화재의 보존처리와 수리·복원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날 보존과학실에서는 올 12월로 예정된 대고려전에 출품할 고려불상을 검사대 위에 올려놓고 CT(컴퓨터단층)촬영이 한창이었다. 이 장비를 들여오는데 17억원을 들였다.
“기존의 X레이로는 유물의 성분 분석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CT 촬영을 하면 심섬유 미세조직까지 다 분석할 수 있습니다.”
유혜선 보존과학부장은 “마치 수백, 수천년전 이 유물을 만든 장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라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안 때문에, 혹은 유물 훼손 우려 때문에 공개를 극도로 꺼렸던 수장고를 이번에 언론에 내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폐쇄적인 박물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함이다. 이것이 이번에 특별히 방 3칸 40평 규모의 열람실을 공개한 이유이다.
천주현 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미 석사과정 연구자부터 박물관측에 유물 열람을 신청하면 이곳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천 학예관은 “이미 지난해 열람회수가 77회인데, 올해 상반기에만 150회에 달하는 열람횟수를 기록중”이라고 전했다. 최고의 보물창고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은 등록된 것만 41만여점에 이른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생각같아서는 모든 소장유물을 시민 전체에게 공개하고 싶지만 여건상 그럴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연구자들이 예약없이 언제든, 즉석에서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연구자가 박물관 소장유물을 활용해서 논문이나 글을 써서 발표한다면 그 자체가 유용한 간접공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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