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계주에 출전한 한국여자팀은 무난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잔치집이어야 할 팀 분위기가 일순 초상집으로 바뀌었다.
심판이 한국 선수의 임페딩(밀치기) 반칙을 선언함으로써 실격처리한 것이다. 상대인 중국 선수와 외신들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어리둥절한 판정이었다.
한국 선수의 메시지가 심금을 울렸다. “분명 우리가 1등이야. 하늘아 오늘만큼은 너무 밉다. 눈물난다.”
111.12m의 트랙(스피드스케이팅은 400m)을 4~6명이 나서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이는 쇼트트랙에서 신체접촉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각 경기마다 실격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나쁜 손’을 쓰는 선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수들마저 무슨 잘못인지 모를 이유로 실격처리되고, 정당한 승부를 펼쳤으나 다른 선수 때문에 넘어져 좌절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본의아닌 신체접촉으로 상대방을 밀쳐낸 것으로 지목된 ‘가해선수’는 또 얼마나 미안한 심정일까. 그렇다면 쇼트트랙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나쁜 손’을 양산하는 ‘나쁜 스포츠’가 아닌가. 그러나 이 논란 많은 종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은 역시 ‘쿨’한 선수들이다.
이번 여자 500m 결승에서 캐나다 킴 부탱(24)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판정으로 실격당한 최민정 선수(20)는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렸다.
최선수는 ‘(나는 실격했지만) 꿀잼 경기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가던 길을 가겠다’는 정리멘트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날렸다. 최선수는 킴 부탱에게도 “네가 잘못한 것 없어. 지난 일이야. 넌 메달리스트야.”라고 다독거렸다. 강철멘탈로 무장한 최민정은 결국 1500m에서 금메달을, 마음의 부담을 털어낸 킴 부탱은 동메달을 각각 차지했다.
맏언니 김아랑 선수(23)의 처신도 감동, 그 자체다.
그 자신 4위에 머물렀음에도 룸메이트 동생 최민정이 금메달을 확정짓고 눈물을 터뜨리자 맨먼저 달려가 축하해주었다. 뭇 한국인들에게서 SNS 공격을 받은 킴 부탱은 여자 1500m 결승이 끝난 뒤 최민정과 함께 펼쳐진 기자회견장에서 의미심장한 멘트를 전했다.
“일부 한국인의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선수들끼리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쇼트트랙이 재미있는 스포츠니까 즐겼으면 합니다. 다른 요소는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민정과 부탱은 서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쇼트트랙이 존재할 가치가 충분한 ‘꿀잼’ 종목임을 보여주는 이들은 바로 선수들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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