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인(四寅)이라는 칼이 있어… 땅신도 두려워하고 하늘신과는 통해…내 몸을 방어하니 두려울 게 무엇인고….”(<상촌집>)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흠(1566~1628)은 장남(신익성)에게서 사인도(四寅刀)를 선물받고서 ‘어떤 귀신도 나를 범할 수 없다’는 자신감 넘치는 시를 남겼다.
영조 때의 문신 유언호(1730~1796)는 믿기힘든 일화를 자신의 시문집(<연석>)에 기록한다.
즉 유언호의 집에 아무렇게나 방치해서 무뎌진 삼인검이 있었다.
어느날 밤 귀신이 은근슬쩍 찾아와 유언호의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유언호는 무딘 삼인검을 찾아 던졌다. 그런데 삼인검은 귀신의 이마 정확하게 꽂혔다.
귀신은 땅에 엎어져 울부짖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악몽에서 깨어난 유언호가 새삼스레 칼을 갈자 물에 햇빛이 반사되듯 검광이 빛났다.
신흠의 사인도(검)과 유언호의 삼인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2간지 중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맞춰 제작한 칼은 삼인도(三寅刀) 혹은 삼인검이고, 여기에 ‘인시(寅時·새벽 3~5시)’에까지 맞춰 만든 칼이 사인검 혹은 사인도이다.
왜 하필 인(寅)자만 3~4번인가.
양(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해지려는 이 순간에 만들어야 음(陰)한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2년 만에 한번꼴인 사인검(혹은 삼인검)의 제작과정은 자못 성스러웠다.
천년고철을 재료로 36번 불에 달궈야 했고, 글자를 새길 때는 주문을 읊었으며, 개와 닭은 물론 잡인의 출입마저 막았다. 검을 만든 후에는 술과 과일, 흰닭, 향촉을 준비해서 ‘검을 위한) 제사’까지 지냈다.
검의 한편엔 주역의 이치인 ‘건강정(乾降精) 곤원령(坤援靈) 일월상(日月象) 강전형(岡전形) 휘뢰전(휘雷電)’과, 도교의 뜻인 ‘운현좌(運玄座) 추산악(推山惡) 현참정(玄斬貞)’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건강정’은 하늘이 생명을 내린다는 뜻이고, ‘곤원령’은 만물의 영을 돕는다는 뜻이다. ‘일월상’은 해와 달, ‘강전형’은 산과 강이 각각 모양을 갖추고 ‘휘(위)뢰전’은 벼락과 천둥을 몰아친다(혹은 보좌하거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운현좌’는 원신천존(도교가 숭배하는 최고의 신)의 힘을 움직인다는 뜻이고, ‘추(퇴)산악’은 원시천존의 힘으로 악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며, ‘현참정’은 현묘한 도력으로 악을 물리치고 비로소 바름을 굳게 지킨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천지자연의 힘이 검에 깃들어(건강정~휘뢰전) 삿된 악을 베어 쫓아내기를(운현좌~현참정)’는 바란 것이다. 이 글자들을 부적처럼 신비롭게 보이려고 전서체로 새긴 것도 이채롭다.
다른 한편에는 북두칠성을 포함해서 태양이 지나는 황도의 28수 별자리를 상감했다.
세상사를 관장하는 별의 신령한 힘이 사인검에 깃들어 사악한 기운을 막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준장 진급자 56명에게 수여한 ‘삼정검(三精劍)’의 뒷면에 새겨진 글귀가 바로 사인검의 ‘건강정~현참정’이다.
꿈에 그리던 별을 단 장군을 상징하는 칼이니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그러나 ‘사인검’의 뜻을 곡해해서 그저 자신의 일신만을 지키는 칼로 여기지 않을까 적이 걱정된다. 장군 스스로를 현혹시키는 악을 단칼에 베어내는 ‘사인검’의 참된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게다가 육해공 3군이 호국·통일·번영이라는 세가지 정신을 이루라는 뜻에서 삼정검이라 이름붙였고,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 명언까지 새겨놓았다지 않은가.
이것도 모자라 2007년엔 외날(삼정도)이던 칼을 양날(삼정검)로 바꿨다. 장군의 자리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속뜻을 품고 있다. 장군이 된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새겨야 할 것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참고자료>
이성곤, ‘조선시대 사인검 연구’, 국립민속박물관, 2007
조혁상, ‘조선조 인검의 상징성 연구’, <군사> 제62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7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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