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애연가라면 문인 이옥(1760~1815)을 들 수 있다. 담배의 경전이라는 <연경(烟經)>까지 쓸 정도로 끔찍한 애연가였다. <연경>에 이옥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옥이 1795년 송광사 법당 안에서 ‘감히’ 담배를 꼬나물자, 스님이 “부처님 앞에서는 금연”이라며 막아섰다. 그러자 이옥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부처님 앞의 향로 연기도 연기요, 담배 연기도 연기입니다. 사물이 변해서 연기가 되고 연기가 바뀌어 무(無)가 되는 것은 똑같지 않습니까.”
 <인조실록> 등을 보면 담배가 조선에 들어온 때는 1616~1618년쯤 된다. <인암쇄어>가 “담뱃잎 한 근이 말 한 마리 값이었다”고 쓸 만큼 담뱃값은 ‘금값’이었다. 그러나 담배는 단 5년 만에 조선 전역에 퍼졌다. <인조실록>은 “백해무익한 물건임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이 요망한 풀, 즉 요초(妖草)라 했다”고 썼다. 청나라 조정은 담배를 재배하는 자를 참수형으로 다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죽어도 피우겠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금법이 완화됐고, 마침내 삼척동자까지 피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초창기 사람들도 담배의 폐해를 짐작하고 있었다. 조선 최초의 흡연가인 장유(1587~1638)도 “담배는 건조하고 열이 많아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계곡만필>). 그럼에도 중흥군주라는 정조까지 “조선을 흡연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포할 만큼 애연가의 대열에 합류했으니…. 최초의 금연 운동가인 이덕리(1728~?)는 “엄청난 돈이 담배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면서 금연론을 개진했다. 그러자 당대의 흡연가가 이덕리에게 쏘아붙였단다. “(아무리 비싸다해도) 누가 담배를 피우는 통쾌함을 버리겠습니까.”(이덕리의 <기연다(記烟茶)>)
 새해 들어 담뱃값이 2000원이나 인상되자 “이번에는 완전히 끊겠다”는 금연 결심이 속출하고 있단다. 담배 판매대가 휑하고, 전자담배를 찾는 이들도 급증했다고 한다. 10여년 전 500원 올랐을 때와는 다른 결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애연가들이 수백년 동안 이어온 ‘담배 피우는 통쾌함’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작심 평생’이 되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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