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의 ‘막내 요정’ 슈(본명 유수영)가 공연을 마친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감춰두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한 그의 소감은 소박했다. “엄마인 저에게도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슈뿐이 아니었다.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에 참여한 1990년대 가수들은 모처럼의 추억여행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시청률도 예능프로그램에서 마의 시청률이라는 20%를 훌쩍 넘겼다(22.2%)고 한다.
실제 ‘토토가’의 주시청층인 30~40대 가운데는 가수들의 공연에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가수의 ‘리즈’ 시절, 즉 황금기의 음악을 통해 그들 자신의 ‘젊은날의 초상’을 추억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기였다. 발라드와 힙합, 댄스, 록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다. 서태지가 출현했고, 김건모·신승훈이 밀리언셀러의 힘을 보여줬으며, H.O.T 등의 아이돌그룹이 등장했다.
당시 10~20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 사이에서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X세대로 일컬어졌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기존의 획일적인 질서를 거부한다는 이른바 ‘X세대’는 파격적이고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 소통했다.
그랬던 그들이 20년이 지나 스스로 지갑을 열 수 있는 30~40대의 소비층으로 화려한 귀환을 시작한 것이다. ‘토토가’ 이전에도 영화(<건축학개론>)와 드라마(‘응답하라’ 시리즈) 등이 ‘1990년대’를 겨냥한 ‘향수(노스텔지어) 마케팅’을 자극한 바 있다. 그러고보면 ‘1990년대’는 쉬이 가라앉을 트렌드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추억여행이란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면 더더욱 과거만 떠올리는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요즘엔 누구나 스마트폰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토토가’의 공연은 모처럼 가슴 시원한 소통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토토가’가 끝난 뒤 어느 참가자가 일말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것이 좀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꿈이 될까 두려워요.”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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