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 이런 유물 가지고….’ 오는 3월19일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이하 로텐바움 박물관·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재 반환식’ 소식을 접하면 우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텐바움 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까지 나서 반환결정을 내린 유물이 ‘고작’ 조선시대 문인석 1쌍(2기)이기 때문이다.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이 소장중인 조선시대 문인석. 1983년 독일인이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서 구입한 뒤 불법반출한 것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문인석은 고려·조선시기 능묘 앞에 세우던 문관 모습의 석인상이다.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은 “조상의 묘 앞에 석인상을 세우는 이유는 공양해서 바치는 음식에 도깨비나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개념을 정리했다. 지금도 주변의 무덤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석물이며, 일반인의 정원이나 심지어는 음식점의 앞마당에까지 옮겨놓고 있을 정도로 허투루 취급되기 일쑤다.
물론 이번 반환대상인 문인석 1쌍은 16세기 말~17세기 초로 추정되며, 유물상태가 대단히 양호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뻑적지근한 반환행사를 펼칠 정도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법하다. 하지만 김홍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협약(1970년)에 따라 ‘원산지에서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을 끝까지 확인한 노력의 산물”이라면서 “따라서 문화재 자진반환의 모범적인 사례에 해당된다”고 평가했다. 강임산 재단 협력지원팀장이 밝힌 문인석 반환 과정을 더듬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문인석 1쌍은 1983년 헬무트 페퍼라는 독일업자가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서 구입하여 정상적인 통로를 거쳐 독일로 반출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것을 로텐바움 박물관측이 1987년 사들여 소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 3년간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이 박물관이 소장중인 한국문화재 2711점을 전수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수잔느 크뢰델 박물관 수석큐레이터 등이 문인석이 무덤을 수호하는 범상치않은 존재라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 이때부터 로텐바움 박물관측은 문인석의 반입과정을 면밀히 확인했다.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 전경. 박물관측은 조선시대 문인석 1쌍을 반환하면서 “불법반출 문화재의 환수를 규정한 1970년 유네스코 협약정신을 지킨 것”이라 했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그 결과 이 문인석 1쌍이 1983년 이사용 컨테이너에 숨겨져 독일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물관측은 “문인석의 반출과정에 불법성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자발적으로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측에 전달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로텐바움 박물관측은 “불법성이 인정되는만큼 반환절차를 밟을 것이니 한국측이 공식적인 반환요청서를 보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로텐바움 박물관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에 함부르크 주정부와 독일 연방정부까지 화답함으로써 반환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함부르크 주정부는 한국측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문인석 1쌍의 반환이 최종 결정됐다”고 통보해왔다.
바바라 플랑켄슈타이너 박물관장의 소감이 심금을 울렸다.
“이번 반환 사례는 문화재 불법반출이 오랫동안 사소한 범죄로 여겨져왔고, 우리 박물관 스스로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대한민국에 귀중한 유물을 돌려주게 돼 기쁘다.”
유네스코 협약은 1970년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을 지칭한다. 이 협약은 ‘(협약 당사국 사이에) 규정에 위반한 문화재의 반입·반출 또는 소유권 양도는 불법’(제3조)이며, ‘해당 문화재의 회수 및 반환에 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제7조)고 규정했다. 이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은 문화재의 불법유통을 막는 국제규범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만 협약가입국의 자발적인 행위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 효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가장 큰 한계는 이 협약이 가입 이전의 문화재 불법반출이나 약탈 등의 사안에는 소급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07년 협약에 가입한 독일의 로텐바움 박물관은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로텐바움박물관은 물론 함부르크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유물의 자발적인 반환에 적극 나서 끝내 성사시켰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력지원팀장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독일측이 자발적으로 협약의 근본정신을 살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문화재 불법유통에 관한 출처확인을 게을리하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박물관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3월중 국내로 반환되는 문인석 1쌍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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