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2월 2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극비 방문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처음에는 방문 사실을 몰랐다. 여의도 비행장에 아이젠하워를 태운 군용기가 내렸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이젠하워의 잠행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대통령 선거 때 내건 ‘한국전쟁의 휴전과 전방부대 시찰’ 공약의 실천이었다.
북진통일과 휴전반대를 줄기차게 외치던 이 대통령을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중동부 전선인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관할하는 최전방부대를 방문했다.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와 하얀 눈이 뒤덮은 고지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며 아이젠하워는 휴전의 의지를 다졌다.
휴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DMZ)’가 생겼지만 실제 무시무시한 중무장지대로 전락했다. 1976년엔 도끼만행 사건까지 일어났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일촉즉발의 DMZ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1983년 “내가 가겠다”고 나선 미국 대통령이 나타났으니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방문 두 달 전부터 “DMZ 감시초소(GP)까지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안전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우려에도 “전혀 걱정없다”고 일축했다.
소련의 KAL기 격추,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과연 레이건은 박격포 사정거리인 북한군 벙커에서 불과 1㎞ 떨어진 콜리어 감시초소에서 30분 머물렀다. 북한의 선전마을을 바라보고는 “헐리우드 세트 같다”는 농을 던졌다.
“필요하다면 주한미군을 증강하겠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해외언론은 1963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설한 존 케네디에 비유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한국 방위의 결의를 다지는데 DMZ처럼 극적인 장소가 어디 있겠냐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후 DMZ는 미국 대통령의 단골방문지가 되었다.
다음달 7일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방문 때 이 DMZ 시찰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꼬마 로켓맨’이니 ‘늙다리 미치광이’니 하는 극한 말싸움을 벌였던 터라 저어하는 것인가.
트럼프의 안전을 고려해서 DMZ 방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련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던 ‘원조 스트롱맨’ 레이건에 견주는게 무리일까. 물론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겁쟁이 소리 듣지 않으려고 기습 방문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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