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중에 정릉과 온릉·희릉·태릉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의 제11대 임금인 중종(재위 1506∼1544)의 무덤이 정릉(靖陵)이고, 온릉·희릉·태릉은 중종의 세 부인인 단경왕후(온릉)와 장경왕후(희릉), 문정왕후(태릉)의 무덤이다.
중종이 세 부인 중 어느 한 분과도 합장되지 않은 사연이 있다. 중종 반정에 반대하던 아버지(신수근)이
피살되어 중종 즉위후 단 8일만에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와는 무덤을 같이 쓸 수 없었다. 중종의 무덤은 2번째 부인인 장경왕후의 무덤(서삼릉 희릉)에 조성됐다.
그러나 정권을 틀어쥔 제3부인 문정왕후는 남편을 독차지하려고 중종릉을 강남의 봉은사 곁(정릉)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능으로 낙점된 곳이 낮은 침수지대였던 탓에 정작 자신은 남편 곁을 떠나 지
금의 태릉에 묻혔다.
이렇듯 중종과 세 부인의 무덤이 제각각인 이유자체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그러나 ‘정릉·온릉·희릉·태릉’ 이라는 명칭만 봐서는 도저히 어떤 임금과 어떤 왕후의 무덤인지 알 수 없다.
문화재청은 10일 이런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달부터 조선왕릉의 명칭과 표기를 무덤 옆에 무덤 주인공을 병기하는 식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적용대상은 왕릉 42기와 원 14기이다. 이를테면 건원릉(태조),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영릉(세종과 소헌왕후), 명릉(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 익릉(숙종비 인경왕후) 등이다. 또 원릉(영조와 정순왕후), 홍릉(영조비 정성왕후), 건릉(정조와 효의왕후) 등으로 표기된다.
또 세자와 세자빈, 세손, 왕의 생모 무덤 등을 일컫는 원(園)의 명칭도 마찬가지다. 소령원(영조 생모 숙빈), 소경원(소현세자)과 순창원(순회세자와 공회빈), 효창원(문효세자) 등으로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쉽게 바꾼다.
명칭과 무덤 주인공을 함께 표기할 경우 한자만 다를뿐 한글표기가 똑같은 능원의 구별도 한결 쉬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조선왕릉 가운데 장릉은 세 개 있다. 단종이 묻힌 강원도 영월 장릉(莊陵), 인조 부친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 무덤인 김포 장릉(章陵), 인조와 부인 인열왕후를 모신 파주 장릉(長陵)은 모두 한글 능호가 장릉이다. 중중의 무덤도 정릉(靖陵·서울 정릉)이지만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도 정릉(貞陵)이다. 이밖에 세종 영릉(英陵)과 효종 영릉(寧陵)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문화재 안내판이 너무 전문적이고 어렵다”고 지적한 이후 문화재 명칭과 안내판 등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다, 이를 위해 59억원의 예산까지 편성했다. 진작에 시민 눈높이에 맞는 문화재명칭 작업을 펼쳐야 하는데 꼭 대통령의 지적이 있고서야 부산을 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그래도 만시지탄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사적 지정 명칭과 유네스코 등재 명칭은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시민들이 직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문화재청 및 조선왕릉관리소 누리집을 비롯해 문화재 안내판, 홍보자료만 표기를 바꾸기로 했다. 명칭변경으로 인한 행정혼란을 우려한 탓이다.
또 구리 동구릉이나 서울 헌인릉처럼 왕릉이 여러 개 모인 왕릉군 명칭은 능주를 하나하나 적기 어려워 기존 명칭을 유지하기로 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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