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최고(最古)의 사찰인 대통사터로 지목된 충남 공주 반죽동 한옥부지에서 사찰을 화려한 단청으로 칠한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지난 3~4월 이곳에서 ‘대통(大通)’이라는 명문기와 등 2만 여 편의 유물을 발굴한 조원창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수습된 지두문(손가락으로 그린 무늬) 암막새의 뒷면에서 가로 방향의 붉은 칠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조 원장은 오는 7일 열리는 ‘공주 대통사지 성격규명과 향후 조사 및 활용방안’ 학술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한다.
조 원장은 이것이 “암막새가 시설되는 연함(連含)을 단청하는 과정에서 묻은 흔적으로 추정된다”고 해석했다. 연함은 건물 지붕의 끝단 기와와 암막새를 지붕에 붙게 만들려고 기와골에 맞춰 파도모양으로 깎은 나무 부재를 일컫는다.
조 원장은 6세기 백제 단청 기술자가 이 연함을 붉게 칠하다가 그만 암막새에 실수로 묻혔다고 해석한다. 이런 단청의 흔적은 신라의 전 흥륜사터(경주공고 부지)와 사천왕사터, 동궁과 월지(안압지), 울산 율리 영축사터 등 신라 유적에서는 발견된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성기, 웅진기. 사비기 백제의 그 어떤 백제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없다. 이런 단청 자국은 웅진기 도성인 공산성과 그 주변 지역, 무령왕비의 빈전으로 알려진 정지산 유적 등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화려한 건물의 흔적이다.
조 원장은 “이것은 흔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華而不侈)’의 원칙을 지킨 왕궁보다 대통사를 훨씬 화려하게 치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해석했다.
성왕은 왜 유독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원칙을 깨고 유독 대통사만을 화려한 단청으로 꾸몄을까.
<삼국유사> ‘흥법’에 그 단서가 나온다. “대통 원년인 정미년(527년)에 양나라 황제를 위해 웅천주(공주)에 사찰을 건립하고 그 이름을 대통사라 했다”는 기록이다. ‘대통’은 중국 양나라 무제(재위 502~549)가 527~529년 사이 사용한 연호이다. 당시 백제의 군주는 성왕(재위 523~554)이다.
그럼 성왕은 왜 양나라 무제를 위해 절을 지었다는 것인가.
백제 성왕은 불가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롤모델로 삼은 군주다. 이름을 성왕(聖王)이라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전륜성왕은 진리의 수레를 굴리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세계를 평정한다는 이상적인 제왕이다. 그런데 양나라 무제 역시 전륜성왕을 자처한 통치자이다.
조원창 원장은 “백제 성왕은 ‘황제보살’의 별명까지 얻은 양 무제의 불국토사상을 본받기 위해 대통사를 건설했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했고, 양나라도 사찰 기술자들을 대통사 공사에 파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백제 대통사는 <삼국유사>에 신라 흥법사(544년)과 함께 백제 최고(最古)의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만 등장했다가 일제강점기 공주고보 교사였던 일본인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여학교 기숙사 욕실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통’명 기와를 수습함으로써 그 실재가 확실해졌다.
그러다 이번 발굴에서 ‘대통’명 기와와 단청 흔적의 ‘지두문 암막새’ 등을 포함해서 흙으로 빚은 불상의 얼굴과 무릎, 귀신 얼굴 모양의 기와(鬼面瓦), 치미, 연화문 수막새, 전돌 등 2만여편이 쏟아져 나왔다.
무령왕릉 벽돌과 무늬가 거의 같은 유물도 나왔다. 고고학계는 “기록으로만 존재했고, 그 터가 어디인지 몰랐던 대통사가 바로 이곳이 아니냐”고 흥분했다.
신라의 경주 황룡사지, 백제 사비기의 부여 정림사지에 비견되는 삼국시대 사찰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백제학회와 한국고대사학회 등 12개 학회가 “1500년만에 현현한 백제 대통사지의 온존한 조사와 보존을 촉구한다”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급기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5월16일 대통사터가 유력해진 반죽동 한옥 부지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조원창 원장은 “204㎡ 의 매우 좁은 곳에서 엄청난 유물이 쏟아졌지만 향후 발굴범위를 넓혀 차근차근 조사해서 유적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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