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는 곡식 한바리 처럼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잔뜩 실은 짐을 세는 말이다. 최근 이 ‘바리’라는 단어가 1500년전부터 신라에서 짐을 세는 단위였던 ‘발(發)’이 나중에 발달한 형태라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과)는 25~26일 경남 함안 문화원에서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국제적 위상’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바리는 6세기 중 후반 신라에서 ‘발(發)’로 추정되는 어형을 음사(音寫)한 글자로 추정되며 현대의 ‘바리’는 ‘발(發)’의 후대발달형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피 한 바리’를 의미하는 피발(稗發) 글자가 보인다.|권인한 교수 제공
성산산성 목간에는 차발(此發), 차부(此負), 패발(稗發·파 한 발)과 패석(稗石·피 한 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권 교수는 ‘함안 목간의 국어사적 의의’ 논문에서 성산산성 목간에 등장하는 ‘此發□悳(莫)杖之(이 바리는 □덕막장의 것이다)’ ‘此負刀寧負盜人有(이 짐은 도령의 짐인데 도둑이 있었다)’ ‘~利古支 稗發(이고지가 피 한 바리를 보냄)’ ‘미伊□(久) 稗石(미이□구가 피 한 섬을 보냄)’라는 내용에 주목했다.
‘바리’와 ‘발’의 관계는 2012년 윤선태 동국대 교수(역사교육과)도 비슷한 견해를 주장한 바 있다. 윤 교수는 “바리와 발음이 근사한 발(發)은 신라식 이두 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연구자는 함안의 성산산성 목간에 등장하는 ‘발(發·바리)’이 역시 ‘짐’을 뜻하는 ‘부(負)’와 비슷한 뜻을 지닌 관계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것이 일석(一石·한 섬))에 상응하는 수량사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짐(負)과 한 바리(發)는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어휘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 경우 ‘발’은 ‘부’와 같은 세금 꾸러미의 일종일 가능성이 짙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하타나카 아야코(畑中彩子) 일본 도카이대(東海大) 교수는 “성산산성에서 발견되는 목간은 세금이 아니라 산성 축조 등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먹을거리에 붙인 양미(養米) 목간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바리(發)와 비슷한 의미의 짐(負)이 쓰여있는 목간. 발(發)과 부(負)는 한 섬(一石)에 상응하는 수량사로 쓰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김재홍 국민대 교수(사학과)는 532년 혹은 592년으로 추정되는 ‘임자년’(壬子年) 목간에 대한 논의와 성산산성 축조와 연계해 목간 작성 시점을 추정한 학계 연구 결과를 정리해 내놓는다. 김 교수는 산성의 중심이 되는 체성벽은 6세기 후반에 축조했다고 판단되나, 내벽 보축(補築)이나 부엽층에서 출토한 유물은 7세기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성산산성이 6세기 후반에 처음 세운 뒤 7세기 전반에 보수됐다고 주장했다.
기조 강연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성산산성 목간은 신라의 촌락 지배 강화와 함께 기존 외위(外位·지방민에게 주어진 관등) 체계와 성립 과정, 이에 내재한 의미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며 “신라가 새롭게 편입한 지역과 주민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용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둘레가 1.4㎞인 성산산성(사적 제67호)에서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의 발굴에서 총 245점의 목간(문자를 기록한 나무조각)을 확인했다. 전국에서 발견된 목간의 40%에 이른다. 가히 ‘목간 보물창고’로 일컬어질만 하다. 목간은 고대의 다양한 지명과 인명, 수취 방식, 문서행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유산이다. 특히, 다량의 하찰목간(꼬리표의 목간)과 노역징발에 관한 문서 목간 등은 기록이 부족한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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