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23ㅣ뉴스메이커 746호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
샤먼이 암송하는 영웅 게세르 서사시에서 단군신화와의 유사성 발견
7월 10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항공편으로 바이칼을 향해 날아올랐다. 세 시간 남짓 비행했을까, 동국대 윤명철 교수의 카메라 셔터 소리에 선잠을 깼다. 바이칼 호수가 장관으로 펼쳐졌다. 봉우사상연구소 정재승 소장이 호수에 대해 즉석 강연을 펼쳤다. 이르쿠츠크대 고고학과 스비닌 교수가 레스토랑의 냅킨 위에 바이칼 주변 종족 분포도를 그려 선물할 정도로 정 소장은 현지인들에게 명망 있는 바이칼 전문가다.
모녀샤먼 바위(일명 부르한 바위)가 보이는 바이칼의 여명. <김문석 기자>
엷은 옥빛의 바이칼 호수는 하늘색을 닮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호수를 감싸 안았다. 푸른 호수와 호수를 닮은 푸른 하늘은 수평선과 같이 희미한 경계선도 없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호수 인근 부리야트인들은 샤머니즘의 최고 신성을 ‘영원한 푸른 하늘’로 이해하고, 호수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비행기는 최고신의 가슴 속에 있고, 신성은 경계를 모른 채 푸른 바이칼 호수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착륙하기도 전에 노크도 없이 바이칼 신들의 세계로 불쑥 들어온 것이다.
부리야트 샤먼 발렌친이 바이칼 호수 안의 알혼섬에서 평소의 레퍼토리를 버리고 ‘게세르 신화’ 를 암송했다. <김문석 기자>
신들의 세계로 가다 이르쿠츠크 공항에는 필자의 친구인 이르쿠츠크외국어대학 박근우 교수가 나와 있었다. 박 교수는 답사팀의 일정을 준비했고, 도착에서 출발까지 함께 고생했다. 첫 날 향토박물관 답사, 이르쿠츠크공대 고대 기술 연구소 고고학자들과 미팅이 있었고, 다음 날 우스치오르다의 부리야트민족박물관에서 샤먼 톨랴가 재현하는 사습놀이인 수르하르반 축제를 견문한 뒤 샤먼 마하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곧장 알혼섬으로 갔다. 엘란치 인근의 선착장 엠에르에스에서 바지선을 타고 바이칼의 인당수로 불리는 물길을 넘어 알혼에 올랐다.
숙소로 정한 니키타 민박센터에는 샤먼 발렌친이 전날 미리 섬에 들어와서 우리를 기다렸다. 민박센터 주인 니키타씨가 손수 일행을 맞고 한국말로 환영 인사를 했다.
답사팀은 짐을 숙소에 던져두고 곧장 모녀샤먼 바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섬의 중턱 부분에 판을 깔고 발렌친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황금빛으로 저물던 햇살이 먹구름에 가렸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발렌친의 공연은 계속되었다. 비가 와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미 다른 손님들과의 행사에서 약주를 한잔 걸쳐서일까, 발렌친은 뜻밖의 궤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연출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왔다고 신들께 고한 뒤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십사 하고 청을 드리고, 의식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일정한 시점마다 소옥(so-ok, 뜻대로 이루소서)이라는 주문을 구경꾼들에게 외치게 할 것으로 기대하며 판을 지켜보던 필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명색이 이야기 사냥꾼이고 샤머니즘 전문가라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끝까지 있었지만, 가슴 속은 방망이질쳤고, 긴장감이 온몸 가득 퍼졌다.
발렌친은 평소의 레퍼토리를 버리고, 샤머니즘의 신화인 ‘게세르’를 난데없이 암송하기 시작했다. 시작 부분을 들으면서 발렌친의 게세르가 불라가트-에히리트인들에게 전해져오는 ‘아바이 게세르’ 판본임을 짐작했지만 발렌친의 입에서 나오는 서사시의 내용이 단군신화와 고스란히 오버랩되는 모습을 느끼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세르 암송이 단군신화에 스토리를 입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에게만 그런 것인가? 바이칼에서 단군을 만나다니…. 그것도 한반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바이칼 샤먼의 세치 혀를 통해서 말이다.
알혼섬, 발렌친 그리고 단군 공연이 파한 뒤 나이가 열서넛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이 운전하는 러시아산 ‘라다’ 자동차를 타고 뭍으로 나가려는 발렌친을 붙잡았다. 대뜸 한반도의 단군신화를 아는지 물었다. 알고 있었다. 발렌친 본인도 이야기 얼개의 유사성에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몽골의 게세르 연구자인 담딩수렝의 저서를 언급하면서 게세르 신화의 이동경로가 티베트쭻몽골쭻부리야트라고 말하고, 단군신화도 게세르신화의 영향으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발렌친은 울란우데의 부리야트국립대에서 비교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텔리 샤먼이다. 그래도 근거가 없는 전파론과 영향설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학자나 샤먼의 입장이라고 할 수 없다.
스비닌 이르쿠츠크대 교수가 정재승 소장에게 냅킨에 그려준 바이칼호 주변 종족 분포도.
막 공연을 마친 발렌친을 붙들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빗줄기도 세졌고, 발렌친도 지쳐 있었다.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대부분 이미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해서 아쉽지만 헤어졌다. 발렌친의 게세르 서사를 통해 단군이 바이칼에 나타난 사실은 밤늦게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통나무 숙소의 2층 베란다에서 자정을 넘기며 정리 회의를 하면서, 단군과 게세르 신화 그리고 바이칼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신화 비교에 대한 답사팀의 관심이 의외로 뜨거웠고, 경향신문 취재팀 신동호 단장과 이기환 선임기자는 단군과 게세르의 조합이 기삿감으로 적당한 것 같다고 추임새를 놓았다.
몽골-티베트-바이칼 부리야트를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의 영웅신화인 게세르와 한반도의 단군신화의 관계’ 그리고 ‘단군신화에 대한 상식화된 오해들’을 살펴보는 객관적인 입장의 접근은 필자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주제였다. ‘객관적인 접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신화의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의 객관성이 오히려 주관적인 입장일 수도 있어 ‘객관’, ‘보편’ 혹은 ‘논리’라는 말과 신화의 연결이 어색할 수 있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단군신화에 대해 신화화된 오해들을 살펴보고, 게세르 신화와의 관련성을 말하면 족하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상식화된 오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단군신화가 실린 일연선사의 ‘삼국유사’ 와 부리야트공화국 수도 울란우데 부리야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아바이게세르’ 판본.
① 단군신화는 건국신화다.
② 단군신화는 무속(샤머니즘) 신화이고 단군은 샤먼이다.
③ 농경사회의 신화이다. 즉 우사·풍백 등을 농경사회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④ 단일민족의 신화로 이해한다. 즉 곰족으로 대표되는 우리 조상으로 이해한다.
⑤ 일연선사의 위작으로 이해한다.
단군신화를 건국신화로 보는 견해는 상식인 것처럼 널리 퍼져 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이며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다음과 같이 프롤로그와 3부작으로 텍스트를 쪼개어보자.
① 프롤로그 | 하늘 신의 세계, 환웅이 지상 강림하는 사유
② 제1부 | 신시(神市)시대-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실현
③ 제2부 | 아사달에서의 개국과 단군왕검 통치기
④ 제3부 | 제국의 쇠퇴
단군신화에 대한 오해들 우리가 보통 건국신화라고 말할 때는 위의 1부와 2부의 조각을 인용하고, 건국이념을 프롤로그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단군의 신비한 탄생과 웅녀의 출신 성분을 놓고서 ‘곰족=조선=현재의 한반도’로 연결되는 국가의 탄생을 다루는 설명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기도 하고 부분적인 진실을 드러내기도 해서 단군신화에는 건국신화의 모티브가 잠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일연선사가 채록한 신화 텍스트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부만 발췌한 해석이라는 점이다. 문학 작품의 성격을 따져보는 과정에서 작품 전체가 아닌 일부만 떼어내어 전체를 규정하는 일이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이르쿠츠크 공대 고대기술연구소 고고학자들과 미팅하는 필자(왼쪽에서 세 번째).
프롤로그에서 제3부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단군신화의 요점을 건국신화로 하기에 주저하게 된다. 건국이념 제시(프롤로그), 신들의 지상제국 건설(제1부), 단군조선의 창업과 유지(제2부), 제국의 종말(제3부)의 모티브가 줄줄이 나온다. 제국의 건설은 부분이고, 제국의 흥과 망을 포괄하는 조선제국 흥망사를 일연선사가 기록한 것이다. 건국신화가 아닌 제국 흥망사인 것이다. 단군이 제국 멸망 이후 숨을 거두거나 하늘로 복귀하지 않고 아사달 땅인 장단경의 숲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진술은 절망적인 느낌을 주는 동시에 제국 멸망사와 제국의 존재를 후대에 전해주고 멸망한 제국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산신령이나 칠성각 그리고 미술사학자 박용숙 교수의 ‘숲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양민종<부산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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