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엄청난 유물이 나왔다. 백제예술의 정수 금동대향로였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신라유물이 단 한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이 유적은 고구려는 물론 중국·서역의 문물이 엿보이는 국제문화교류의 창구였는데도 유독 인접국인 신라의 유물만 없는 것이다.
왜일까. 알다시피 이 능산리 절터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재위 523~554년)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절이었다. 역사적으로 백제와 신라는 총 66회(백제멸망 이후 부흥군과 싸운 8회의 전쟁 포함)를 싸우며 패권을 다퉜지만 밀월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익에 따라 협력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게 외교가 아닌가.
백제·신라는 고구려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삼년산성을 쌓을 즈음, 동맹을 맺고 있었다.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은 나란히 손잡고 551년 고구려가 장악한 한강유역을 점령했다.
이미 538년 쪼그라든 국세를 만회하기 위해 사비(부여)로 천도하며, 국호도 부여족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남부여’로 고쳐 재기의 칼을 갈던 성왕이었다. 그러나 성왕의 꿈은 어처구니없게 산산조각난다.
553년 신라 진흥왕이 백제군이 차지한 한강유역 6개 군을 홀랑 빼앗아 버린 것이다. 백제 성왕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진흥왕의 ‘배신’.
한성에서 개로왕을 잃고 가까스로 국가의 명맥을 이어가다 겨우 고토(한강유역)를 탈환, 힘을 되찾은 백제 성왕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554년 7월 백제는 대가야군과 합세, 삼년산성 인근인 관산성(옥천)을 친다. 선발대는 태자 여창(餘昌·훗날 위덕왕)이 맡아 관산성(옥천)에서 공세를 준비했고 성왕이 친히 원정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백제는 돌이킬 수 없는 참패를 당한다. 성왕은 보병 50명의 호위를 받고 야간 행군하던 도중에 구천(狗川)에서 신라의 복병을 만난다.
“백제왕(성왕)이 가량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했다. 군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섰으나 전제가 불리했다. 이에 신주 군주인 김무력이 군사를 이끌고 교전함에 삼년산군인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좌평 4명과 군사 2만9천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가지 못했다.”(삼국사기).
성왕의 목이 잘리고 최고관등인 좌평과 3만 대군이 몰살하는 대참패.
위의 삼국사기 기록 중 성왕을 죽였다는 삼년산군(三年山郡)인 고간 도도를 기억하자. 일본서기 등의 기록을 보면 당시의 전투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표현된다.
성왕의 목을 친 도도는 신라 사마노(飼馬奴·말을 기르는 사람)출신이었다. 물론 삼년산성을 쌓은 삼년산군 사람이었다.
도도는 성왕을 사로잡아 “왕이시어 머리를 베도록 허락 하소서 하자 성왕은 ‘과인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참고 살았지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겠다’”하면서 목을 늘였다. 신라는 성왕의 목을 군신회의를 하던 관청인 도당(都堂)에 묻었다. 백제로서는 엄청난 모욕이었다.
성왕의 아들인 창(昌)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 왕위에 올랐는데 그 분이 바로 위덕왕(재위 554~598년)이다.
백제와 신라는 이때부터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후 백제는 무왕(재위 600~641년)과 의자왕(641~660년)대에 걸쳐 끈질기게 불구대천의 원수국 신라를 윽박질렀다. 의자왕 때인 642년엔 신라 40여성을 함락시키는 등 신라를 궤멸상태로 몰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백제는 이처럼 처절한 복수전을 펼치다 나·당 연합군에게 허망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같은 대공세를 견디다 못한 신라가 당나라에 접근, 동맹관계를 이뤄 백제를 멸망시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단 한점의 신라유물도 없는 부여 능산리 절터와 지금도 갖은 풍상을 견디며 우뚝 서있는 삼년산성은 이처럼 1,600년 전 격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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