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칠금동이 백제시대 ‘포스코’였음을 입증해주는 제련로가 9기나 쏟아져 나왔다.
칠금동 제철유적을 조사중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21일 올해 3차발굴에서 3~4세기에 제작된 제련로 9기를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에서 확인된 제련로 중 하나. 이곳에서는 총 20기의 제련로가 발견됐다. 3~4세기 백제시대 '포스코'라 할 수 있는 제철공장이 확인된 것이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
한지선 중원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칠금동 유적이 명실상부 국내에서 단위면적당 최대 유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밀집도로 보면 칠금동은 요즘의 포스코를 연상시킬만큼 대단위 제련공장이 있었던 곳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련로는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이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년 동안 200여평(600여㎡)에서 이번에 확인한 9기를 포함 총 20기의 제련로를 발견한 셈”이라고 전했다. 제련로 외에도 소성유구와 철광석 파쇄장 등 각종 부속시설 14기도 확인됐다.
이번 발굴에서는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조업한 제련로가 수명을 다하면 폐기한 후에 폐기물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제련로를 축조하는 식으로 모두 3개층의 제련로가 중첩되어 축조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현재까지 국내에 알려진 것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다.
특히 이 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이른바 ‘지하구조’를 더 쌓았다는 것이다. 즉 제련로 축조 이전에 바닥에 목재를 치밀하게 채우고 그 외곽으로 목재 말뚝을 박은 시설을 확인한 것이다. 원래 제련을 위해서는 습기를 막는 장치, 즉 방습구조가 필수적이다.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습기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칠금동 제련로 모식도.|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
한 연구사는 “칠금동의 경우 바닥에 숯, 점토, 모래 등의 1차 방습제 외에도 땅을 더 파서 나무를 치밀하게 더 채운 2중 방습시설 처리를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3층 구조로 된 제련로가 상층으로 갈수록 간단한 방식으로 축조됐다는 점도 확인됐다. 제철기술이 발달하면서 후대로 갈수록 폐기층 위에 조성되어 방습의 필요성이 낮아진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충북지역에서는 진천과 청주, 보은 등에 제철유적이 산재해 있지만 충주 칠금동만큼 밀집되어 있지는 않다. 칠금동 유적은 제련-정련-단야-용해 등 철생산 공정의 단계 중 첫번째인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장에 해당된다.
한 연구사는 “충주 칠금동은 고대 백제 뿐만 아니라 고려 및 조선시대까지도 국내 제철생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는 백제의 제철기술사를 복원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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