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의 공사장에서 정체불명의 유물편이 출토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장신구의 한 부분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뿐이었다. 그로부터 65년 후인 1973년 이역만리 경주 계림로에서 벌인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 도중 성인 남자 2명이 나란히 묻힌 무덤(14호분)이 확인됐다. 오른쪽 남자는 큰 칼을 차고 있었는데, 왼쪽 남자는 길이 36㎝의 황금보검을 달고 있었다.
경주 계림로에서 확인된 황금보검 장식과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에서 출토된 보검 장식. 세부 문양은 다소 다르지만 기본 모티브는 흡사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런데 일본학자들인 아나자와 와코우(穴擇和光)와 마노메 슌이치(馬目順一) 등으로부터 계림로 출토 황금 보검의 사진을 받아본 러시아 학자인 A.K. 암브로즈는 무릎을 쳤다. 60여 년 전 보로보에에서 확인된 정체불명의 유물편은 바로 보검의 장식 일부였던 것이다. 대체 보로보에와 경주 출토 유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역만리 떨어진 두 보검장식은 3개의 태극 문양(계림로)과 3개의 검은 정사각형 문양(보로보에)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 모티브는 같았다. 특히 두 보검장식 모두 홍마노 등의 유색보석이 감장(嵌裝·금판 위에 청옥 등을 박은 알집을 또 다른 금판으로 만들어 붙여서 장식하는 기법)된 다음 테두리가 누금세공기법으로 장식된 공통점이 있었다.
카자스흐탄의 국가 상징인 ‘황금인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러한 양식의 보검은 중국 신장의 키질석굴 제69굴 벽화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등에서도 보인다. 또 계림도 황금보검의 성분 분석 결과 2~7세기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헝가리 출토 금제품과 비슷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7일부터 내년 2월24일까지 개최하는 <황금 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은 한국 문화와 절대 떨어뜨려 볼 수 없는 ‘길목의 문명’, 카자흐스탄 문화를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초원은 계림로와 보로보에 보검이 웅변해주듯 동서양 문화와 산물의 교차로이자 다양한 종족의 이동과 성쇠의 역사가 서린 공간이다.
특별전에는 선사~근·현대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450여점이 전시된다. 카자흐스탄은 튀르크어로 자유인 또는 변방인의 뜻인 ‘카자흐’와 땅의 의미인 ‘스탄’을 합한 나라명이 바로 카자흐스탄이다. 그러니 카자흐스탄은 ‘자유인의 나라, 변방의 땅’ 정도로 해석된다. 그런 카자흐인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그들이 초원의 중심에서 이룩한 대초원 문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특별전에서는 카자흐스탄의 국가상징인 ‘황금인간’(이식 쿠르간 출토)을 비롯해 탈디·탁사이·사리암 유적에서 출토된 ‘산과 표범 모양 장식’, ‘염소 머리 관모 장식’, ‘문자를 새긴 용기’ 등을 비롯한 황금유물들을 볼 수 있다. 또 스키토-시베리아 양식의 ‘동물 모양 마구’(쿠르간 출토)와 ‘동물 머리 장식 제단’ ‘세발 달린 솥’ ‘튀르크인 조각상’ 등 옛 사람들의 종교관념과 초원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유물들도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카자흐스탄 남부 오아시스 도시 오트라르에서 출토된 ‘명문있는 접시조각’과 ‘위생도구’ 등도 전시한다.
동물머리 장식 제단.|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또 유목민의 전통과 애환이 담긴 유르트(유목민의 전통 천막집) 구조물과 카자흐 전통 카페트인 ‘시르마크’, 악기인 ‘돔브라’, 여성용 장식 안장인 ‘아이엘 에르’, 혼례용 신부 모자인 ‘사우켈레’, 남성 전통 예복인 ‘사판’, 은장신구인 ‘셰켈리크’ 등도 소개된다.
또한 카자흐스탄에 정주한 고려인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머나먼 땅, 카자흐스탄에 쫓겨가 처음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현재 약 10만명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 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민족 공동체국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의 여정”이라고 특별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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