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와 총석정 등 강원도의 명승지를 그린 16세기 보물급 실경산수화 2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재일교포로 자수성가한 고 윤익성(1922~1996)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창업주의 유족이 16세기 중반에 제작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 2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19일 밝혔다.
일본에서 구입하여 기증된 16세기 실경산수화 ‘총석정도’.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정선(1676~1759)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에 기증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현재 전해지는 강원도 명승지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특히 16세기 감상용 실경산수화 제작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존작으로 가치가 높다. 두 작품은 16세기 중엽 관동 지방의 빼어난 풍경을 유람하고 난 후 감상을 그린 것이다.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등 세세한 묘사까지 매우 흥미로우며, 전체적인 표현 방법은 16세기 화풍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장의 특징에 맞게 화면 구성과 경관 표현을 창의적으로 변화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작품을 실견한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장)는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정선(1676~1759)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16세기의 대표적인 실경산수화이며, 이러한 작품은 한번 보는 인연도 맺기 힘든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오다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의 작품은 계회도(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된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작품) 등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서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두 작품은 강원도 총석정과 경포대를 각각 단독으로 그린 실경 산수화이다.
이중 <총석정도>는 관동팔경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소(북한지역인 강원도 통천)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상부에 작품이 제작된 내력을 밝힌 발문이 남아있다. 아직 신원을 밝히지 못한 상산일로(商山逸老·아호)가 쓴 발문이다.
“나(상산일로)는 정사년 봄에 ‘홍군 덕원’과 관동지방을 유람하고…금강산과 대관령 동쪽의 뒤어난 풍광을 두루 다 관람한 뒤 <유산록>을 작성했다…드디어 몇몇 명승지를 그림으로 그려 병풍을 짓고….”
박물관측은 발문에 나오는 ‘정사년’ 간지를 토대로 ‘홍군 덕원’이라는 인물을 추적한 결과 조선조 명종 연간(재위 1545~1567)의 인물인 홍연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홍연의 생몰연대는 나와있지 않다. 오다연 학예사는 이와관련 “당대의 인물인 유희춘(1513~1577)의 <미암일기>에 등장하는 ‘홍덕원’이라는 인물과 <명종실록> 등에서 보이는 ‘홍연’ 등을 교차확인했다”고 전했다. 홍연은 1551년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과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림을 보면 총석정을 가지 않고도 실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다른 기증작인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위치한 죽도와 강문교를 시작으로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와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로 그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또다른 기증작인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위치한 죽도와 강문교를 시작으로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와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로 그려졌다. 오다연 학예사는 “두 작품은 본격적인 순수 감상용 16세기 실경산수화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한국 실경산수화 이해의 폭과 수준을 높인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번 기증은 고 윤익성 회장 유족의 기부금으로 이뤄졌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고 윤익성 회장은 ‘일본의 불화를 구입해서 환수하는’ 조건으로 사단법인 국립중앙박물관회에 기부금을 낸 바 있다. 그러나 마땅한 불화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으로 확대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일본 출장조사를 벌이다가 교토(京都)의 문화재 매매상이 갖고 있는 이 두 작품을 확인했다. 박물관측은 고 윤익성 회장의 유족에게 불화 대신 이 두 작품을 기증 대상품으로 선정하면 어떠냐고 의사를 타진했다. 이에 유족측이 동의하면서 두 작품이 기증된 것이다.
김세원 유물관리부 학예사는 “기부금으로 박물관이 필요한 작품을 구입하여 기증하는 방식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성사된 기증이라는 점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앞으로도 ‘다각적인 기증 방식 등 수집 정책의 다변화를 통해 박물관 콜렉션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고, 박물관 본연의 역할인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를 22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며, 23일부터 9월22일까지 열리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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