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힌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1608~1667)의 묘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전주 유씨 춘호공파 후손인 유양석씨(92)로부터 전평군 유심의 ‘백자청화묘지’ 5점(1686년작)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측은 이를 포함해서 탕평 정치를 대표하는 송인명(1689~1746년)의 문집인 <장밀헌집>과 20세기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의 <금강산 묘길상도> 등 문화재 6건 19점을 5명의 소장가들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의 묘지.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평군 유심의 유물인 ‘백자청화묘지’는 백자로 만든 네모판에 가계와 생애, 관직이력, 자손, 성품 등에 관한 내용을 청화안료로 적은 것이다. 이 유물은 지난 1981년 의정부에서 남양주 별내동으로 이장된 전주 유씨 5대 봉군(封君)의 옛 묘역(의정부)에서 발견됐다. 이장 당시에는 발견되지 않았다가 38년만인 지난해 5월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노출된 것을 의정부 동네 주민이 전주 유씨 집안에 연락함으로써 밝혀졌다.   

유심은 선조(재위 1567~1608)와 인빈 김씨(1555~1613년) 사이에서 태어난 정휘옹주(1593~1653)와 혼인한 부마(전창군 유정량)의 장남이다. 따라서 유심은 선조의 외손자이며, 인조(재위 1623~1649·인빈 김씨의 아들인 정원군의 장남)와는 내외사촌 관계가 된다. 유심은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1613년)로 유배를 떠난 부친을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난 뒤 과거에 급제해서 도승지를 역임했다. 

영조 즉위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송인명의 미간행 문집 <장밀헌집> 6책 1질도 박물관에 기증됐다. 소론을 대표하는 송인명은 영조대 탕평 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관료로 알려져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에 기증된 묘지에는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효심을 드러낸 글이 적혀있다. 

“아. 공의 기량과 도량이 장중하고,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순수했다. 효성과 우애를 몸가짐의 큰 법도로 삼아 부모 옆에 있을 때에는 항상 부드럽고 즐거운 기색을 하였으며,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 하였다.(噫 公器度凝重 姿品和粹 以孝友爲持身大閑 在親側常愉완 親제至血指 居憂則점堊盡禮)”

전주 유씨 춘호공파의 유물기증은 이번 뿐이 아니다.

1981년 무덤 이장 당시 유심의 묘와 증조부 유영경(1550~1608), 조부 유열, 부친 유정량(1591~1663)까지 4대 묘에서 수습된 명기(明器·무덤에 묻으려고 만든 그릇) 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기증으로 유심의 묘지와 명기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조선 중기 최고 명문가의 장례 풍속과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의궤 전공자인 미술사학자 이성미(80)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기증한 <오륜행실도> 5책.|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외에도 영조 즉위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송인명의 9대손인 송재원씨(40)는 조상의 미간행 문집 <장밀헌집> 6책 1질을 기증했다. 소론을 대표하는 송인명은 영조대 탕평 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관료였지만 그동안 문집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기증으로 영조대 탕평정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밀헌집>은 특히 상소문과 간이 상소문인 차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수경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송인명의 정치적 견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자료”라고 평가했다. 이 유물은 1790년(정조 14년) 후손들이 송인명의 저작을 모아 한자 한자 써서 문집으로서 체재를 갖춘 상태의 문집이다. 따라서 인쇄가 이루어지기 전 단계를 보여준다. 

또 조선시대 의궤 전공자인 미술사학자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80)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오륜행실도> 5책을 기증했다. 1797년(정조 21년)에 간행한 이 <오륜행실도>는 조선시대 유교윤리 강화 및 한글 활용을 보여주는 전적이다. 첫번째 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김원룡(1922~1993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이 <오륜행실도>의 의의에 대해 쓴 제발문이 포함돼 있다. 

외무부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79)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기증한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의  2000년 작 <금강산 묘길상>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성미 교수의 부군이자 외무부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고려대학교 명예교수(79)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이 2000년에 그린 <금강산 묘길상> 1점을 기증했다. 한승주 이사장이 2006년 10월 윤이상 음악제 참관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천리마 제작소에서 선우영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이다. 

북한 최고등급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선우영 작가는 2002년 2월 미국 전시에 이어 5월 서울남북평화미술축전에도 출품한 바 있다. 이 그림은 선우영 특유의 세화기법과 진한 채색으로 금강산 만폭동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묘길상과 주변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수된 첫번째 북한미술품이다. 

이밖에 박영호씨(64)는 근대기 활동한 서화가인 이도영(1884~1933)이 중국 북송의 유명한 서화가이자 괴이한 돌을 좋아한 미불(1051~1107년)이 바위에 절을 하는 모습을 그린 <미불백석도> 1점과 이상범(1897-1972년), 노수현(1899~1978), 지성채(1899~1980) 등이 함께 그린 <합벽 화조도> 1점을 기증했다. 이 그림 2점은 2018년 11월 작고한 박영호씨의 모친이 1970년대에 구입한 것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