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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부처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훔쳐간 불화…미군 사진속에 범인이 있었다

2006년 3월이었습니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 아시아 미술실에 부임한 김현정 큐레이터는 미술관 소장품 중 한국 유물 파악에 나섰습니다. 소장품 목록을 살펴보던 김현정 큐레이터의 눈에 밟힌 불화가 한 점 있었습니다. 
그것은 ‘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라 기록된 불화였습니다. 
미술관 데이타베이스에는 없고, 흑백폴라로이드 사진만 달랑 목록에 올라있는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수장고를 샅샅이 뒤져가던 김현정 큐레이터는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려있던 ‘설법도’를 찾아냈습니다. 이역만리 미술관 수장고 한편에 놓여있던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조, 정성왕후, 사도세자를 기린 불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영산, 즉 고대 인도의 영축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불교에서 ‘영산회상’은 ‘부처의 깨달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긴급보존처리 후 불화를 자세히 살펴보니 끔찍했습니다. 예리한 칼로 그어친채 무려 6개로 산산조각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현정 큐레이터는 우선 ‘영산회상도’에 적힌 화기(畵記·그림의 내력 등을 쓴 기록)의 감정을 연구자(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내용이 읽혔습니다.
‘건륭 20년(1755·영조 31) 6월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산해회(靈山海會)를 마치고 봉안한다’는 것과 ‘주상전하 이씨와 왕비전하 서씨, 세자저하 이씨의 수명이 만세·천세에 이르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775년 신흥사에서 왕(영조·재위 1724~1776)과 왕비(정성왕후·1692~1757), 세자(사도세자·1735~1762)의 만수·천수무강을 기원하면서 ‘영산회상도’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그렇게 중요한 불화가 왜 6개로 산산조각난채, 그것도 이역만리 미술관에까지 흘러 들어갔을까요. 
LA카운티미술관이 이 ‘영산회상도’를 소장하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답니다. 뉴햄프셔 홉킨튼 지역에서 살던 매리 S 프렌치라는 인물이 대리인을 통해 “아들의 집 다락방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 같다”고 구입의뢰했는데요. 미술관 측은 이때 이 영산회상도와 함께 ‘시왕도’(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 6점(1798년 작)까지 사들였습니다. 
미술관측은 두 건의 유물을 구입하면서 ‘화기’ 등을 통해 원래 소장처가 ‘설악산 신흥사’임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신흥사 측에 ‘원소장처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두 번(1998·1999)이나 보냈습니다. 이 공문에는 “만약 60일 이내에 답장이 없으면 불화를 인수하는 데 신흥사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나 신흥사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1956년 새로 제작된 불화(영산회상도)를 50년 이상 극락보전에 걸어놓고 있었기에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거죠. 

■미국 현지에서의 특별한 복원
그나마 ‘시왕도’는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었는데요. 하지만 ‘영산회상도’는 그나마의 대접도 받지 못한채 부설수장고 한편에 방치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김현정 큐레이터의 눈에 든 ‘영산회상도’는 환골탈태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미국 소재 한국 불화 중 가장 크고(가로 406.4cm, 세로 335.2cm) 화격이 높은 작품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미술관 차원에서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시까지 구상했습니다. 
마침내 박지선 용인대 교수팀(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을 초청하여 현지 복원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펼쳐나갔습니다. 
복원팀은 한국에서 1t 콘테이너 3대 분량의 장비를 가져갔는데요. 2010년 9월부터 시작된 현지 복원은 미술관 전시장이었던 도자실을 비워 마련한 공개 작업장에서 진행했습니다. 열린 공간에서 펼치는 복원이다 보니까 관람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답니다.

영산회상도 속에 들어있는 ‘화기’를 분석한 결과 이 영산회상도는 1755년(영조 21) 영조와 왕비(정성왕후), 세자(사도세자)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작된 그림으로 확인됐다.

복원팀은 영하 10도 정도의 강추위 속에서 쑤어 10년 이상 묵힌 풀을 썼고, 비단은 수백년 된 것처럼 광선을 쏘이고 염색해서 강도를 낮춰 사용했습니다. 오염 제거에만 한달이 걸렸는데요. 드러난 오염만 제거할 뿐 세월의 흔적까지 지우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7겹이나 되는 배접지(비단 위 그림을 고정하기 위해 뒷면에 덧대는 종이)를 제거하는 데만 두 달 이상 걸렸구요. 이후 다시 새로운 배접지로 7겹 붙이는 작업이 진행됐는데요. 무엇보다 복원팀이 신경 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누군가 그림을 가로로 크게 두번 칼질 해서 세 조각 낸 다음 윗부분만 다시 세로로 세 번 베어냈습니다. 
그렇게 여섯조각으로 난도질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잘라놓았습니다. 
‘범인’은 오로지 그 커다른 불화를 ‘돌돌 말이’로 반출할 생각만 했던 겁니다. 
복원을 책임진 박지선 교수는 “여섯조각으로 남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와 시련 만큼은 지우고 싶었다”고 토로했습니다.

LA카운티미술관은 복원작업 과정 전체를 일반에 공개했다. 복원에는 박지선 용인대교수팀이 참여했다. 1년4개월간의 복원은 오염제거와 7겹에 이르는 배접지 제거, 그리고 훼손된 비단 교체, 새 배접(7겹) 작업으로 이어졌다. 너무 감쪽 같은 복원도 금물이었다. 복원의 흔적도 역시 그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난한 1년 4개월의 과정을 거쳐 다시 온전한 ‘영산회상도’ 그림이 복원·공개되었습니다.(2011년 12월)
과연 영산회상의 장엄한 분위기가 오롯이 그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가운데에 놓인 높은 연화대좌 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아 있고 여러 인물이 부처님 주위를 에워싸며 설법을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영산회상도’가 공개되자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할리웃스타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인사들이 찾아왔구요. 
특히 LA 한국 교민 사회가 들썩였습니다. 각종 불교행사도 미술관 안팎에서 열렸습니다. 2012년 3월부터 ‘영산회상도’는 미술관 한국실 중앙에 걸렸고, 복원 과정이 녹화된 동영상과 함께 전시되었답니다.

■마냥 박수칠 입장이 아니었던 불교계
이렇듯 LA카운티미술관이 미국 최초로 기획한 불화 복원 공개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 되었는데요. 
그러나 한국불교계 입장에서 마냥 박수만 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LA카운티미술관 측은 원소장처인 신흥사의 입장을 의식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미술관은 불화의 한국 귀환 여부가 논란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영산회상도가 온전히 존재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옳은 말입니다. 적법 혹은 합법적으로 반출된 국외소재 한국문화재의 경우 환수가 사실상 어렵죠. 이 경우에는 그 문화유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보존·관리·전시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 반출된 문화재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여섯조각으로 잘린채 반출된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등은 명백한 ‘불법반출 문화재’입니다. 무엇보다 불화는 예술품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예경의 대상인 ‘성보(聖寶)’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여느 문화유산 보다도 더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참전미군의 소행이 분명 
그렇다면 언제 사라졌을까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설악산을 포함한 속초 지방은 미군정 치하로 편입됩니다. 
이 지역에는 한국군 제1군단사령부과 미군 항만사령부가 주둔하게 되었구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되죠. 미군정 상황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 4개월이 지난 1954년 11월까지 이어집니다. 이때 복귀한 신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합니다. 
극락보전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명부전의 ‘시왕도’ 등 사찰의 ‘성보’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여기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죠. 신흥사를 비롯한 속초지역에 주둔한 미군이나 국군 중에 있겠네요.
그러나 한국군은 분명 아닙니다. 서양에서 기독교 성화를 훼손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불화에 칼자국을 낼 강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뜯은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미국으로 반출되지 않았습니까.

필시 미군 중 누군가가 뜯어갔겠죠.
만약 불법 밀반출 사실이 입증되면 LA카운티미술관은 신흥사에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반환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미국 연방 도난품법은 불법 반입된 유물을 유통 및 매매할 경우 재산형 및 몰수형의 처벌을 내린다고 규정했거든요.
그래서 LA카운티미술관이 1998·99년에 유물구입과 관련해서 신흥사에 두차례나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문제는 당시 신흥사 쪽에서 이렇다 할 답변을 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죠. 
게다가 LA카운티미술관은 아낌없는 열정으로 영산회상도의 제 모습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선뜻 “내가 주인이니 돌려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영산회상도’가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는 불법 반출품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참전 미군의 사진에 담긴 비밀
사실 비장의 카드는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통신 장교(폴 뷰포드 팬처)가 속초시립박물관에 1953년 말~54년 11월 사이 찍은 속초 일대의 사진 271점을 기증했는데요. 그중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극락보전의 불상(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뒷벽에 1755년 제작된 ‘영산회상도’가 떡하니 걸려있었거든요.

그 뿐이 아니구요. 
명부전 사진에서도 벽면에 ‘시왕도’가 3점 보였습니다. 팬처는 “1954년 5~6월에 신흥사를 방문했다”고 전했는데요. 속초 지역의 미군정이 그해(1954년) 11월 끝난 뒤 스님들이 사찰로 복귀했죠.
그렇다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1954년 5~11월 사이에 반출되었다는 이야기가 되죠.

이렇게 팬처의 사진이 ‘미군=밀반출자’임을 사실상 입증하는 자료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여전히 LA카운티미술관의 공을 무시하고 반환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저하던 그 와중에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1988년 대구 동화사 염불암에서 도난당한 19세기 불화(지장시왕도) 1점이 다름아닌 LA카운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지장시왕도’는 도난신고된 유물이어서 논란의 여지없이 반환대상이 되었습니다. 2015년 1월 조계종단과 신흥사측은 동화사 불화 건을 거론하면서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건도 조심스레 포함시켰습니다.
팬처의 사진 등을 근거로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구요. 불교계와 학계, 시민들이 모여 환수추진위원회가 조직됐구요. 2017년 2월에는 공무원, 교사, 주부, 불자 등이 주축이 된 ‘속초시 문화재 제자리찾기 위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당초 우려와 달리 LA카운티미술관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LA카운티 박물관은 공공 박물관의 명예를 중요시 여겼던 겁니다.

■또 한 장의 결정적인 한방
2019년 ‘결정적인 한방’이 터졌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미 해병 중위로 속초에서 근무했던 리처드 브루스 락웰이 역시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의 내부를 촬영한 사진을 역시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했는데요. 
그런데 락웰의 사진에서는 팬처가 촬영한 극락보전에서 보였던 ‘영산회상도’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역시 팬처의 사진에 남아있던 명부전 속 ‘시왕도’도 락웰의 사진에서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락웰은 “이 사진을 찍은 것은 1954년 10~11월 사이”라고 밝혔습니다. 1954년 5~6월 팬처의 사진에는 보였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같은해 10~11월 락웰의 사진에는 감쪽 같이 사라졌다? 당연히 미군이 1954년 5~11월 사이에 뜯어갔다는 이야기죠. 
한가지 첨언하자면 ‘신흥사 시왕도’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각각 그린 작품인데요. LA카운티미술관이 그중 6점을 소장하고 있었구요. 나머지 4점도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추정하자면 미군 1명이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6점을 뜯어갔을 겁니다. 그것이 한꺼번에 1998년 LA카운티미술관에 팔린 거구요. 어쨌든 불교계는 영산회상도와 함께 이 시왕도 6점의 환수까지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미군(혹은 미군들)이 시왕도 4점을 뜯어가 미국으로 밀반출했겠죠. 나중에 미국 내에 흩어져있는 4점의 추가 환수도 추진해야 합니다.

■리영희 교수의 젊을 적 ‘자랑 한마디’ 
락웰은 사진 뿐 아니라 신흥사에서 뜯어간 경판 1점(17세기 제작)까지 기증했는데요.
이 경판과 관련해서는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고 리영희 교수(1929~2010)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리영희 교수는 1996년 12월4일 ‘법보신문’에 흥미로운 회고담(‘내가 젊었을 적 잘한 한가지’)을 털어놓았는데요. 
“(1951년 겨울) 11사단 9연대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신흥사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돌과 도끼, 삽으로 빠갠 불경 목판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장교였던) 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겨레의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리영희 교수가 신흥사에서 불경판들을 태우고 있던 병사들을 만류한 사실을 자랑한 칼럼인데요. 리영희 교수는 그렇게 불경판을 지킨 공로로 2000년 제4회 만해대상 ‘실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락웰의 기증 사진에서도 1954년 가을 신흥사 적묵당에서 미군들이 불을 피우는 장면이 보입니다. 락웰은 이 무렵 신흥사 경판 1점을 전리품 삼아 들고 갔을 겁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일종의 전리품 차원에서 문화재급 유물들을 다투어 가져가는 사례가 많았거든요.

■환지본처 본지풍광
각설하고 팬처와 락웰의 사진과 함께 ‘영산회상도’는 물론 ‘시왕도’(6점)까지의 환수협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두 그림 모두 미군에 의해 불법반출된 전시약탈문화재가 분명해진만큼 반환은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2020년 7월29일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환수되었습니다.

여섯조각으로 무참히 잘린채 밀반출된 ‘성보 문화유산’이 66년만에 귀환한 겁니다. 국내 보존상태 등의 점검이 끝난 8월28일에는 본향인 신흥사로 돌아왔는데요.
새삼 불교에서 말하는 ‘환지본처 본지풍광(還至本處 本地風光)’의 구절이 떠오르네요.
‘환지본처’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온다는 뜻이고, ‘본지풍광’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일컫는다죠. 영산회상도의 환수야말로 ‘환지본처 본지풍광’의 정수라 할 수 있네요.(이 기사는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가 펴낸 <환지본처, 신흥사 영산회상도-지금 여기 가장 빛나다>, 눌와, 2020’를 참고했습니다. 또 김현정 덴버미술관 아시아미술부장,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 이용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만중 속초시청 학예연구사, 박찬웅 속초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신유철 조계종 대외협력팀장, 유대호 조계종 문화재팀장, 장익남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사무국장, 정주연 법보신문 기자 등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