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군홧발이 찍힌 지도와, 한국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불탄 동종…. 국립중앙박물관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테마전(‘6·25 전쟁과 국립박물관-지키고 이어가다’)을 25일부터 9월13일 개최한다.
6·25전쟁 중 북한군의 군홧발이 여럿 찍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요계관방지도’. 해방 이후 경복궁의 각 전각에는 각종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때 오가던 북한군에 의해 짓밟힌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물론 아직 코로나 19 확산 우려에 따라 박물관이 휴관중이므로 테마전은 누리집과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전시로 우선 개막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테마전은 6·25전쟁으로 사라질 위기에 빠진 문화재를 지키고 문화의 맥을 잇고자 했던 국립박물관을 조명하며, 국난 극복과 평화의 교훈을 공유하고자 마련했다”고 밝혔다.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듯 출품작 중에는 온전치못한 유물들이 대다수다. 이 가운데 북한군의 군홧발이 여럿 찍힌 ‘요계관방지도’가 눈에 띈다. ‘요계관방지도’는 1706년(숙종 32년) 제작된 군사목적의 관방지도인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후대에 모사한 것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원본은 보물 제1542호로 지정됐다.
1948년 양양 선림원터에서 발견됐다가 오대산 월정사에서 보관했던 동종. 6·25전쟁 때 한국군의 소각명령 때문에 월정사가 소실될 때 이 동종도 불에 탔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요계관방지도(遼계關防地圖)’는 요동(遼)과 북경(계)까지를 그린 군사지도이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에는 6·25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여럿이 경복궁 전각을 드나들면서 짓밟은 흔적이 역력하다. 해방 이후 경복궁의 작은 전각에는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도의 백두산 인근 부분을 보면 좌우에 황토색 윤곽이 여럿 눈에 띈다. 강민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쟁기념관 등에 문의한 결과 북한군의 군홧발이 분명하다는 해석을 들었다”고 밝혔다.
6·25전쟁 때 깨어진 청화백자 용 항아리.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유물카드에는 붉은 빛이 나는 안료로 용무늬를 그린 ‘채홍염부용문병’으로 기록됐지만 지금은 붉은 무늬가 남아있지 않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출품작 중에는 6·25전쟁 중 소실되어 극히 일부만 남은 강원도 양양 선원사지 동종도 있다. 이 동종은 1948년 양양 선림원지에서 발견됐지만 돌볼 사람이 없어서 오대산 월정사측이 보관하고 있었다. 동종에는 통일신라시대인 804년(애장왕5년) 순응법사가 제작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명문에 등장하는 시주자 명단 등을 통해 당시의 관직명과 이두 등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체높이 122㎝, 입지름 68㎝의 위용을 자랑했던 이 동종은 전쟁 중 잿더미가 됐다. 1951년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한국군에게 작전지역 내 사찰을 포함함 모든 민간시설물을 소각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산속 민가와 사찰이 적의 엄·은폐물 및 보급기지로 활용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확보한 고려시대 유리구슬. 전쟁 중에 5점 가운데 1점만 남고 4점이 사라졌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월정사 측은 적군이 주둔지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각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각 전각의 방구들을 파내고 모든 문짝을 뜯어냈다. 하지만 사찰측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다. 천년고찰 월정사는 끝내 한국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구층석탑(국보 제48호)를 제외한 모든 구조물이 소실됐다. 동종도 파편만 남기고 녹아버렸다.
테마전에는 또 5점이 남아있다가 전쟁 중 4점이 사라져버린 고려시대 유리구슬도 출품된다. 전쟁 중 몸통이 사라진채 밑부분만 달랑 남은 ‘청화백자 용 항아리’도 선보인다. 이 백자는 일제강점기의 유물카드에는 붉은 빛이 나는 안료로 용무늬를 그린 ‘채홍염부용문병’으로 기록됐지만 지금은 붉은 무늬가 남아있지 않다.
‘북한군에게 빼앗기지 마라’는 당부를 들은 미군이 고이 간직했던 관음보살상. 1999년 미국에서 돌아왔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발 북한군에게 빼앗기지 말아달라’는 스님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은 미군 덕에 살아남은 불상(관세음보살상)도 출품된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병사 찰스 슈미트가 강원도 철원 모 사찰 스님의 신신당부와 함께 받아 간직한 유물이다. 1999년 반환됐다. 고려말 조선초에 제작된 이 불상은 화불(花佛)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원나라 시대에 유행한 티벳 불교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테마전은 1950년 12월 부산으로 옮긴 국립박물관이 피란지에서도 한국문화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벌인 노력을 조명한다. 국립박물관의 이전을 승인한 당시 문교부장관의 허가서, 부산 박물관 임시청사의 내부 평면도, 1953년 국립박물관이 발굴했던 경주 금척리 고분·노서리 138호분 출토 토기들이 전시된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래자 思來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0년전 신라 '애기부처' 보물되는 사연 (6) | 2020.07.07 |
---|---|
해인사 폭격멍령을 거역한 김영환 장군 유품이 문화재된다 (32) | 2020.07.01 |
'미남자' 헌종과의 사랑 야사로 유명한 경빈 김씨 무덤의 원자리 71년만에 찾았다 (122) | 2020.06.22 |
43년만에 출현한 경주 금동신발의 정체…"왕족 혹은 귀족의 가족 무덤" (25) | 2020.06.02 |
가요속 '사랑' 단어, 90년간 4만3000번이나 사용됐다…국립한글박물관 특별전 집계 (9) | 2020.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