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43년 만에 출토된 금동신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혈연관계인 일가족의 아들묘인가. 

일제가 붙인 일련번호(120호)로만 알려져있을 뿐 고분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게 훼손된 경주 고분은 금동신발 등을 부장한 신라 왕족 혹은 최상위 귀족의 가족무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금동신발이 노출된 경주 황남동 120-2호 고분. 120-2호는 120호의 일부를 깎아 후대에 조성된 무덤이다. 120호 주인공과 혈연관계인 일가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금동관의 흔적도

경주 황남동의 120호 고분을 발굴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20호 고분과 연접해서 소규모로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120-2호)에서 금동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최상위급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금동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 발굴 이후 43년만의 일이다. 

금동신발 1쌍은 피장자의 발치에서 확인됐다. 신발의 표면에는 ‘ㅜㅗ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있고, 둥근 모양의 금동달개가 달려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ㅜㅜ’나 ‘ㅗㅗ’가 아니라 ‘ㅜㅗ’나 ‘ㅓㅏ’ 식의 엇갈린 문양은 삼국 중 신라 고유의 장식”이라면서 “황남대총 남·북분과 금관총, 의성 탑리고분 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여러 점의 금동 달개(장식)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도 특히 주목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아직 발굴초기라 속단할 수 없지만 금동관의 부속이거나 관장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덤의 부장 공간에서는 금동 말안장과 금동 말띠꾸미개를 비롯한 각종 말장식, 청동다리미와 쇠솥, 그리고 다양한 토기류도 보였다.

경주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청동다리미. 이외에도 쇠솥, 그리고 다양한 토기류도 보였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일가족 무덤

흥미로운 것은 금동신발을 비롯, 최상위급 금동제 유물이 출토된 고분(120-2호)이 ‘메인 고분’인 120호에 딸린 소형무덤 2기 중 1기라는 사실이다. 120호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120-1호와 120-2호를 조성했다. 

또한 120-1호분에서도 이번에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됐다. 출토양상(120-1호의 유리구슬. 120-2호의 말갖춤새)를 감안하면 120-1호는 여성, 120-2호는 남성의 무덤일 가능성이 짙다. 메인고분(120호)과 그에 딸린 소형분 2기(120-1, 120-2호)라면 3기의 무덤이 모여있다는 뜻이다. 이 고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선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은 “120호분이 경주 시내 왕·귀족 무덤이 모여있는 대릉원 일원을 기준으로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120호분이 북서쪽에 즐비한 ‘왕과 왕비릉’(황남대총, 서봉총, 천마총, 금관총 등)과 멀리 떨어진 남쪽에 조성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 120호분 주인공의 신분은 직계가 아닌 방계의 왕족이거나 혹은 귀족 중에서는 최상위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120호분의 규모는 봉분의 직경이 23~26m 가량인 중형급 고분이다. 평균 40~60m이고, 심지어 120m(황남대총)에 달하는 북서쪽 고분들(왕과 왕비의 능으로 추정)과는 신분상 차이가 있다.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청동다리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20년 사이에 차례로 조성된 가족묘

그러면 3기의 무덤을 연접하여 조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120호의 피장자가 먼저 묻히고 어느 시점이 지난 뒤 120-1호 혹은 120-2호가 차례로 조성되었을 것”이라면서 “이들 3명은 혈연관계인 일가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무덤의 규모도 120-1호(매장주체부 길이 5m90, 너비 4m30)와 120-2호(길이 6m50, 너비 4m10)는 메인인 120호(길이 12m, 너비 6m90)의 절반 정도이다. 신라 적석목곽분이 전공인 박광열 원장은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볼 때 120호 주인공이 5세기 말~6세기 초에 묻힌 다음 20년 사이에 120-1호와 120-2호가 조성됐을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혈연관계로 추정되는 무덤 주인공 3명의 가계도는 그릴 수 없다. 하지만 120-1호에서 출토된 유리구슬과 120-2호에서 나온 말갖춤새 등을 미뤄보면 고고학적인 상상은 가능하다. 즉 아버지(120호)를 중심으로 부인 혹은 딸(120-1호)과 아들(120-2호)이 묻힌 것이라는 추론 정도는 할 수 있다. 

황남동 120-2호에서 확인된 금동달개. 금동관의 장식이거나 관식일 수 있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 제공

■120호분의 새로운 이름은 뭐가 될까

일가족 중 자식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120-2호에서 금동신발 등 금동제 세트 유물이 나왔다면 아직 발굴하지 않은 메인(120호) 고분에서는 어떤 유물이 쏟아질까. 사실 이 고분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고적조사사업을 펼치면서 경주 고분에 일련번호(1~155호)를 붙였을 때 ‘120호’라 호명됐다. 훗날 발굴조사를 통해 98호(황남대총), 125호(봉황대), 126호(식리총), 127호(금령총), 128호(금관총), 129호(서봉총), 155호(천마총) 등은 정식이름을 받았지만 ‘120호’는 지금까지도 번호로만 남았다.    

최근까지도 120호분은 민가 조성 등으로 크게 훼손되어 고분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지난 2018년부터 120호분의 잔존상태를 파악하여 유적 정비사업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120호 일부를 깎고 조성한 120-1호와 120-2호를 확인했다. 

지난 5월15일 오후 120-2호에서 금동신발을 확인했을 때의 순간이 자못 드라마틱하다.

“120-2호에서 말갖춤새를 확인하면서 ‘아! 뭔가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120호분에 부속된 무덤인데 이런 최상급의 유물이 출토되다니…. 그러다 장유미 연구원이 흙 속에서 금동신발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조사단(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손길이 분주해졌습니다.”(김권일 책임조사원)

황남동 120-2호에서 출토된 말갖춤새 일괄. 신라 왕족 혹은 최상위 귀족의 가족무덤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발굴조사를 주관하는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 정비사업 추진단의 정자영 연구관은 “아직 조사 초기 단계지만 워낙 중요한 발굴성과여서 일단 서둘러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권일 책임조사원은 “앞으로 120-1호와 120-2호분의 조사를 완료하고, 아직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120호분의 매장주체부를 본격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메인인 ‘120호분’은 120-1호와 120-2호에 비해 봉분의 규모가 훨씬 크다. 김권일 책임조사원은 “120호분의 훼손이 상당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밑바닥 부분은 잘 남아있다”면서 “따라서 120-1, 120-2호에서보다 위계가 더 높은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120호분은 마사토(화강암이 풍화하여 생긴 모래)를 사용하여 쌓았다. 

김권일 책임조사원은 “경주의 적석목곽묘 중 마사토로 봉분을 축조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향후 발굴성과에 따라 120호분은 ‘120호’가 아니라 어엿한 이름을 얻을 수도 있다. ‘천마총’이나 ‘금관총’, ‘금령총’ 처럼 그 고분 만의 출토 유물을 토대로 새 이름을 얻게 되는데, 120호분의 새이름은 무엇이 될까. 참고로 ‘금동신발’의 한자를 딴  ‘식리총(飾履塚)’은 이미 존재한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imduhan 2020.06.03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총독부가 고적 조사 사업을 전개하고 고유 번호 등록하고 저장한 120호 분이, 해방 후,"최근까지도 120호분은 민가 조성 등으로 크게 훼손되어 고분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이라고 한다.누가 문화재를 보호하고 누가 훼손했는지.

    • Eba 2020.06.04 0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인, 대한제국 국민들이 주로 보호하고
      왜구 도굴꾼들과 약탈자들이 주로 우리의 문화재를
      훼손했지...

      우리도 왜구들의 문화재를 좀 도굴하고 훼손해야 하는데... 쓸만한게 있어야지..... AV 포르노가 문화재 되려나 ???

    • kimduhan 2020.06.04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 왕조에 "문화재 보호"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물론, 에도 시대의 일본에도 없다.그래서 메이지 유신 때에는 많은 과거의 문화재가 훼손되었습니다.그 뒤 일본은 서양 선진 문명을 배우고 과거의 유물을 소중히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문화재’와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일본에서 번역되어 한국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일제 식민통치 시기의 문화정책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Mplaza/1265969

    • Abe 2020.06.14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까는 소리...
      애플이라 부르지 않아도 사과의 맛은 알고 있었다.

    • kimduhan 2020.06.14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과의 맛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죠.한편," 몰랐다"다는 증거는 많이 있다.예를 들어 목을 잘린 불상 등.

    • Abe 2020.06.14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과 맛을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 개념이 생기나 ? 아무리 왜구 종특이라 하지만 궤변과 억지는 정도껏 하시죠 왜구 아저씨????

    • kimduhan 2020.06.15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과의 개념이 생기지 않았다구요.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문화라는 말도 없고 물론 문화재, 문화 유산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2. Abe 2020.06.04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악한 왜구들의 역사왜곡 전술들..

    침소봉대 + 진실은폐 + 촛점 흐리기
    대한민국 역사의 극히 일부 오점을 마치 전체의
    상황인양 극도로 확대해석... 일제 강점기에 광범위하게 왜구들이 저지른 도굴 등 온갖 악행은 나 몰라라... 말살과 약탈의 의도로 왜인들이 행한 악행은
    온갖 궤변으로 치장하여 선행으로 강변...

    아참...또 있네....
    사기치다 걸리면 꿀먹은 벙어리 된후 또다른 협잡질
    준비하기...

    왜국에서는 우리가 김치 담아먹던 막사발도 국보로모신다며? 남의나라 물건 도적질하여 국보로 만드는저열한 종자들....

    • kimduhan 2020.06.04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일본인도 보통의 인간이니까 나쁜 사람, 도둑, 강도, 살인범 많이 존재합니다.한국과 같습니다.사기꾼도 많았을 겁니다.그래서 조선의 문화재를 훔치거나 빼돌린 일본인 조선인이 당시 있던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내가 말하는 것은 일본이 "국가로서 ""정부의 방침으로서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한국에서는 당신처럼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문화재 도둑은 일본인들도 조선인에게도 똑같이 있습니다.

    • Abe 2020.06.14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금만 방심하면 도처에 똥을 싸질러 놓는구만...

      니캉내캉 양비론 양시론?

      언제 우리가 일왕 묘지 파헤쳤는데?
      언제 우리가 일본 문화재 도굴하고,
      공적인 조직이 남의 나라 도굴하고 침탈했는데?

      어디서 감히 ....

    • kimduhan 2020.06.14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국사 고려경전도난사건

      1994년, 나가사키 현 이키시의 안국사에서 고려판대반야경(중요문화재) 493첩이 한국인 절도단에 의해 절도당했다. 이 도난품이 1995년 3월에 한국 국보 284호 “초조본대판야파라밀다경(初彫本大般若波羅蜜多經)”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1998년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것을 거부했다 2001년에 시효가 성립되었다. 또한 서울 중앙지검은 최종적인 구입자가 한국 박물관회 회장이라는 지위에 있는 자인데도 불구하고 도품과는 몰라서 구입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또한 성균관 대학의 천혜봉 교수는 국제법을 무시해 “한국에서 약탈해 간 것을 되찾은 셈이어서 실로 다행인 일이다”라고 진술했다.

      예복사 고려불화도난사건

      1998년, 오사카 부 다이시초의 예복사에서 고려불화 ‘양류관음상’(중요문화재급)을 포함하는 불화 32점 (시가 1억3000만 엔)이 한국인 절도단에 의해 도난된 것이 2004년에 밝혀졌다.

      인송사 고려불화도난사건

      2001년 9월, 아이치 현 도요타시의 인송사에서 아미타 여래의 극락 정토를 그린 현 지정 중요 문화재 고려불화 ‘견본저색관경만다라’ 등 7점 (시가 4000만 엔)이 도난 당하며 안국사 도난 사건과 동일한 범인이 2004년에 범행을 시인했다. 그러나, 행방 불명이 된 ‘견본저색관경만다라’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재관리국이 ‘일본 소 재 한국불서 도록’에 등재하고 있는 등 한국 당국이 도둑과 손을 맞잡고 도난품의 반환을 방해하고 있다. 현재 이 불화는 한국 대구광역시의 사찰이 소장하고 있어, 반환되지 않고 있다.

      학림사 불화도난사건

      2002년 7월에 효고 현 가코가와시의 학림사에서 ‘견본저색아미타3존상’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 ‘성덕태자회전’ 6폭(중요문화재, 한국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문화재)과 ‘아미타삼존상’ 1폭(중요문화재)과 시 지정 문화재 ‘석가삼봉형십육선신상’ 등 8점(시가 약1억7500만 엔)이 한국인 4명의 절도단에 의해 도난 당했다. 2002년 9월에는 고베 지방 재판소에서 범인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 판결이 언도되었다.

      2004년 10월, 일본에서 문화재 절도를 반복한 한국인이 체포되었고 학림사 등에서 훔친 문화재는 47점(총액 3억1000만엔 상당)이라고 자백했다.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를 찾아내라는 신의 말씀을 듣고 범행을 했다”고 진술하고, 한국에서 “문화 유산을 되찾은 애국적 영웅”이라고 칭찬되었다. 2005년 1월 21일, 징역 1년의 실형판결이 언도되었다.

      2005년, 시마네 현 이즈모시 악연사에서 “지본묵서후제호천황기원문”(한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문화재이다) 등 국가 지정의 중요 문화재 4점을 포함한 불화나 경전 13점이 훔친 한국인 고물상이 체포되었다.

      대은사 서북사 연속 강도 상해 사건

      2005년 8월 3일, 아이치 현 도요카와시의 대은사에서 불화 ‘견본저색왕궁만다라화’를 훔치려고 침입한 한국인 절도단 4명이 주지 승려를 부엌칼로 찌르는 강도 미수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들은 나중에 체포되었다. 범인은 2006년 9월 22일의 후쿠이 현 쓰루가시의 서북사에서 주지 승려를 금속 야구 방망이로 습격해 현금 41만 엔을 빼앗은 사건을 일으킨 것도 시인해, “문화재를 훔쳐서 되팔면 돈이 된다”고 자백했다. 범인은 일본 거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보수 1원 엔 이상이라는 조건으로 공범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의 애국지사”가 한 짓이다. 2007년 8월 30일, 범인에게 나고야 지방 재판소는 징역 12년 형이 선고했다. 2014년 4월 22일, 절도단 중 한 명이 한일 범죄인 인도 조약에 의해 일본측에 인도되어 체포되었다.

      대마도 연속 불상도난사건

      2012년 10월 8일, 대마도의 해신신사가 소장하는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인 ‘동조여래입상’ (통일 신라 시대), 관음사의 나가사키 현 지정 유형문화재인 ‘동조관세음보살좌상’ (고려시대), 다구스다마(多久頭魂) 신사의 나가사키 현 지정 유형문화재인 ‘대장경’이 한국인 절도단 8명에 의해 도난당했다. 2013년 1월 29일, 절도와 밀수 혐의로 한국인 절도단 5명이 한국 경찰에 체포되었고 한국 국내에서 불상 2구가 회수되었다(‘대장경’은 행방 불명).

    • Abe 2020.06.14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이 붕어 아이큐 왜구 아자씨야...

      언제 우리가 일왕 묘지 파헤쳤는데?
      언제 우리가 일본 문화재 도굴하고,
      공적인 조직이 남의 나라 도굴하고 침탈했느냐고???

      우리가 도둑 맞은거 우리가 가져오는데 어느 왜구들이 시비인데??? 뺨 만대 때리다가 한대 맞으니 억울해 ? 천박한 왜구놈아?

    • kimduhan 2020.06.15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몽골을 봐도 터키를 보더라도 그리스에서도 로마를 봐도.영국을 보더라도 독일을 봐도.어느 민족도 한번은 민족이 굴기 주변의 약소국, 약소 민족을 병탄하고, 패업을 실시하는 것입니다.한국, 우리 민족에겐 그러하등의 나라에도 한번은 어떤 발전이 없었다.은자의 나라였다고 말할 뿐.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였다 할 것이다. 어느 한 시대에 변경을 넘어 타를 지배하였으며 그 어디에 해외 문물을 광구(廣求)하여 민족 사회의 개혁을 시도한 일이 있었으며 통일천하의 위세로써 민족 국가의 위세를 밖으로 과시한 적이 있고 특유한 산업과 문화로써 독자적인 자주성을 발양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강대국에 밀리고 맹목적인 외래문화에 동화되거나 원시적인 산업의 범위 내에서 단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동포 상잔에 영일이 없었을 뿐"
      ( 박정희)

    • Abe 2020.06.15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박정희 ㅋㅋㅋ

    • kimduhan 2020.06.15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의 대통령입니다.지금도 한국민의 인기가 가장 높은 대통령.

      https://www.polinews.co.kr/mobile/article.html?no=447524

    • Abe 2020.06.16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구답네...

      문화재 침탈과 도굴을 비난하다 왜국에 불리하니 다카키 마사오를 불러내 갑자기 외국 침략이 옳은거 처럼 치장하는구나....

      에끼 이 천박한 왜구놈아 !

      어디서 듣보잡 매체를....금년 총선 결과가 모든걸 보여 주잖아... 싫어하는 대통령 순위는 모르지?

    • kimduhan 2020.06.16 1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타카기 마사오의 같은 친일파가 많이 있었으니까, 일본은 무력도 필요 없이 조선을 편하게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 Abe 2020.06.16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리 생각해도 kimduhan을 형용할 수 있는 최적의 단어는 "천박한"이라는...

      왜국이 무력없이 대한제국을 강점했다?
      왜왕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이라는 말이지?

      에끼 이 이등박문같은 왜구야...

    • Abe 2020.06.16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참...
      그 푸들은 벙커에서 넘어지고 재빨리 일어나는 연습
      잘하고 있지? 담번엔 주인님 두발짝 떼기전에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회초리 맞는다는데... 쯧쯧...

    • kimduhan 2020.06.17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 제국의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내에 자생하고 있었습니다.외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친일 바이러스가 자생하고, 일본은 무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 Abe 2020.06.17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력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저능아?
      하기야 사람을 베어버리고 자기배를 가르는 문화를
      숭상하는 살인귀 나라의 왜구였지...

      731부대가 괜히 나왔겠어?

  3. Abe 2020.06.04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구들의 혐한감정 자극하여 WHO 사무총장
    만들어 코로나 상황을 왜곡, 사기질해서 어떻게든 동경 올림픽 취소를 막으려는 간교한 족속들...

    올림픽 유치했다가 세번째로 취소, 연기돤 왜구들의 서식지...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731부대로 대변되는 살인귀들의 나라가 주최하니 꼭 사단이 나지요... 인과응보..

    G7까지 대한민국이 도달하니 공포심이 극에 달한
    왜국.... 싫으면 너희들이 탈퇴하면 될일...

  4. DDD 2020.06.15 0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기사는 일본 기사인가? 문화재 약탈과 도둑은 어느나라 어느시대에나 있다는거 인정. 근데 잘 알고나 아는체 좀 했으면. 일제가 120호분으로 지정하구나서 왜 120호 고분군만 발굴하지 않고 놔두었을까? 나머지는 다 발굴하고 그것도 지네가 선진이라며 개발새발 파해쳤어. 한 예로 석굴암에 시멘트 발라놓은거랑 미륵사지탑 절반을 시멘으로 발라놓아 이제 겨우 2020 미륵사지 사탑은 복원됐어. 암튼 왜 120호는 놔두었을까? 대답해봐? 못하지? 그니까 일본이 조선을 도왔다는 너만의 뇌피셜 기사마다 뿌리지 말라고. 120호는 그때도 민간호가 있는 곳이어서 발굴이 쉽지 않았고 발굴을 할때도 어디가 진짜 봉분인지 명확해야했지만 그저 무덤자리였구나 확인만 가능했기에 아무데나 파헤칠수 없었던거야. 아무데나 파헤치면 어떠했을까? 오히려 봉분자리 못찾고 유물도 없는 땅파헤치다 끝나겠지?! 더군다나 민간호가 자리잡고 있으니. 그걸 밀어버리기도 어렵고. 그때 그 민간호에 일본식 주택이 다수 있었다는거. 그리고 일본도. 전쟁준비중이라 불확실한 곳에 예산을 쏟을 수 없었겠지.그나마 저런 관제 역사학자(즉 관에 속해서 일본이 조선을 지배했다는 임라일본부설을 증명해내야만 했던 학자)들에게만 지원금을 내준거야. 황남총 천마총..등등 저기를 연구했던 일본인 이름좀 검색해봐. 누군지 나와. 그리고 120호 고분군을 우리도 지금에서야 발굴하는 이유는 우리가 내버려둬서가 아냐. 고분을 잘못 파헤치면 석곽묘가 으스러지거나 봉분을 만들기위한 흙이나 돌등이 자칫 무너져 오히려 무덤을 훼손할 수 있기때문에 발굴에 들어가기전 어디서부터 삽을 대야할지 정확한 위치가 규명되야하고 민가가 있으니 보상문제도 해결해야하는거야.
    제발..
    이제 제발..
    일본이 구제한 한국.
    일제 강점기에 작은 빛 같은소리 그만 씨부려라.
    일제 강점기는 실낯같은 빛도 없던 암흑기였어.
    그때를 시작으로 지금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거란거 미국 역사학자가 쓴 책에도 나와있단다.
    오죽하면 일본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까지 되어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