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10월 5일 아침, 7000여 명의 여성시위대가 프랑스 파리 시내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데다 공급마저 부족한 빵 때문에 고통을 받던 여성들이었다.
서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귀족들은 매점매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곧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자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때 루이 16세의 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고급케이크)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실은 가짜뉴스였다.
장 자크 루소가 1765년 자서전(<고백록>)을 쓰면서 ‘어느 왕비가 했다’고 운을 떼며 이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765년 불과 9살이던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어쨌든 시위 중에 퍼뜨린 가짜뉴스가 성난 시위대에 기름을 부었을게 틀림없다. 베르사유 궁전까지 20㎞ 이어진 여성들의 행진은 프랑스 혁명에 분수령이 됐다.
1956년 8월 9일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또한번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 펼쳐졌다.
인종분리정책에 따라 흑인 여성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통행법’의 도입에 항의하려는 몸짓이었다.
인종을 초월한 2만여명의 여성이 몰려들었다. 남아공 정부청사까지 행진을 벌인후 1만4000건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아프리카 여성들에 대한 모욕은 전세계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었다. 연좌시위를 벌이며 ‘단결의 노래’를 불렀다.
“여성을 때리는 것은 곧 바위를 때리는 것이다. 너의 손은 뭉개진다.”
남아공은 이날(8월9일)을 ‘여성의 날’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다음날인 올 1월21일에도 ‘여성들의 행진’이 펼쳐졌다. 이번엔 특정 지역의 여성들이 아니라 7개 대륙에서 450만명이 모였다.
이 예상밖 호응이 세계 여성들의 ‘정치참여’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리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228년전 파리의 여성들이 ‘빵’을, 61년전 남아공 여성들은 ‘인권’을 외쳤다.
그런데도 ‘여성의 날’의 구호는 ‘빵(생계)과 장미(인권)을 달라’는 것이다.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빵과 장미’·1911년작)가 여전히 심금을 울리고 있다. “우리(여성)는 빵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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